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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유머가 영감의 원천이죠

On November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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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 촬영 현장에서 이소민 역을 맡은 이주빈 배우와 대화 중인 이병헌 감독.

<멜로가 체질> 촬영 현장에서 이소민 역을 맡은 이주빈 배우와 대화 중인 이병헌 감독.

올해 초 영화 <극한직업>으로 1600만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사상 흥행 2위를 기록한 이병헌 감독은 뒤이어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시청률 1%를 기록하며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를 보냈다. 특이한 점은 금·토요일 저녁 시간 시청률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 드라마가 종영 후 3주째 관련 검색어 10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독창적이고 예리한 유머와 2030 여성들의 공감 코드를 정확하게 짚어낸 <멜로가 체질>의 관련 댓글에서 가장 많이 보인 단어는 ‘인생 드라마’다. 저조한 성적과 뜨거운 반응이 공존한 독특한 드라마의 마침표를 찍은 이병헌 감독을 만났다.

극의 중심을 끌어간 진주(천우희)와 범수(안재홍)의 현실적인 듯 독특한 케미는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극의 중심을 끌어간 진주(천우희)와 범수(안재홍)의 현실적인 듯 독특한 케미는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극의 중심을 끌어간 진주(천우희)와 범수(안재홍)의 현실적인 듯 독특한 케미는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9월 28일 종영했어요. 이미 종방연을 치른 뒤라 집에서 본방 사수를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나요?
제작사 대표님이 마지막 방송을 다 같이 보자고 극장까지 대관해서 배우들과 함께 시청했습니다. 마지막 회는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형식이어서 축제 분위기에서 봤어요. 싱어롱관인 줄 알았다니까요. 특히 시청률 1%를 자학하는 범수 신에서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죠. 내가 ‘도른자’들을 잘 찾아서 데려온 것인지, 같이하다 보니 다들 ‘도른자’가 된 것인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은 밤새 술을 마시며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즐겁게 보냈죠. 덕분에 ‘어쩌면 드라마를 또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지만, 영화에 비해 긴 제작 기간이라 힘들진 않았나요?
초반에는 하루 16시간 촬영 패턴에 적응을 못했어요. 영화는 12시간이거든요. 게다가 저는 일찍 끝내는 편이라 보통 8~10시간 정도 촬영해요. 어쩔 수 없을 때만 12시간을 채우는 편이죠. 저녁이 없는 삶에 처해지자 방법을 강구해야겠더라고요. 그런데… 못 찾았어요(웃음). 촬영 기간 내내 다크서클을 달고 살았죠. 하지만 주당 근무 시간은 철저하게 지켰어요. 오해하진 마세요.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아쉬웠어요. 그래도 사전 제작이어서인지 극은 흔들림이 없더라고요. 성적표에 대한 초조함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웃음). 처음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고 기획한 작품이 아니라서 큰 압박은 없었어요. 다만 낮은 시청률을 원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초조함이 없을 순 없죠. 약점이 많았어요.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타깃이 한정적인 데다, 금·토요일은 볼 채널이 많으니까 모험이었죠. 그리고 (시청률로) 호되게 혼났습니다. 그래도 현장 집중도는 높았어요. 제작진 모두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으니까요. 마치 ‘시청률 그것은 너의 일. 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걸?’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본의 논리를 패대기쳐 버렸달까? 하하.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성적이 대조적이지만, <멜로가 체질>은 마니아를 양산한 드라마인데요. 이런 부분을 많이 체감했나요?
친한 배우가 드라마 방영 시간에 ‘실시간 톡’이라는 것을 보더군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 뒤로 종종 보았는데, 우리 드라마 제작진이 아이돌인가 싶을 정도로 칭찬이 많았어요. 그걸로 힘을 많이 얻었죠. <극한직업>도 고마운 작품이지만 특별함으로 친다면 <멜로가 체질>을 꼽고 싶어요.

