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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일으킨 테니스 신드롬

On March 05, 20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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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이 조코비치에게 내리 두 세트를 따내고 있는데 이거 실화냐.’
호주 오픈 16강전이 열리던 날, ‘카톡카톡’ 소리가 수도 없이 울렸다. 누군가는 ‘조코비치의 신음 소리가 너무 안쓰럽다’며 술렁거렸다. 나는 1990년 코트 위의 패셔니스타였던 안드레 애거시에게 ‘입덕’하여 수십 년간 테니스 팬으로 살아왔지만, 주변에서 이렇게 테니스에 관심을 보인 적은 처음이다. 국내에서 테니스는 나이 지긋한 오빠들이나 즐기는 한물간 스포츠였고,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 코트는 어떻게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할까 고민하는 공공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현이 2018년 1월 22일 자신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었던 조코비치를 3 : 0으로 꺾은 뒤 호주 오픈 8강행 티켓을 따내고, 이틀 뒤에는 호주 오픈의 언더도그인 테니스 샌드그렌(미국, 97위)을 꺾고 4강에 오르면서 갑자기 대한민국에 테니스 열풍이 일은 것.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테니스 대회가 열리지만, 그중에서 ‘그랜드 슬램’이라 불리는 4대 메이저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롤랑가로스 대회, 영국 윔블던 대회, US 오픈)의 명성은 상상 그 이상이다. 대회당 우승 상금이 평균 30억원이 넘을뿐더러 지난 10년 동안 그랜드 슬램 대회 4강에 진출한 이들을 모두 합쳐도 총 30명밖에 되지 않는다.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레이 등 소위 빅 4로 불리는 선수들이 독식하고 있기 때문. 지난 10년 동안 시드(*상위 32명에게 랭킹을 부여하여 좀 더 유리한 대진을 배정받도록 만든 제도)를 받지 못하고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한 선수는 2008년 윔블던의 마라트 사핀, 2008년 윔블던의 라이너 슈틀러, 2008년 롤랑가로스의 가엘 몽피스로 단 3명뿐이었다. 이제 정현이 그 명단에 이름을 추가했다.

사실 테니스 팬 사이에서 정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 이었다. 세계 주니어 랭킹 20위권 안에 들었던 정현은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어린 시절 체구가 작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동양의 꼬마는 고등학교에 가면서 키가 쑥쑥 자라 188cm라는, 서양 선수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피지컬을 가지게 되었다. 성인 무대에 도전한 2014년, 인천 아시아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병역 면제를 받은 것도 프로 선수로 투어를 뛸 수 있었던 큰 장점이었다. 2015년에 정현은 차근차근 포인트를 쌓으며 세계 랭킹 50위권에 올랐고, 대한민국의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쓸 준비를 모두 마친 듯했다. 하지만 2016년에 부상과 슬럼프가 찾아왔고, 정현의 랭킹은 100위권 밖으로 쭉 미끄러졌다. 일부 팬들은 정현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정현도 팬들도 소위 ‘멘탈 붕괴’의 시기였다. 테니스에서 멘탈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스트로크·발리·서브 같은 테니스의 기본기와 풋워크, 체력 등은 프로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일정 이상의 수준을 갖춘다. 나머지는 멘탈의 몫이다. 그랜드 슬램에서만 20번 우승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도 20대에는 경기 중에 흥분하는 일이 꽤나 잦았다고 한다. 그가 테니스 황제로 등극한 것은 멘탈을 관리한 이후의 일이다(테니스 선수 출신이자 페더러의 와이프인 미르카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 랭킹 3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 랭킹 4위) 같은 선수 역시 최정상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은 순전히 멘탈 때문이다. 테니스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선수들을 ‘새가슴’ ‘멘탈레기’라고 지칭하며 놀리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 아닌가!

모두가 멘붕에 빠졌던 2016년 여름, 정현은 4개월 동안 과감하게 투어를 중단했다.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서브와 포핸드 스트로크를 정비하고, 전 테니스 국가 대표이자 스포츠 심리 전문가인 박성희 박사의 도움을 받아 멘탈도 훈련했다. 모두가 정현의 한계를 운운할 때 그는 조용히 자신을 다듬었다. 그리고 2017년, 정현은 화려하게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롤랑가로스 3회전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고, 연말에는 21세 이하 테니스 유망주들을 모아 왕중왕을 겨루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대회에서 두 번 맞붙은 안드레이 루블레프 (러시아, 당시 랭킹 37위)는 자신보다 낮은 정현 (당시 랭킹 54위)을 만나 고전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경기 중에 라켓을 때려 부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자멸했다. 하지만 정현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플레이를 했다. 이때부터 외신은 21세의 침착한 정현 선수에게 ‘프로페셔’ (교수님)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이는 물론 단순히 그가 쓴 안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현의 2018년 호주 오픈 4강 진출이라는 결과는 오래전부터 갈고닦아 준비된 것이었다. 4강에서 페더러를 만나 아쉬운 기권 패를 했지만, 정현의 미래를 더 기대해봐도 좋은 건 그의 승리가 실력뿐 아니라 훌륭한 멘탈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보는 정현 효과

5억원
삼성증권은 2014년에 테니스단을 해체했지만 2015년부터 정현 선수 개인을 후원해왔다. 후원금은 대회 참가 비용과 보너스 등 연 5억원 수준.
2월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기업의 후원 문의가 많아졌고, 후원금 또한 2배 이상 뛸 것으로 예상된다.


50만 달러
라코스테는 정현에게 유니폼, 모자 등을 후원하고 있다. 금액은 연 50만 달러 수준으로 2016년에 5년 계약을 했기 때문에 라코스테로서는 ‘가성비 갑’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
 

  • 5배
    시력이 나쁜 정현에게 안경은 아이코닉한 소품. 정현이 착용하는 오클리 ‘플락베타’(Flak Beta) 모델은 호주 오픈 이후 평소보다 5배의 주문 및 문의가 오고 있다. 하지만 정현에게 7년째 안경을 후원하고 있는 곳은 오클리 본사가 아닌 분당의 한 안경원이라는 후문.
     

  • 5억5천만 달러
    기아자동차는 2002년부터 17년째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를 후원하고 있는데, 이번 연도에는 정현 덕분에 광고 효과가 높아졌다. 전문 시장 조사 기관인 ‘레퓨컴’이 집계한 결과, 기아자동차의 홍보 효과는 약 5억5천만 달러(약 6300억원) 이상.  

  • 150%
    요넥스는 2015년부터 정현에게 테니스 라켓, 가방 등의 용품을 후원하고 있다. 정현이 201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브이코어 듀얼지’ 라켓은 그해에 이미 판매량이 150% 증가했다.  

  • 286만원
    주요 테니스 대회의 공식 타임 키퍼인 라도는 2015년, ‘라도 영스타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전 세계 테니스 유망주 4명을 발굴하여 지원했다. 정현도 그중 한 명. 페더러, 나달 등 유명한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후원 브랜드의 시계를 재빨리 착용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는데, 정현 또한 8강 진출 확정 후 잊지 않고 라도 하이퍼크롬 캡틴 쿡 45mm를 착용했다. 가격은 286만원.

Credit Info

2018년 3월

2018년 3월(총권 100호)

이달의 목차
WORDS
명수진(프리랜스 에디터, 테니스 애호가)
PHOTO
Getty Images, Instagram @hyeon519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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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진(프리랜스 에디터, 테니스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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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Instagram @hyeon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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