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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노란 조끼를 입었을까?

On February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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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시위는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칸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 시위가 한창이라고 해서 프랑스로의 여행이 위험하거나 금지된 것은 아니니 걱정 말길.

노란 조끼 시위는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칸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 시위가 한창이라고 해서 프랑스로의 여행이 위험하거나 금지된 것은 아니니 걱정 말길.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정부는 물론이고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친환경 경제와 환경오염 방지 명목으로 유류세 추가 인상 계획을 발표하면서 발발한 ‘노란 조끼 시위’는 해가 바뀐 2019년에도 여전히 뜨겁다. 부유세 부활, 연금 개혁 퇴출, 최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한편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까지 주장하는 시위대의 위협에 프랑스 정부는 결국 지난해 12월 4일 유류세 추가 인상 철회 입장을 발표했지만 사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참여 중인 시위대의 수는 13만6천 명. 약 2천 명이 불심 검문을 받았으며, 파리 시내에는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번 사태는 과연 무엇을 위한 시위일까? 파리1대학 정치학 교수인 프레데릭 사위키(Frederic Sawicki)가 그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양상을 예측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업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서민층 혹은 중간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회학자 올리비에 슈와르츠(Olivier Schwartz)는 ‘소-중 계급’이라고 구분한다. 이 계층의 사람들은 말끔한 집에 살면서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끔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강요받으며 산 사람들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 특히 노동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행복이 불안정한 것은 물론이고 자녀들 역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커녕 오히려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것.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인식이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있어왔다고 보고한다. 지난 정부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리오넬 조스팽 정부(1997~2002)는 근로장려세(PPE)나 석유제품소비세(TIPP)(2000년에 도입되었으나 2002년 폐지됨) 등을 시행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2007~2012)는 초과 근무 수당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마련했다. 이런 제도들은 사르코지의 말처럼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국민들’인 서민층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프랑스가 금융 위기를 겪은 이후 은행 구제, 기업 지원, 부유층 세금 인하, 공공 서비스 및 사회 수당 축소 등 다른 문제들로 우선순위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시위의 불씨가 된 것은 바로 유류세 인상
최근 휘발유와 경유, 가스 그리고 전기세 가격이 일제히 급등했고 퇴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기여금 (CSG)도 인상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움직임이 정부가 부유세를 대폭 인하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기에 유류세 인상으로 구매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집단적인 시위로 바뀌게 된 배경에는 대통령이라는 공통의 표적이 있었다. 어쩌면 에마뉘엘 마크롱 스스로가 표적이 되길 자처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도발적인 언행과 사회적 거만함, 독단적인 태도는 유류세 인상과 더불어 시위의 또 다른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 리더에 대한 공분과 부당함에 대한 비판이 널리 공유되기 시작했고 국민들이 노란 조끼 시위대를 더욱 지지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연대
이번에 국민들의 분노가 집단화된 방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례적이었다. 지금까지 대중적, 지역적, 산업적 시위 등 거의 대부분의 집단 시위는 노조 세력을 주축으로 구성되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조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고 되레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해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에 들어서야 일부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했을 정도. 이런 노조의 도움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터넷 덕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참여를 촉구하거나 구호를 공유하고 아직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 에게도 쉽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번 시위대가 특정 지도부 없이 대부분의 힘이 아래로 집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 거부 현상이다. 이는 기존 노조 혹은 정당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시위대의 각 구성원들이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상이한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지역별 대표를 뽑아 지도층을 조직하는 가능성도 예측되고 있다. 그 후 계획을 수립하고 기금을 모아 후보를 선정한다면 오는 5월에 열리는 유럽 의회 선거에 출마할지도 모를 일. 물론 4개월 만에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시위대의 다음 행보
시위의 위력은 시위대가 겨냥한 주체가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한다. 이들이 평화 협상이 아닌 폭력 시위를 선택하게 된 것 역시 전적으로 정부의 손에 달렸다. 만약 프랑스 정부가 양보에 너무 뜸을 들이거나 반대로 억압으로 대응한다면 갈등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1986년에 일어났던 시위에서도 모로코 출신 학생인 말릭 우세킨(Malik Oussekine)이 사망하자 노조와 인종 차별 반대 단체들은 힘을 모아 나섰고, 정부는 문제가 됐던 ‘드바케 법안’을 철회해야만 했다. 현재도 정부는 시위대의 주장과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여론에 더디게 대응하는 만큼 ‘소통이 되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만 고착되고 있는 상황이다(참고로 마크롱 대통령은 12월 10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저 임금 인상 등 시위대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덕분에 시위는 고등학생, 농업 종사자, 운송업자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이제 노란 조끼 시위는 정치권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고, 1968년 시위 당시처럼 사회학자 미셸 도브리(Michel Dobry)가 ‘시위의 비분열화’라고 정의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 그 단계에 이른다면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정치적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Credit Info

2019년 02월

2019년 02월(총권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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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장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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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