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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칠레 항구에

On June 13, 2016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만큼 북부의 사막부터 남부의 파타고니아까지 백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중 꼭 한 군데에 들러야 한다면 항구 도시로 가라. 젊음과 예술이 넘쳐나는 발파라이소, 할 일이라곤 맥주 마시는 것뿐인 앙쿠드는 나의 ‘인생 항구 도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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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의 집에서 바라본 풍경. 바다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그의 집 벽은 대부분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집에서 바라본 풍경. 바다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그의 집 벽은 대부분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살고 싶어서 직업을 바꿨어”

칠레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미국 여성 낸시를 만났다. 그녀는 뉴욕에서 꽤 잘나가는 저널리스트였는데, 항구 옆 초등학교의 영어 교사로 근무하며 호스텔에 살고 있었다. 내게도 발파라이소는 남미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도시다.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내게 남미는 아름답지만 살기에는 좀 ‘터프’했다. 그런데 칠레의 항구 도시들은 달랐다. 그중에서도 발파라이소와 앙쿠드는 방랑하는 여행자들을 머물게 만드는 ‘늪’ 같은 곳이다. 발파라이소는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2시간 걸린다. 보통 여행자들은 산티아고에서 당일치기로 발파라이소에 들른다. 하지만 이곳은 일주일을 머물러도 모자란다. “시인과 화가·철학자를 꿈꾸는 많은 이가 오랫동안 이 북적이는 항구 도시의 매력에 이끌렸고, 그들은 선원과 부두 노동자·매춘부와 함께 투지 넘치는 발파라이소에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통렬한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론리 플래닛>의 소개 글만큼 이곳은 쇠퇴한 항구 도시 특유의 낡고 바랜 건물과 아티스트들의 컬러풀하고 생기 있는 벽화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칠레는 이곳을 문화 수도로,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Valparaiso 발파라이소

소토마요르 광장. 매일 오전 10시, 오후 3시에 프리워킹 투어가 열린다.

소토마요르 광장. 매일 오전 10시, 오후 3시에 프리워킹 투어가 열린다.

소토마요르 광장. 매일 오전 10시, 오후 3시에 프리워킹 투어가 열린다.

발파라이소의 개성 있는 벽화들.

발파라이소의 개성 있는 벽화들.

발파라이소의 개성 있는 벽화들.

발파라이소를 걷다

발파라이소의 소토마요르 광장에선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프리워킹 투어’가 출발한다(45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발파라이소를 거닐려면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45개의 언덕 중 가장 화려하다는 콘셉시온 언덕과 바다가 펼쳐지는 카르셀 언덕을 걸었다. 언덕마다 아티스트들이 그린 벽화들이 빼곡했다. 가이드가 말했다. “45개의 언덕은 곧 45개의 개성을 의미해. 스타일이 다 다르지? 벽화는 그 집주인의 시그너처이기도 해.” 벽화가 문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무나 사진작가가 될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발파라이소에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이 있다. 네루다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발파라이소는 골목도 많고 모퉁이도 많고 숨겨진 것도 많은 곳이다.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집집마다 내걸린 빨래와 끊임없이 늘어나는 맨발의 아이들은 벌집 같은 판자촌에서도 사랑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의 집은 발파라이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다. 바다를 사랑했던 네루다답게 벽은 창으로 이뤄졌고, 그가 고민할 때마다 앉았다는 의자는 그 무게만큼 꺼져 있었다.
 

Vina_ del Mar 비냐델마르

네루다가 즐겨 먹었다는 붕장어 수프.

네루다가 즐겨 먹었다는 붕장어 수프.

네루다가 즐겨 먹었다는 붕장어 수프.

칠레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비냐델마르 비치.

칠레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비냐델마르 비치.

칠레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비냐델마르 비치.

비냐델마르의 젊은 예술가들

해수욕을 원한다면 발파라이소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비냐델마르로 가면 된다. 칠레인들이 정말 사랑하는 휴양 도시다. 볼리비아에서 만난 칠레 커플은 “비냐델마르에 꼭 가봐야 해”라며 신신당부했다. 내가 묵은 호스텔에도 장기 거주하는 칠레인들이 많았다. 산티아고 토박이 청년 마리노에게 비냐델마르에 머무는 이유를 묻자 “산티아고가 쇳”이란다. 쇳? 내가 잘못 들었나? 그는 회색의 산티아고가 아닌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이곳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밤 10시, 보트를 타고 발파라이소에 가자고 했다. “여행자들끼리 보트에서 맥주 파티를 열곤 하거든.” 그렇게 그는 젊음을 기분 좋게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냐델마르를 에메랄드 빛 휴양지로 생각하면 실망할 수 있다. 어쩔 땐 해운대를 닮아 친근하다(해운대처럼 회와 소주가 없으니 서운하기까지 하다). 이곳을 칠레인들이 왜 이렇게 사랑하는지는 아마 마리노처럼 오래 머물러야 알 것이다. 그리고 다시 비냐델마르에서 발파라이소로 돌아와 며칠을 더 묵으며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다 보니 그들처럼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Ancud 앙쿠드

육류와 채소를 넣어 만든 스튜 카수엘라.

