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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미우새' 출연자들이 여성이었다면?

On July 21, 2017

'엄마가 철부지 아들의 일상을 관찰한다’는 설정의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가‘일요 예능 시청률 원 톱’ 자리를 장기 집권 중이다. 한데 만약 ‘클럽 마니아 박수홍’이나 ‘60억대 빚쟁이 이상민’의 캐릭터에 여성을 대입시켜도 프로그램이 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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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한국 사회가 여전히 남성에게 더욱 관대함을 알 수 있다.

SBS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한국 사회가 여전히 남성에게 더욱 관대함을 알 수 있다.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당시 소량의 집들이 음식을 준비한 일로 사과문을 쓴 배우 김슬기.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당시 소량의 집들이 음식을 준비한 일로 사과문을 쓴 배우 김슬기.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당시 소량의 집들이 음식을 준비한 일로 사과문을 쓴 배우 김슬기.

“너 이 결혼 못해.” 김밥 가게에 들렀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배우 김해숙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국 드라마를 요약하라면 첫손에 꼽아도 괜찮을 법한 대사다. 중년 여성의 발언권은 자식의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이 현상은 드라마 바깥의 예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주말 드라마와 맞먹는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 SBS <미우새>가 그 중심에 있다. 딱히 관심 없는 연예인의 일상 따위 알 게 뭐냐 싶었지만, 아들의 관찰 카메라에 반응하는 엄마들을 다시 관찰하는 포맷은 흥미로웠다. 아들이 밥을 혼자 먹는다고 눈시울을 붉히고, 일어나자마자 소주로 반주하는 아들의 짝으로 열 몇 살이 어린 여자 연예인을 언급하던 엄마들이 짐작과는 다른 성인 자녀의 사생활을 지켜보며 ‘쟤가 그럴 애가 아닌데’, ‘쟤가 왜 저러지’, ‘어머 쟤 좀 봐’ 하다가 ‘쟤가 그런 애구나’ 하고 체념하기를 바랐다. 사적인 공간을 들쑤시는 관찰 카메라에 기대할 만한 역할이 있다면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엄마들의 기대에 어긋날수록, 온후한 미소를 짓던 엄마들의 얼굴이 석고처럼 굳을수록 재미있었다. 사실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까 괜찮았다. 모두가 그들을 이해하니까. 그런데 그 너그러움이 남성 연예인에게만 해당됨을 깨달은 것은 1인 가구 관찰 예능인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김슬기가 사과문을 썼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다.

집들이 때 고기를 조금 샀다고 논란이 되었고, 그녀는 치킨 세 마리를 더 시켰다고 해명했다. 방송을 봤지만 혼자 소박하고 정갈하게 일상을 꾸리고 끼니도 늘 먹을 만큼 그때그때 챙기는 김슬기가 손님을 초대했고, 장을 보고 고단해서 낮잠을 잤고, 음식이 좀 모자랐다. 그게 다였다. 사람들은 김슬기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지고 트집 잡기 위해, 방어회를 뜨고 산지에서 낙지를 공수하여 손님 대접 준비를 근사하게 치러낸 박나래의 집들이와 비교했다. 이 비교는 온당할까? 박나래가 유별나게 잘해서 화제가 되는 것은 옳지만, 손님 대접에 서툰 것이 비난받을 일인가?

 


출연자를 모두 여자 연예인으로 교체하면 어떨까?
조금만 유난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촬영 중에 기분이 상한 기색이라도 내비친다면
단박에 ‘태도 논란’이 불거질 거다.
관찰 카메라 속의 딸을 변호하거나 딸의 결혼 상대 조건을 세세하게 따지는 엄마들에게도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관대할까?



<미우새>로 옮겨보자. 평소 청소에 유난스럽던 허지웅이 큰맘 먹고 손님을 초대하고 손님 의자에 김장 비닐을 깔았다고 ‘허지웅 김장 비닐 논란’ 같은 기사가 뜨지는 않는다. <미우새> 출연자가 소개팅에서 무례했거나, 거액의 빚을 갚고 있거나, 클럽을 기웃거리며 놀 궁리를 하거나, 어느 날은 심기가 불편해 짜증을 내도, 예민한 성품이 혹은 철이 없는 모습과 굴곡진 개인사가 그들 각자의 다양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캐릭터를 불려갈 수 있다. 한데 출연자를 모두 여자 연예인으로 교체하면 어떨까? 지금까지 여론에 비추어 보면 조금만 유난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촬영 중에 기분이 상한 기색이라도 내비친다면 단박에 ‘태도 논란’이 불거질 거다.

관찰 카메라 속의 딸을 변호하거나 딸의 결혼 상대 조건을 세세하게 따지고 있는 엄마들에게도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관대할까? <나 혼자 산다>의 박나래처럼 아낌없이, tvN <윤식당>의 정유미처럼 지치지 않고 세심하게 서비스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멀쩡한 성인 남자가 스스로를 위해 상을 차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당연한 일상은 안쓰러워하거나 기특해한다. 아들이 쉰이 되어서도 ‘미운 우리 새끼’라고 챙기는 엄마들을 자꾸만 불러내는 까닭도 아들뿐만 아니라 조손 양육, 노부모 간병을 비롯한 상당 부분의 돌봄 노동을 모계에서 끌어오고 전가시키는 현실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예능이든 드라마에서든, 음식을 잘하든 말든, 집안을 어떻게 꾸며놨든, 여자들의 삶의 방식에 관한 습관적인 오지랖과 잔소리를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물론 현실에서도.

'엄마가 철부지 아들의 일상을 관찰한다’는 설정의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가‘일요 예능 시청률 원 톱’ 자리를 장기 집권 중이다. 한데 만약 ‘클럽 마니아 박수홍’이나 ‘60억대 빚쟁이 이상민’의 캐릭터에 여성을 대입시켜도 프로그램이 흥했을까?

Credit Info

2017년 7월

2017년 7월(총권 92호)

이달의 목차
WORDS
유선주(TV 칼럼니스트)
EDITOR
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