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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다녀온 감독? 그냥 내 이야기를 담았어요

On August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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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들과 북한 학생들이 차창 너머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재일 동포들과 북한 학생들이 차창 너머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재일 동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처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영화가 아니라, 재일 동포 모임을 위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에 마침 일본에서 영화 <박치기>가 개봉되었죠. 그걸 보고 언젠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고민하던 저의 등을 밀어준 분이 <우리 학교>의 김명준 감독님이에요. “(일본인이 만든 조선족을 다룬 영화가 아닌) 재일 동포가 직접 만든 영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죠.


재일 동포 3세지만 국적은 한국인데,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한데요. 재일 동포들에게는 ‘우리나라’가 남한과 북한이 아닌 분단 전의 하나 된 조국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재일 조선인이 발생한 것은 분단 이전이거든요. 어느 쪽을 택하느냐라는 의식이 없다고 봐도 되죠. 게다가 북한이 1957년부터 조선학교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와서 조선학교 학생들은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어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탄압이 심해요. 그런 상황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있어 조국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그런 내용을 다룬 영화를 만들게 되었죠.


최근 서울에서 상영한 영화 <하늘색 심포니> 등의 작품을 북한에서 촬영했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나요?
북한에서는 재일 동포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겨요. 학생들의 경우 기회가 있으면 방문하기 쉽죠. 수학여행도 다니고 축구나 예술을 배우기 위해 교류도 해요. 제가 북한에 가는 것도 재일 조선족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죠. 한국 국적인데 어떻게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긴 하는데, 해외 동포의 경우 국적에 관계없이 방문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 볼 때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인 사회거든요. 동포라도 외부인인데, 영화를 찍을 때 제약은 없었나요?
<하늘색 심포니>는 학생들의 수학여행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 어떤 제약도 없었어요. 외부인이기는 하지만, 외국인하고는 다르게 받아들여서 접근이 쉬웠죠. 특별한 협조도 없었지만, 제약도 없었어요. 사전 콘티 점검이나 촬영 영상 검열도 전혀 없었고요. 그냥 통째로 가져와서 편집했어요. 이 영화의 특징은 이북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근했다는 점이에요. 외국인이 만들었으면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지 못했을 거예요.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기에 가능했죠.


총 20번 북한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처음 방문할 때의 북한과 수차례 다녀온 북한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뭔가요?
올해 5월 말에 다녀온 것까지 총 20번이네요. 처음 방문한 것은 1991년인데요. 대학 시절 1996년부터 1997년 사이에 총 5개월간 그곳에서 생활한 적도 있어요. 평양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를 여행했죠. 선진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처졌다는 점은 사실이에요.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1990년대)에는 굶주리는 사람도 많았고요. 2010년 이후에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일본이나 한국은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드는데, 그 부분에선 북한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적은 거 같아요. 여전히 충분하진 않지만, 제재만 풀린다면 더 나아지겠죠. 북한 사람들의 삶이 덜 풍족해도 나름의 행복이 존재하거든요.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도 하고, 휴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그곳에도 우리와 비슷한 행복이 존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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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 조선족 학생들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담은 <하늘색 심포니>.

재일 동포 조선족 학생들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담은 <하늘색 심포니>.

박영이 감독이 직접 촬영한 판문점 풍경.

박영이 감독이 직접 촬영한 판문점 풍경.

박영이 감독이 직접 촬영한 판문점 풍경.

북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예전에 단편 영화 <마토우>와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상영한 적이 있어요. 북한은 초등학교 교과서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차별에 관해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죠.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극장에서 감정을 소리 내어 표현하는 것도 북한 관객들의 특징인 거 같아요.


일본, 한국, 북한을 고루 겪었을 텐데 각국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뭔가요?
한국에서 상영을 하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국적에 관한 문제, 학교 교육, 재일 동포의 삶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죠. 질의응답을 1시간 이상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 관객은 자국의 정책에 대해 몰랐다는 분이 많고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어요. 우익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분도 많고요. 북한 영화 관계자들과도 수차례 토론해보았는데 구체적인 연출 의도나 세밀한 내용에 이르는 부분들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해요.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닌 동포와 조선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뭔가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영화를 통해 동포들이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서요. 남북 분단은 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해요. 평화와 화합을 스크린을 통해서라도 계속 그려내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고 있어요.


재일 동포로 살면서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겪었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었나요?
조선학교를 다니면 전철 학생 할인이 안 되고, 전국체육대회 같은 규모의 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없어요. 무엇보다 일본 대학에 입학할 수 없죠. 당연히 기업에도 취직하기 어렵고요. 일본 학생들과 같은 기간을 공부해도 같은 무대에 서지 못하는 거죠.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어요. 그럼에도 아직 조선학교만이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제외되고 있어 지금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요.


영화 개봉 후 일본 관객이나 언론에서도 변화가 있었나요?
조선학교 지원 사업에 나선 일본 시민들도 생겼고, 신민 단체나 일본 대학들에서 공동체 상영을 많이 진행했어요. 그들이 서명 활동이나 재판 활동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도 <하늘색 심포니>를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고요. 예전에는 언론에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그것과는 다른 이미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상영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300만원을 조선학교에 기부하기도 했어요.


유튜브 채널도 소개해주세요.
‘U-Waves’란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U는 우리라는 뜻의 ‘Us’에서 따온 거예요. LA에 방문했을 때, 지역 방송국과 신문사가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재일 동포 역사는 100년이 넘는데 신문사는 있어도 방송국이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당장 방송국을 열 수는 없으니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죠. 재일 동포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런 소통이 차별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영화와 달리 이 채널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유튜브는 간단한 소재를 짧게 편집하여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정치적인 뉴스를 다룰 수도 있고 음악이나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도 다채롭게 선보일 수 있고요. 한편으론 극영화의 특성을 살린 작품도 계속 만들어갈 예정이에요.


남한의 이야기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나요?
다음 작품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다큐를 준비 중이에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죠.


언젠가 꼭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뭐예요?
일제 식민지 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의 재일 조선인 이야기를 극영화 대작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영화감독으로 살면서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이 있을까요?
꿈은 계속 생겨요. 그래서 최종적인 꿈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 가지 떠올려보자면 언젠가 남북 해외 합작 영화를 연출해서 세계에 알리길 원하죠.

박영이 감독

박영이 감독

재일 동포 3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조선 중·고급학교, 조선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지역 동포 청년 활동을 하면서 영상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 혐오 세력이 조선학교 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찢어버린 일을 다룬 <걸치다>를 시작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의 북한 수학여행기 <하늘색 심포니>까지 총 4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유튜브에서 재일 동포 사회를 알리는 U-Waves를 운영하고 있다.

Credit Info

2019년 08월

2019년 08월(총권 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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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남미영
PHOTO
박영이 감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