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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정답은 없어요

On August 17, 2018

다양한 메이크업을 선보였던 뷰티 크리에이터 ‘우뇌’는 탈코르셋 선언 후 활동을 중단했다.

다양한 메이크업을 선보였던 뷰티 크리에이터 ‘우뇌’는 탈코르셋 선언 후 활동을 중단했다.

다양한 메이크업을 선보였던 뷰티 크리에이터 ‘우뇌’는 탈코르셋 선언 후 활동을 중단했다.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꾸밀 자유도 있죠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다면 꾸밀 자유도 있죠

WORDS 이진송 (칼럼니스트)

“너 여대라고 너무 프리하게 다닌다. 좀 꾸미고 다녀.”
“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통 꾸밀 줄 모르던 내가 대학 신입생 때 들은 얘기다. ‘언제’는 나의 통학 과정이고, ‘무슨 일’은 연애를 유발하는 모든 순간을 말한다. 이 조언은 여성의 꾸밈을 바라보는 시선과 정도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규범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내가 꾸미지 않고 다니는 것은 남자가 없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고, 도달하기까지 무수한 남자들과 스칠 터이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왜곡된 시선들. 언급한 일화처럼 성적 대상으로 어필하는 것 외에도, 여성은 언제나 ‘보이기 좋게’ 꾸민 상태이길 강요받는다.

또한 여성의 외모는 미화 또는 정화되어야 하는 ‘환경’처럼 여겨진다. 장관이 온다고 하면 수선을 떨며 꾸미던 학교 게시판처럼, 언제나 적절하게 위생적이고 여성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이처럼 여성에게 가해지는 꾸밈 억압을 거부하고, 성적 대상화를 거부하겠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여성의 가치를 언제나 남성에게 어필하는 성적 매력으로 한정하는 남성적 시선에 균열을 내고, 여성은 외모나 다이어트 ‘따위’의 사소하고 비정치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여성 혐오적 사고를 타격한다. 과거에도 노브라·노 메이크업·제모 반대 운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발했으며, 꾸미지 않는 여성은 전통적으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왜 다시 탈코르셋 운동인가? SNS와 매스 미디어 속에는 아이돌뿐 아니라 머리끝부터 발뒤꿈치까지 잘 관리한 일반인 여성(일명 ‘SNS 셀렙’)들이 넘쳐나고, 아이돌 뷰티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꾸밈 억압의 그물코는 더욱 촘촘해졌다. 또한 성과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우선순위는 언제나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다시 한번 꾸밈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하고, 과거에는 페미니즘 활동가 정도로만 제한되었던 실천을 일상의 영역인 ‘보통 여자’들 투쟁 방식으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여성의 꾸밈에 대한 억압은 다층적이기 때문에 규범에 저항하는 ‘탈코르셋’ 역시 한 방향으로만 흘러서는 안 된다. 소위 ‘코르셋’이라고 하는 규범은 남성 권력이 추구하는 적당한 범위, 그 애매하고 협소하고 불가능한 영역에 여성을 몰아넣는 모든 것이다. 여성의 꾸밈은 이 적절한 범위를 벗어나면 언제나 결핍이거나 과잉으로 취급받아 교정의 대상이 되었다. 쥐 잡아먹은 입술, 공주병, 화떡, 사치품, 나이 든 여성의 긴 머리, 비만 여성의 노출, 장애 여성의 치마, 이공계 현장에서의 화장 등…. 여성은 어딘가에서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꾸몄다는 이유로 폄하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꾸미지 않는 여성이 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은 꾸며야 한다’라는 억압을 타격한다면, 꾸미는 여성이 ‘과도하게 함’으로써 ‘여성은 적당히 꾸며야 한다’라는 코르셋을 부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여러 맥락을 고려하고 검토해 각자의 자리에서 유의미한 실천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천박하다는 손가락질이나 남자 꼬드기려고 애쓴다는 비난 없이 꾸밀 자유뿐 아니라, 꾸미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의 가치를 부정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꾸미지 않을 자유 모두를 원한다. 어떤 여성이 남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꾸몄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멸시당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에게도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우리에게도 ‘꾸미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WORDS 김명지(대학생, 탈코르셋 운동 참여자)

‘탈코르셋’이란 여성을 옥죄던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일이다. 자기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해왔던 꾸밈 노동,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상, 여성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 등 사실 ‘코르셋’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탈코르셋은 ‘꾸미지 않을 자유’를 되찾는 것. 우리는 그동안 지독한 자기혐오를 겪어왔다. 화장을 하지 않은 날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거식증이 걸릴 때까지 다이어트를 하는가 하면, 여성의 얼굴과 몸이 ‘나노 단위’로 품평되는 것에 익숙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탈코르셋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덕분에 SNS에는 ‘탈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5천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오고, 지상파 뉴스에서도 해당 주제를 다룰 만큼 관심이 뜨겁다. 실제로 나 역시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했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당연시되는 화장이라는 여성 예의, 머리의 길이로 결정되는 여성성, 같은 신체 부위지만 성별에 따라 다른 취급을 하는 등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큰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여성이 나와 같은 심정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금 ‘꾸미지 않을 자유’를 외치고 있다. 앞서 말한 ‘잘못된 인식’들이 바로잡힐 때까지 ‘탈코르셋 열풍’은 계속될 것이다.

Credit Info

2018년 08월

2018년 08월(총권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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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고은영
PHOTO
Getty Images,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