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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썅년, 민서영

On June 13, 2019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하는 여자, 어두운 골목에서 이어폰을 빼는 여자, 나이에 쫓겨 결혼을 서두르는 여자. 이런저런 여자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썅년의 미학』을 쓴 저자 민서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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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재킷 대중소(Daejoongso). 티셔츠 잉크(Eenk). 팬츠 카인다 YYY(Kinda YYY). 반지 에스실(S_S.il).

『썅년의 미학』(위즈덤하우스)이라니, 제목이 강렬해요.
우연히 탄생한 제목이에요. SNS에 연재하던 4컷 만화의 반응이 좋아서 플랫폼으로 옮겨 책으로 나온 것이 지금의 『썅년의 미학』인데, 당시에는 마땅한 제목이 없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준비하던 무렵에 매체와 인터뷰를 하다가 ‘썅년의 미학’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 표현이 뇌리에 박혔죠. 그래서 책 제목으로 쓰게 됐어요.


만나기 전에는 편견이 있었어요. 촬영 준비를 하면서 비교적 섹시한 옷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화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했고요.
(웃음) 저 생각보다 그렇게 안 세요. 이게 제일 큰 오해 같아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떠올리는 외양과 편견이 있는데, 대체로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고 남자 같은 옷만 입거나 굉장히 강한 옷을 입을 거라 생각하죠. 저는 사실 재미있는 옷도 많이 입고, 익살스러운 사람이에요. 불편할 때는 노브라로 다니는 것만 빼면 특이할 것 없어요.


한국에서도 노브라로 다닐 때가 있어요?
그럼요. 불편하니까요.


노브라인 게 더 불편할 거 같은데….
사실 그래요. 시선 공격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표정 관리를 못하면서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 때문에 불편하긴 해요. 중국에서조차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그런 시선이 굉장히 실례라는 것을 모르나 봐요.


4컷 만화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점이 참신한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사실 처음부터 만화를 그린 것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에요. 저는 어릴 때 중국에서 약 13년을 살았어요. 대학은 스위스에서 다녔고요. 이후 영국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만화 사업부에 들어가게 되며 잠시 만화에 관심을 가졌다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러다 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관한 글도 쓰게 된 거예요. 그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하다가 메시지 전달이 쉬운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4컷 만화가 된 것은 SNS 포맷 때문이었어요. 페이스북에서는 사진이 4장 이상이면 더 보기를 눌러야 하거든요.


원래 그림을 그리던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전혀요. 전공도 호텔 매니지먼트예요. 그래서 그림이 단순해요. 최소한의 표정이나 손짓으로 상황을 전달하죠. 제 만화는 정교한 그림 묘사보다는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니까요.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처음에는 웹에서 다양한 글을 썼어요. 칼럼 형태의 에세이도 쓰고요. 그러다 저의 망한 연애사 같은 걸 적었는데 반응이 꽤 좋더라고요. 그때 이 소재를 살려 웹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로맨스 분야에 강하지 않아서 야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죠. 남성적 시각에 치중되지 않은, 남녀 모두 읽을 만한 제대로 야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써봤는데, 나름 반응이 좋았어요.


그런데 왜 야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페미니즘을 다루게 된 건가요?
어떤 결심을 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야한 소설을 쓰는 여자라고 하면 쉽게 무례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초면에 “그러면 섹스를 잘하겠네요?”라는 질문을 듣는 것은 예사였어요. 그런 일들이 계기가 된 셈이죠. 창작 활동의 즐거움보다는 화가 나서 시작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해?’라는 분노에서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나만 겪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사실을 알고 더 화가 났어요. 누군가 제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다정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런 일을 나만 겪는 것이었으면 그 정도로 화나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다루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지 않을까요?
결정적 계기는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었어요. 어렴풋이 느껴온,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위협과 차별에 대한 심증이 확인되는 것 같았죠. 그 일에 크게 분노하는 저를 보고 당시 제 주위의 남성들은 왜 그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들은 정신병을 앓던 범죄자가 우연히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범인은 대상을 물색했고, 쉽게 이길 수 있는 여자를 골랐어요. 일상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지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그 일을 계기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게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그 이후부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트리거가 빵 하고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이런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 머리가 띵해지더라고요. 내가 여성의 인권에 대해, 그것이 무시되는 세계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것도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 사건만이 작품을 끌어가는 힘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맞아요. 처음에는 제가 겪은 이야기가 주요 소재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성 독자들이 늘어났어요. 그들의 경험이 소재가 되거나 영감을 주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난 여자로서의 내 이야기를 할 뿐인데, 페미니즘이라고? 그래, 그럼 오늘부터 페미니스트 하지 뭐’라고 결심했어요.