배우 캐스팅 배경이 궁금해요.
‘진주’가 먼저였어요. 극 전체를 끌어가는 화자여서 공들여 생각했고, 천우희라는 귀한 배우가 당연히 떠올랐는데 다행히 받아주었죠. 제 선택이라기보다 그녀의 선택이었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은정’ 역의 전여빈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죄 많은 소녀>를 보고 어떤 역할이든 같이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경력이 적어서 반대할까 봐 처음부터 제작사에 말했죠. 이유는 그녀가 나오는 장면을 5초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한주’ 역의 한지은은 오디션을 봤어요. 너무 튀거나 뻔해서도 안 되고 다층적인 상황과 감정을 갖고 가장 큰 폭의 성장을 하는 인물이라 조심스러웠는데 잘 커버해줬죠. 안재홍은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톤으로 연기하는 배우예요. 제게는 대배우죠. 거절하지 않으리란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는데 다행히 스케줄도 맞았어요. 지금도 그가 아니면 누가 범수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공명에겐 미안함도 있어요. <극한직업>으로 인지도가 올라서 주인공 제안이 쏟아지는데 감독이 나란 이유로 왠지 거절하지 않을 거 같았거든요. 알면서 제안한 이유는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현실적이지만 갑갑한 캐릭터인 제훈 역할이 그에게 깊은 연기 훈련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예요. 그가 배우로서 대성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거든요.

극 중 재치 있는 유머가 돋보였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병헌표 유머’는 어떤 건가요?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 있고, 그걸 다루는 게 재미있어요. 사람들의 농담이 좋고 그 농담이 가진 웃음의 유효타가 높을수록 더 좋고. 유머 감각이 남다른 친구를 옆에 두고 수다 떤다는 느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유머 감각이 가장 만족스럽게 표현된 장면이 있다면요?
PPL 신?

말한 것처럼 PPL을 신랄한 유머와 함께 노출했는데요.
이 장면을 만들기 전에 어려움이 있었을 거 같아요. PPL을 거부하기는 미안하지만, 다 받기엔 작품이 훼손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우리스럽게’ 풀어보자라고 생각해서 7회의 몰아치기와 14회 대놓고 PPL(드라마 구상 중인 범수가 안마의자를 넣는 장면을 떠올린 부분)을 내보내는 장면들을 만들었어요. 우려되는 점이 있어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죠. 지지해준 채널과 우리의 1% 시청자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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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은 대사량이 많기로 소문난 드라마인데, 감독님은 말이 적은 분이라고 들었어요.
평소엔 말이 없고 낯을 가려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요. 그렇다고 현장에서 해야 할 말까지 아끼진 않아요. 다만 그것밖에 안 하니까 과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죠. 그건 그냥 성격인데 장점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거? 문제가 생기면 화내느라 보내는 시간이 제일 아까워요. 해결책을 바로 찾는 게 빨리 퇴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니까.

작품은 작가를 닮기 마련인데, 어떤 부분이 닮은 거 같아요?
제가 쓰고 연출한 이야기이니 안 닮을 수는 없겠죠. 뭐가 닮았나 보면, 진지함이 오래가는 걸 싫어하는 점이나 기쁨이든 슬픔이든 균형이 맞았으면 좋겠다 싶어 노력하는 정도인 거 같아요.

캐릭터 속에 지인들의 이름을 쓰는 이유는 뭔가요?
지인의 이름을 쓰는 건 이름 짓기가 귀찮아서…. 그리고 지인들이 자기 이름을 쓰면 생각보다 좋아해요(웃음).

술집 손님 역할로 나온 장면이 있던데요. 엑스트라로 등장한 의도가 있나요?
사실… 없어요. 현장에 나갔는데 배가 고팠고. 돼지껍데기가 맛있어 보여서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곧 촬영이라 먹으려면 출연해야 된다는 FD 말을 따랐을 뿐이에요. B팀 감독이 현장에 있어서 모니터를 보라고 하고는 돼지껍데기를 먹었어요. 그게 다예요.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디렉팅한 입장에서 두 분야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시간 대비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오. 이번에 영화계가 반성해야 된다고 느꼈어요. 더 긴 시간을 들여 더 짧은 결과물을 만드니 훨씬 좋아야죠. 드라마는 타협의 타이밍이 빨라요. 어느 지점에선 타협하고 차선에서 최선을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그 결정을 빨리해야 해서 어려웠어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출하기 전부터 길게 쉰 적이 없는데요. 다음 계획도 잡혀 있나요?
오랫동안 준비한 홈리스 월드컵 이야기가 있어요. 내년에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오리지널 시나리오 중 하나인 ‘밉상’이란 작품도 놓지 않고 있고요. 블랙 코미디인데, 여러모로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미뤄진 작품이에요. 저는 제가 쓴 시나리오를 포기하지 않아요. 스스로 의미 없다고 판단되는 글이었으면 완성하질 않았을 거예요.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감정이 있다면 뭔가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감추려는 걸 들춰내고 싶은 욕심이 컸다면, 지금은 제 가족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 공감하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를테면 내 누이는 그랬지, 내 아빠는 이랬지 하는 이야기들이오.

Credit Info

2019년 11월

2019년 11월(총권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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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남미영
PHOTO
삼화네트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