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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연대해야 돼요, 우리끼리!

On May 24, 2017

독서 모임은 기본, 세미나·강연·전시·상담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훗날 커다란 한국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두잉’을 차렸다는 김한려일 대표를 만났다.

 

50대 초반의 나이에 접어들어 대학 시절 꿈꾸었던 ‘페미니즘 멀티 카페’를 경영하게 된 ‘두잉’의 김한려일 대표.

 



지나가다 우연히 들르기엔 조금 애매한 위치 같아요.
네, 손님 중 90%가 SNS에서 카페의 존재를 알고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에요. 가게 문을 연 2월 초,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즘 멀티 공간이 생겼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퍼졌더라고요. 두잉 블로그에 ‘트위터하세요!’라는 댓글도 달리고.

국내에선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유독 트위터를 통해 자주 공론화되는 듯해요.
야속하게도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오픈한 지 일주일 정도 되던 즈음 부랴부랴 트위터를 시작했죠(웃음).

‘두잉’의 뜻은 뭐예요?
페미니즘과 삶의 역동성 및 합일성을 의미하는 ‘페미니즘함’ 즉 ‘두잉 페미니즘’(Doing Feminism)에서 앞의 단어를 땄어요. 경험과 지식이 만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에서 파생한 새로운 경험이 다시 사고 체계를 수정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뜻하죠. 이 장소를 매개로 늘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염원도 담겨 있고요.

카페의 정체성을 모른 채 방문한 손님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도 있나요?
두 명이 기억나요. 첫 번째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고3 남학생인데요, 올 때마다 앉은 자리에서 자신이 챙겨온 책 두 권을 후루룩 읽고 가더군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저녁 7~8시 무렵에 왔다가 11시쯤 귀가하는 스케줄로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페미니즘의 개념을 다룬 입문서로 시작해 서가에 꽂힌 책들을 하나둘씩 꺼내 읽고 있어요.

다른 한 명은요?
막 대학을 졸업한 듯 보이는 페미니스트 청년인데요.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데, 강남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며 엄청 반가워하더라고요. 그 후 연달아 3일 출근 도장을 찍더니, 얼마 있다가 엄마도 모시고 왔죠.

청담역 인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궁금해요.
어린 두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 생활하던 경험 때문에 직장과 집이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이번에도 그런 점을 우선시했죠. 또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바로 옆 노인복지회관에 다니셔서, 가게 영업을 마친 후 카페에 들른 어머니와 함께 귀가하곤 해요. 어머니도 여기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셔요.

예상 밖의 답변이네요. 왠지 페미니즘과 관련된 사연이 얽혀 있을 줄 알았거든요.
다른 차원의 생각도 했죠. 인문학이나 페미니즘 관련 모임이 마포구 쪽에 집중돼 있잖아요. 그런데 강남에도 페미니스트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가부장제의 고통이 체화된 여성들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강남에도 페미니즘을 체화할 수 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간이 하나쯤 존재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두잉’의 메리트는 대표님이 직접 주재하는 ‘여성주의 상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인 듯해요. 책과 전시, 강연을 준비한 공간은 요새 꽤 많잖아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한데 여태 세 분 정도를 상담한 게 전부네요(웃음).

상담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내담자 스스로 페미니스트 관점의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돕습니다.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각에서 ‘자기 비하’나 ‘자신감 결여’ ‘비정상성’ ‘틀림’ ‘병’ 등으로 잘못 해석된 서사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상담을 마친 후엔 관련 공동체도 연결해 주고요.

전시와 강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선정 기준은 ‘그 무렵 제가 꽂힌 작가나 주제’예요(웃음). 페미니즘이나 젠더 관련 이슈뿐 아니라 동식물의 생명권, ‘세월호’처럼 우리가 꾸준히 주목했으면 하는 이슈들을 두루 다루려고 해요. 이를테면 4월 21일부터는 ‘외모 지상주의’를 주제로 한 이충열 페미니스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죠. EBS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페미니스트 은하선 씨가 자신의 저술서 『이기적인 섹스』를 중심으로 토크도 진행하고.

‘페미니즘 멀티 카페’를 만드는 게 25년 전의 꿈이었다면서요.
20대 초반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쓴맛을 몰랐어요(웃음). 스스로 가난하게 살려고 결심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가난한 신학생으로 살다가 결혼과 이혼을 차례로 경험했고, 7살과 9살의 아이들을 20대 청년이 될 때까지 혼자 키워낸 지금에서야 꿈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되었네요. 

청담역 5번, 6번 출구 사이의 골목에서 ‘두잉’의 노란 간판을 찾을 것.

청담역 5번, 6번 출구 사이의 골목에서 ‘두잉’의 노란 간판을 찾을 것.

청담역 5번, 6번 출구 사이의 골목에서 ‘두잉’의 노란 간판을 찾을 것.

서른 중반 무렵 싱글맘이 된 후의 상황은 어땠나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퇴근 후엔 두 아들을 챙기느라 바빴죠. 직업이 몇 번이나 바뀌었고, 설상가상으로 건강이 나빠져 일을 쉰 적도 있어요.
이후 어렵게 모은 돈도 2012년 사기를 당해 다 날리고.
그런 일들을 겪는 동안 세상이 여성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길, ‘한 남자의 창녀’와 ‘만인의 창녀’로 나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여성은 남성의 소유이며, 남성을 위로하는 존재더군요. 여자라는 이유로 업신여김과 부당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살살거려야 하고. 특히 이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었어요. 이러한 경험들이 저를 강인한 페미니스트로 만들었죠.

아이들은 엄마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첫째 아들이 페미니스트예요. 어려서부터 저를 붙들고 대화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해요. 스스로 관련 서적도 꺼내 읽더군요. 반면 둘째 아들은 친구나 형들과 몰려다니면서 주먹질도 했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녔죠. 그 사실에 한동안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웠어요.
가부장제의 남성 연대는 엄마보다 힘이 셉니다(웃음).

지금의 추세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면 다음 세대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아져야죠.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 ‘두잉’이 만들어진 거고요. 얼른 동네마다 이런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꿈을 접게 된 ‘싱글맘’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고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끼리 연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어떨까 싶고. 이게 제 최종 꿈이에요.

훗날 연대의 장에서 리더가 된 대표님의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요?
시스템을 보고 싶을 뿐,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되레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체질에 더 잘 맞죠. 세상에서 내 존재는 잊혀도 괜찮아요.



‘두잉’ 김한려일 대표의 페미니즘 추천 도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권김현영 외 3명 저, 교양인)
성 문화 연구 모임 ‘도란스’에서 내놓은 기획 총서의 첫 번째 책. 젠더 이분법과 관련한 논지와 주제들을 다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저, 은행나무)
일상에 숨어 있는 여성 혐오적인 부분을 꼬집었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정희진 외 11명 저, 우리학교)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써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강조한 입문서. 성, 환경, 과학 등 다방면의 여성 이슈를 담았다.

독서 모임은 기본, 세미나·강연·전시·상담 등을 통해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훗날 커다란 한국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두잉’을 차렸다는 김한려일 대표를 만났다.

Credit Info

2017년 5월호

2017년 5월호 (총권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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