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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추모 열기는 왜 이렇게 뜨거울까

On June 22, 2016

5월 셋째 주, 강남역 10번 출구가 순식간에 포스트잇과 꽃다발로 뒤덮였다.‘묻지마 살인'은 처음이 아니지만 충격적인 살인 사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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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인식은 문제 개선의 첫걸음

문제 인식은 문제 개선의 첫걸음

도유진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감독)

얼마 전 영화감독 박성미 씨는 트위터를 통해 ‘살면서 겪은 성추행, 폭력, 희롱 경험의 빈도’(여성 대상)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3일간 약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49%의 여성이 여러 차례 겪었고, 34%의 여성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의 경험을 했다. 그리고 9%의 여성만이 단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다고 답했는데, 이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우스갯소리로 그 흔한 바바리맨 한 번 본 적 없는 나의 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정도다. 그만큼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 가운데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입에 올리기 싫은 갖가지 일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언젠가 화장실 몰카 뉴스가 신문 1면을 장식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여성이 더 이상 사생활이 안전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라넷으로 한국이 떠들썩했을 때는 리벤지 포르노나 강간 약물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최근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을 통해서는 다음 희생자가 나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이러한 불안감은 미국에서 온 에이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혼자 공중화장실에 가는 게 무섭다며 매번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최근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본인 스스로가 잠재적 피해자에 해당됨을 확실히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참혹하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남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가 느끼는 불안함과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설사 인지하더라도 남의 일 혹는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나 겪는 일 정도로만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여성들 스스로가 공론화시키지 않으면, 또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도움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함을 직시해야 한다. “여성을 향한 폭력은 여성에 대한 비존중(Disrespect)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심각한 문제라 생각된다면 여성에 대한 비존중을 목격하는 즉시 멈춰 달라.” 현재 호주 정부가 시행 중인 캠페인 ‘Respect’의 주요 골자다. 문제 인식은 문제 개선의 첫걸음이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이 온라인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토로하는지 귀 기울여보자.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미랑
(한남대 범죄학 교수,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저자)

최근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두고 ‘여성 혐오’ 혹은 ‘조현증’으로 인한 참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범죄학자로서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동안 발생됐던 여성 혐오 사건들은 폐쇄된 공간보다는 주로 오픈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짙었다. 게다가 정신이상자가 벌인 사건의 경우특유의 패턴이 존재하는데, 이번 강남역 사건에선 그런 점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발적으로 벌어진 단순 살인 사건으로 봐야 옳을 듯하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대적으로 저항에 취약한 대상을 노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건 현장인 화장실에 숨어 대상을 물색하던 피의자는 화장실에 들어온 남자들은 그냥 내보내고 첫 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공격했다. 만약 그때 여성이 아니라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들어왔다면? 피해자는 그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즉, 피의자는 여성이라는 성별보다는 사회적 그리고 물리적으로 약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고른 것이다.

사실 불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묻지마 살인’이나 ‘여혐’ 사건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인상적인 추모 방식과 그 영향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많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대대적으로 추모식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전국은 비탄에 빠졌고,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몇몇 여성 단체의 시위 모습이 비쳐지자 한편에선 페미니스트들의 과민 반응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이 희생자여서, 여혐 사건으로 보는 시각 때문에 여성들이 분개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확대해서 보면 강남역 사건 역시 그 본질은 강간이나 아동 학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선 어린아이나 노인 그리고 여성에 이르는,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이 강자들의 폭력과 폭언 속에 고통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음지에 있던, 그리고 속으로 쌓아두기만 했던 그들의 두려움이 폭발했고 다수 속에 매몰됐던 소수와 약자들의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서는 디딤돌이 된 셈이다.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여성 운동에 힘을 보태고, 이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그리고 가려져 있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포스트잇 한 장으로 가능한 변화

포스트잇 한 장으로 가능한 변화

민용준
(칼럼니스트)

지난해 파리 테러 직후, 파리 시민들은 테러 현장과 인접한 레퓌블리크 광장에 추모의 언어를 모았다.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과 사진이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상 주변에 쌓였고, 꽃다발과 촛불의 행렬이 이어졌다. 무자비한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개개인의 신념을 광장에 강력히 표출한 셈. 이런 식의 추모는 서양에서 흔한 일이다. 1997년 파파라치의 추격에 벗어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그녀를 추모하는 영국인들은 다이애나가 세자빈 시절에 머물렀던 켄싱턴 궁 앞에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과 꽃다발을 남겼고 촛불을 밝혔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 국내에서 이런 방식의 추모가 가장 명확히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아마도 세월호 참사 때부터인 것 같다.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 혹은 노란 종이가 진도 팽목항을 노랗게 물들였고, 이 노란 물결은 서울의 시청광장과 광화문 광장으로까지 이어졌다. 노란 리본을 다는 것만으로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가 표명됐다. 명확한 공감대를 교환하는 시각적 선언이 된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켜켜이 붙은 포스트잇도 마찬가지. 지난 몇 주 사이에 강남역 10번 출구는 여성 혐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추모의 장을 넘어,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성지가 됐다. 여성 혐오에 대한 호소와 절규가 담긴 언어가 적힌 포스트잇이 1천여 개 넘게 붙었다. 꽃다발과 촛불이 위로를 위한 전통적인 도구에 가깝다면, 포스트잇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구다. 폭력성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여성 혐오에 반하는 연대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포스트잇이라는 정사각형 종이에 옮겨져 강남역 10번 출구에 게시된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지나치는 통로였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일종의 게시판이 됐고, 신문고가 됐고, 광장이 됐다. 큰 의미가 없던 일상적인 공간이 상징적인 역사성을 입게 됐다. 이는 시민 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로 닿을 것이다. 촛불 시위가 시위 문화의 새로운 근간이 됐던 것처럼,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은 사회적 부조리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대두될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어느 공간을 점하는 시각적인 규모로 전시될 때, 그것은 전 사회를 울리는 강력한 확성기로 작용된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전진한다, 생각지도 못한 평범한 것들을 통해서.

5월 셋째 주, 강남역 10번 출구가 순식간에 포스트잇과 꽃다발로 뒤덮였다.‘묻지마 살인'은 처음이 아니지만 충격적인 살인 사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

Credit Info

2016년 06월 02호

2016년 06월 02호(총권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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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장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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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news/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