육류와 채소를 넣어 만든 스튜 카수엘라.

육류와 채소를 넣어 만든 스튜 카수엘라.

앙쿠드의 맘씨 좋은 호스트 할아버지와 함께.

앙쿠드의 맘씨 좋은 호스트 할아버지와 함께.

앙쿠드의 맘씨 좋은 호스트 할아버지와 함께.

앙쿠드 물고기 집에 머물다

발파라이소가 잃어버린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깨우는 곳이라면, 앙쿠드는 잃어버린 옛 기억을 깨우는 조용한 항구 도시다. 앙쿠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칠레의 칠로에에 있다. 칠로에는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14시간 정도 걸리며, 버스가 배에 실려 섬으로 들어간다. 앙쿠드 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땐 조금 당황했다. 관광지가 아닌 작은 마을이라 호스텔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3kg의 배낭에 어깨가 주저앉을 즈음 할아버지를 만났다. 방을 찾느냐는 거였다. 앙쿠드에선 호스텔도 있지만 많은 가정집에서 여행자에게 방을 대여한다. 할아버지를 따라간 2층의 목조 주택은 물고기 집 같았다. 물고기 비늘 같은 나무 조각으로 이뤄져서다. 이는 칠로에 특유의 건축 양식인 ‘테후엘라’다. 마을 대부분이 테후엘라로 지은 목조 건물이었다. 칠로에는 나무가 풍부해서 150개의 목조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유네스코에서 14개의 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여행자는 이를 따라 여행 루트를 정하기도 한다(나도 앙쿠드에 이어 칠로에 남쪽의 카스트로, 달카우에, 아차오 등의 성당을 보러 다녔다).
 

물고기 비늘 같은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칠레의 가정집.

물고기 비늘 같은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칠레의 가정집.

물고기 비늘 같은 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진 칠레의 가정집.

쿠란토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실내는 인테리어 잡지를 구독하는 할머니의 센스가 묻어났다. 할머니가 이 집안의 왕임을 증명하는 할머니 위주의 사진들, 정교하게 그려진 꽃무늬 티포트 세트, 레이스 커튼이 아름다웠다. 호스텔에선 느낄 수 없는 가정집 특유의 달큼한 부엌 냄새가 옷에 뱄다. 짐을 풀고 할아버지의 단골집인 해산물 식당에 갔다. 식당에선 다들 1인 1쿠란토를 하고 있었다. 칠로에에선 ‘쿠란토’를 꼭 먹어봐야 한다. 돌을 뜨겁게 데워 닭, 소시지, 물고기, 조개 등을 익힌, ‘육해공 찜’이다. 그렇게 매일 앙쿠드의 항구를 하릴없이 산책하고, 저녁이면 낡은 식당에 들어가 쿠란토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어부들의 피곤을 달래줄 ‘섹시 바’ 간판에 불이 켜졌다. 간판 속 벗은 여자는 야하지 않고 정겹다. 중앙 광장에는 아직 이 조용한 마을이 지루할 10대들이 노래를 틀고 비보잉을 했다. 남미 여행자들의 카카오톡 단톡방에 들어가니 누군가 이런 글을 올렸다. “앙쿠드를 떠나려야 떠날 수가 없네요.” 만약 칠레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항구 도시를 루트에 넣길 바란다. 내가 사랑한 발파라이소, 앙쿠드 말고 어디든 좋다. 이 두 지역의 스타일이 다르듯, 어디든 그만의 ‘미항’으로 다가올 테니까.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만큼 북부의 사막부터 남부의 파타고니아까지 백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중 꼭 한 군데에 들러야 한다면 항구 도시로 가라. 젊음과 예술이 넘쳐나는 발파라이소, 할 일이라곤 맥주 마시는 것뿐인 앙쿠드는 나의 ‘인생 항구 도시'로 남았다.

Credit Info

2016년 06월 01호

2016년 06월 01호(총권 78호)

이달의 목차
WORDS
김나랑
EDITOR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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