그런 결심을 한 후에 변한 것이 있나요?
뭐랄까, 전보다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지하철 ‘쩍벌남’이 불쾌하고 불편해도 참고 넘어갔다면, 요즘은 다리를 좀 모아달라고 말해요. 책에도 그런 일로 실랑이를 벌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100% 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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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니트 톱 문탠(Moontan). 스커트 유돈초이(Eudon Choi). 화이트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반지 코스(Cos).

노브라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논하는 남자들을 본 적이 있어요. 웃음이 나오더라 고요.
그냥 불편해서 안 하는 건데, 왜 의미가 필요할까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산다는 건 매력적이지만 한편 위험하게 들리는데요.
그럼요. 위험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모님은 그러다 해코지당하면 어떡하느냐고 하세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은 죽음인데,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예외가 없죠. 어떤 사람은 황당한 이유로 그렇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두려움에 떠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죽는 삶은 별로잖아요. 더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들자, 할 말은 다 하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적대시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사람들에게서 상처받는 일도 많을 테고요.
물론 상처받아요. 욕을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나를 싫어하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원색적인 욕은 차라리 괜찮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는 못생겨서 사랑받지 못한 여자들이 되는 것이라는 둥 근거 없는 비하를 하기도 해요. 그런 것들이 당황스러울 때가 있죠.


가끔은 여성이 여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해요.
저도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흔하게 여자들끼리 미워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면 되는데 ‘같은 여자끼리’라는 말이 쓰이는 경우,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그냥 저 사람이 얄밉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여자여서 그렇다는 표현은 우리 스스로를 상처 주는 거잖아요.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파이는 남성의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데, 왜 우리끼리 그 작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자로 산다는 게 참 불편할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사실 그래요. 그런데 최근 느낀 건데 같은 여자라도 그 불편함의 정도가 다르더라고요. 제게 언니가 한 명 있는데, 비교적 키가 크고 인상이 강해 보이는 저와 달리 언니는 자그마해요. 얼마 전에 언니와 붐비는 지하철을 탔는데, 웬 남자가 언니 주변에서 얼쩡대며 자꾸 들러붙더라고요. 언니가 눈치 채기 전에 자리를 바꿔줬더니 갑자기 그 남자가 패턴을 바꾸며 멀어졌어요. 좀 더 약해 보이는 여성들은 같은 여성 안에서도 더 불편하고 불안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나요?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겪은 일, 잘 아는 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소재를 다루는 거죠.


이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 변화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특히 책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요. 1권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굉장히 마르고 예쁜 모습이에요. 6월에 나오는 2권에서는 좀 더 다양한 스타일과 체형의 여성들이 등장하죠. 저 역시 책을 쓰면서 이상적 여성상에 대한 편견을 깨기 시작한 셈이에요.


페미니스트 작가의 삶에서 가장 많이 겪는 오해가 있다면 뭘까요?
‘세다’는 선입견이오. 페미니스트는 아이라인을 길게 그리고, 남성적인 옷만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센 언니’가 아니에요. 예쁜 옷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도 즐겨요. 운동권도 아니고, 겁도 많아요. 그런 사람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오해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편견에서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입장과 다르면 나쁘고 틀렸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물론 틀린 생각도 있죠. 타인을 착취하거나 학대하는 범법 행위 같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페미니즘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와 존중에 관해 이야기하는 행위예요. 생각이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린 것은 아니죠.


책에 적을 수 있어서 후련했던 내용이 있다면 뭔가요?
노브라에 관한 얘기요. 남자들끼리 심각하게 토론하는 걸 봤어요. 어디에서 시작된 운동이고 기원이 어쩌고 하면서 떠드는데 웃기더라고요. ‘내가 그냥 불편해서 안 하겠다는데 왜 자기들끼리 난리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페미니즘이건 뭐건 내가 답답해서 안 하겠다는데, 그걸 역사적 기원까지 찾아가며 난리 치니 굉장히 웃겼어요.


책 표지가 고와요. 안의 내용은 센 편인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요?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책을 만들 때 예쁘게 만들어달라고 북 디자이너에게 요청했어요. 다만 그때 확실하게 말한 내용은 내 책이 페미니즘 코너가 아닌 에세이 쪽에 놓이길 바란다는 거였죠. 에세이 북들은 굉장히 예쁘잖아요. 그러고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서없이 말했더니 홀로그램까지 넣어주셨더라고요.


이 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제가 그러했듯이 독자들도 여성이 겪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이게 과연 정상인가?’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죠. 제 만화는 이론서가 아니잖아요. 이 책의 시작은 ‘저는 이런 일이 기분 나빴는데, 여러분도 기분 나빴나요? 아, 다들 그랬구나. 우린 왜 모두 기분이 나빴을까?’였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적으로 간주하지 않길 바라죠. 여성도 여성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하는 여자, 어두운 골목에서 이어폰을 빼는 여자, 나이에 쫓겨 결혼을 서두르는 여자. 이런저런 여자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썅년의 미학』을 쓴 저자 민서영을 만났다.

Credit Info

2019년 06월

2019년 06월(총권 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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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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