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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가 남긴 것들

On July 12, 20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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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선생님의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늦은 시간까지 화보를 찍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요즘 장구를 배우고 계시다며 늦은 밤 스튜디오에서 진지한 얼굴로 장구를 치셨다.
그 모습에 우리가 참던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장구 실력에 비해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진지한 표정에서 선생님의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런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분이셨다. 

_서영희(스타일리스트)

"2015년 이영희의 40주년 기념 전시 <바람, 바램>의 인터뷰 차 뵈었을 때, 선생님은 전시장을 함께 돌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도중 몇몇 관객이 다가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라.
호탕한 기운이 넘치던 선생님이 그들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기뻐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색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닮고 싶은 컬러를 회색이라 하며, 그 이유를 모든 컬러를
품위 있고 우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컬러야말로 디자이너로서의 이영희를 가장 잘 표현하는 색이 아닐까 싶다.
_홍현경(프리랜스 에디터)

"선생님과 많은 쇼를 하면서 ‘전통 의상이 어떻게 이토록 모던하게 연출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생님은 쇼를 진행할 때 과장이나 허세로 보이는 요소들을 정말 싫어하셨다.
선생님이 만든 옷의 모든 색에서는 몇백 겹의 깊이가 느껴졌다.
모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옷을 보고 입지만, 그러한 깊이는 선생님의 옷에서만 풍긴다.
_이현이(모델)


지난 5월 17일 디자이너 이영희가 별세했다. 파리에 첫 한복 매장을 열고 뉴욕에 이영희한국박물관을 세우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동시대적으로 알린 디자이너로, 그녀의 나이 향년 82세였다.

우리가 한복 하면 떠올리는 것은 반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얇은 노방(오간자) 소재의 한복이다. 그러나 이영희가 한복을 처음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노방 소재로 한복을 짓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얇은 만큼 바느질하기 어렵고 쉽게 솔기가 뜯어지거나 미어져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었다. 이영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복의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하면서 원하는 색으로 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는 노방으로 한복 짓기를 고수했다. 결국 깨끼로 솔기를 세 번씩이나 바느질하여 마감과 솔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완성도 높은 한복은 인기를 누렸고, 이제는 본래 한복이 노방이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색동저고리도 이영희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40년 전만 해도 색동은 원색적이라 유치하다는 인식이 강해 아이들 옷에만 사용했지만, 이영희는 1984년 색을 다채롭게 조합하여 현대적인 색동저고리를 탄생시켰다. 그 후로 30년간 매년 새롭고 완벽한 색 조합을 찾기 위해 이것만을 고민하며 색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파리 컬렉션에 진출하면서 색동을 응용한 의상을 선보이고 세계에 한복을 알리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지금은 예식 한복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자주색 저고리와 회색 치마의 조합도 모던함을 주장했던 이영희의 작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인도에서 영감을 받아 길이가 짧고 몸에 붙는 저고리를 만들면서 하얗게 드러난 치마의 말기에 자수를 놓은 ‘말기 수’를 창조한 사람도, 불필요한 장식을 과감히 없애고 저고리를 벗어 던져 한복을 서양의 드레스처럼 파격적으로 입는 방식인 ‘바람의 옷’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도 이영희였다. 이는 ‘가장 현대적인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옷’이라는 호평까지 받았다. 치마폭 사이사이에 세로로 길게 자수 장식을 넣은 단청 자수, 천에 꽃송이를 수놓고 아플리케 방식으로 부착하는 송이 자수도 모두 이영희가 세상에 남긴 아름다운 흔적이다. 최초의 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고, 파리에 매장을 내고, 20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윈드 오브 히스토리’ 패션 공연을 했으며, 2004년에는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한복박물관도 개장했다. 2010년에는 한복 최초로 파리 오트 쿠튀르 무대를 이뤄냈다. 그 무엇보다 이영희의 공로는 한복을 전통 의상에서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의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한복에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2015년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한복을 주제로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들고 나온 조각보와 색동은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색동을 선보였던 이영희의 작업을 고스란히 연상시켰다. 한복을 연상시키는 실루엣과 장식을 선보인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드리스 반 노튼, 지암바티스타, 캐롤리나 헤레라 등 해외 디자이너들의 무의식 속에 심어진 한국의 아름다움 역시 40년이 넘게 치밀하고 완벽하게 한복을 재해석했던 ‘이영희 효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영희가 없었더라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하는 작업은 아주 더디고 지루한 방식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Credit Info

2018년 7월

2018년 7월(총권 104호)

이달의 목차
WORDS
남지현(프리랜스 에디터)
PHOTO
Getty Images, 이영희 홍보실

2018년 7월

이달의 목차
WORDS
남지현(프리랜스 에디터)
PHOTO
Getty Images, 이영희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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