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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도 지금 가스라이팅에 빠져 있진 않나요?

On April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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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이 스스로의 판단력과 기억력, 심지어는 스스로 보고 듣는 것까지 의심하도록 만들어 그를 자기 의도대로 행동하게 조종하는 심리적 기법 중 하나다. 1938년 발표된 패트릭 해밀턴의 희곡 『가스등』으로 처음 알려졌고, 1944년 영화화되면서 이런 수법을 일컫는 일반 명사로 굳어졌다. 참고로 이 영화와 희곡에는 여주인공의 보석을 노리고 결혼한 악당이 보석을 훔치기위해 그녀가 자꾸 사소한 것을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자기 행동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됐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가해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보통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집단이 구조적으로 개인에게 가하는 가스라이팅도 많다. 또한 남녀 모두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가스라이팅은 보통 4단계로 진행되는데, 우선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관계가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이나 권한을 가진 경우가 가장 많지만, 가해자가 아주 매력적인 경우에도 가능하다. 나르시시스트나 사이코패스들은 양심이나 가책이 없어 늘 당당하고 과감하며 자신감이 넘치는데,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두 번째는 결함의 과장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실수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틈틈이 상기시킨다. 그래서 피해자가 스스로의 판단력을 불신하고 자기가 내려야 할 판단을 가해자에게 맡기도록 유도한다. 덧붙여 사소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왜곡하는데 우리는 보통 사소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에 가해자의 주장을 명확히 반박하지 못한다. 그렇게 스스로 사소한 기억들을 계속 틀렸다고 믿게 되면 점차 자신의 모든 기억력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고 결국엔 논쟁이 벌어진다. 그때부터 세 번째 단계인 무조건적인 거부가 시작된다. 가해자는 직접 반박하기보다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식으로 나온다. 피해자의 모든 주장(그게 아무리 옳고 당연하더라도)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거나, 사소한 것을 과장했다거나, 완전한 착각 혹은 환각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은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피해자를 ‘별것 아닌 일로 따지거나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피해자는 자기 기억이나 판단력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의심하게 된다. 즉, 모든 자존감이 무너지고 쉽게 조종당하는 상태가 되는 것. 사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들은 애초부터 피해자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이 단계가 바로 가스라이팅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 피해자들 역시 대부분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라 볼 수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겪은 피해들을 밝히지 못한 것은 벌어질 상황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자기가 당한 것이 성희롱이나 폭행인지도 확신하지 못했을 때문이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째, 자신에 대한 타당한 믿음을 키우라. 당신이 반드시 전부 옳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무엇이 틀렸고 무엇이 옳은지를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검증하고 확인해보라는 얘기다. 가스라이팅은 맞고 틀림을 판별하는 능력조차 부정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판단력과 직관을 확인하고 실험해볼 기회를 계속 만들라. 혹여 모두 다 틀리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한 것들을 조금씩 늘려보자. 그것이 곧 자신감이 되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기초가 된다.

둘째, 상대방이 쓰는 전략과 기법을 이해하라. 상대방의 의도를 모를 때 가장 쉽게 당한다. 실제 가스라이팅의 전략들(거부하기, 반박하기, 불신하기, 슬쩍 화제 돌리기, 의도적으로 망각하거나 부인하기 등)을 공부하라. 알면 알수록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지금 내가 무슨 상황에 빠져 있는지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셋째,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벗어나라. 당신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을 고치려 하거나 그의 잘못을 증명하려 들지 말라. 상대방은 당신의 지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새로운 가스라이팅을 시작할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그 사람이나 그 집단으로부터 벗어나라. 당신의 목적은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되찾는 것이다. 말로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 가스라이팅을 끊어내는 건 쉽지 않다. 영화 <가스등>의 주인공이 브라이언 경위의 도움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대개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외부와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막는데, 이는 곧 브라이언 경위와 같은 객관적 조력자가 끼어들 기회를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즉, 가스라이팅 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힘들고 어려울수록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외부와의 교류를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 피해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라 볼 수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겪은 피해들을 밝히지 못한 것은 그 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기가 당한 일이 성희롱이나 폭행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임무라고 믿었거나 그 높으신 분의 독특한 애정과 관심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요즘 불고 있는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에게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긍정적인 효과라 볼 수 있다. 고통받던 여성들이 양지로 나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현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갑다. words 장근영(심리학 박사)

Credit Info

2018년 04월

2018년 04월(총권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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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장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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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