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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의 즐거운 인생

On June 09, 2016

“인생이란 장담할 수 없는 것.” 심영순은 그렇게 말했다. 칠순이 넘어 뜻하지 않은 명성을 얻은, 솜털 구름처럼 고운 백발을 한 여인이.

“이름을 고쳐야 해. 심영순이 아니라 ‘한식대첩’이라고.
유치원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 ‘한식대첩!’이라 하더라고.” 1940년생, 한국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최고령 커리어 우먼인 심영순은 그런 얘길 하며 웃었다. 그녀는 걸음마를 떼고부터 큰살림을 하는 어머니의 조수로 식자재를 만졌다. 결혼 후 손님들에게 대접하던 요리가 소문나면서 강습과 연구를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는 재벌가 며느리들의 요리 선생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녀가 유치원생까지 알아보는 인물이 된 건 2013년 전국 요리 고수들의 대결 프로그램인 <한식대첩> 심사위원을 맡으면서다. 맛이란 주관적인 것인데 십수 년씩 제 분야에서 기량을 닦아온 고수들을 어떻게 심사하느냐란 사전의 우려와 달리, 백발의 심영순이 향토 음식과 궁중 요리부터 식자재·칼질·물불을 다루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연륜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의 요리를 평할 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한식대첩>은 ‘먹방’ 예능 사이에서 깊이와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유일한 정통 요리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심영순은 요즘도 요리를 가르친다. 올리브TV의 <옥수동 수제자>는 ‘옥수동 선생님’이라는 그녀의 실제 캐릭터를 카메라 앞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귀여운 언니, 엄격한 스승 그리고 ‘여자’의 모습을 오간다. 보노라면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희미해지는 뜻밖의 효과가 있다. 요리하기 싫은 적은 없었는지 묻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떻게 그게 재미없을 수가 있어? 나는 평생을 그랬고 지금도 요리와 연애하는 기분이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의 얘기는 다른 데로 흐르다가도 요리로 귀결되곤 했다.

평소 요리 시연을 안 한다던데 <옥수동 수제자>에서는 보여주시잖아요. 어떻게 수락하신 건가요?
내가 40년 이상 요리를 가르치면서 한 번도 시연을 해본 적이 없어. “자, 시작합니다. 노트를 반으로 접으세요. 한쪽에는 재료, 다른 한쪽에는 조리법을 쓰세요.” 그러고 불러주면 끝나. 그렇게 해서 시키고 잘하면 잘한다, 잘 못하면 못한다 얘기하면 끝이지.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너무 웃기게도 나보고 하라는 거야. 중노동을 시키는 거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사전에 합의된 게 아니었나요?
우리 딸과는 했겠지. 그런데 나는 몰랐어. 촬영장에 가서야 알았지. 어이가 없더라고. 젊을 때는 시연을 했어. 교육 방송 <최고의 요리 비결>을 3년 동안 했거든. 그런데 이제 시연을 하기가 싫은 거야. 돈을 암만 많이 준대도 힘들어서 싫어. 나이 먹은 사람이 레시피 중에서 하나 빠질 수도 있고 그렇잖아. 그런데 레시피는 이미 넘어갔다는 거야. 그게 얼마짜리 레시피인데 다 공개를 해? 된장찌개 하나로 식당 하는 사람들한테 나는 돈을 받고 된장찌개를 가르치거든. 그걸 공짜로 공개하라는 거 아냐. 나가서 알려지고 싶은 요리 선생들이야 상관없지만, 나는 이미 다 연구하고 다듬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놓은 건데 어떻게 공짜로 시연을 하래? 그래서 ‘내가 지금 올리브한테 당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으로 몇 번을 나갔어. 우리 딸은 엄마가 방송 활동을 길게는 못할 거다 싶어 올리브TV에 기여하고 그만두더라도 그만뒀으면 하는 심정이었나 봐.

귀한 레시피라 생각하니 오히려 방송을 더 열심히 봐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육 방송 할 때도 PD가 굉장했어. 다른 요리 선생 보니까 아침부터 와서 하다가 재료를 또 사와서 이튿날 새벽까지 찍었대. 그런데 나는 “그냥 가” 하면 끝이야. 절대로 새로 하고 이런 거 없었어. 그런데 이 <옥수동 수제자>는 내 아이디어를 다 빼내는 거야. 작가가 못됐더라고(웃음). 가짓수 하나라도 더 늘리려 하고. 우리 딸이 지금 작가와 나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몰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애정을 갖고 하는 게 보이던데요.
(박)수진이가 너무 기특하더라고. 사람이 사람을 잘 만나야 돼. 음식이라는 게 힘든 거거든. 수진이가 가난한 사람도 아니잖아. 먹고살 만하잖아. 그런데 그 꽃게 잡는 거 봐. 있는 힘을 다해서 잡아. 뭐라도 하려 노력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도와주고 싶고 다독거려주고 싶지. 예뻐 죽겠더라고. ‘너는 진짜 내 수제자다’ 싶고, 뭘 줘도 안 아깝다 싶게 이 친구가 열심히 해. 올리브가 어디서 사람 하나는 잘 건진다니까. PD들이 보통 똑똑한 게 아니야. <옥수동 수제자> 담당 PD도 너무 예뻐. 내 아들 같아. 너무 열심히 해보려고 애를 쓰니까 도와주고 싶어. 나는 사람을 왜 이렇게 좋아하나 몰라. 그게 문제야.

사람을 좋아해야 좋은 요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원래 요리하는 사람 중에 악한 사람이 없어. 착해, 전부.

3회에서 박수진 씨가 임신한 사실을 듣고는 “예쁜 짓은 혼자 다 하고 있네” 그러면서 안아주셨잖아요. 여자들이 그걸 보고 감동받았대요. 자기들이 시어머니한테 듣고 싶은 얘기라면서.
당연히 안아줘야지. 빌딩 세 개를 얻는 것보다 애들이 더 중요해. 아기가 잉태된 거는 그 집안에 굉장한 축복이라고. 그러니까 그 정도 해선 안 되지. 힘만 있으면 업어줬을 거야. 얼마나 경사야. 남편이 나이도 열 살 넘게 많다고 하던데, 그 집안에선 경사지.

방송에서 베개 자국 찍힌 얼굴 공개되고, 훌라후프 하는 모습 보여주고 그러는 건 괜찮으세요?
그날은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너무 깊이 잠들어버렸어(웃음). 나는 일단 하기로 한 거니까 어떻게 찍을지는 그 사람들한테 맡겨야지.

<한식대첩>도 계속하시는 거죠? 백종원 씨 요리를 혹평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사이는 괜찮으세요?
나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처음으로 백종원 씨 음식을 조사해 봤어. 그리고 방송도 봤어. 그이가 돈을 많이 번 이유가 있더라고. 짠 데다 조미료를 넣으면 너무 맛있는 거야. 매운 데 설탕을 넣으면 기절해. 그런 젊은이들의 미각을 캐치한 거지. 그러니 성공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런 음식이 입은 즐겁지만 몸에는 나쁘거든. 한 끼 정도 먹는 건 몰라도 계속 먹는 건 우리 전통 음식이 돼야 한다, 이 말을 한 거지. 난 그분이 뭘 잘못했단 소리는 아니었어. 그런데 소문이 백종원 씨하고 안 좋다고 났더라고. 그렇지 않아, 사람이 괜찮아. 그러니까 복 받아서 돈도 잘 벌고 색시도 잘 만난 거지.

자기 관리가 철저하신 걸로 아는데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

예전에는 꼭 새벽 4시 반에 일어났어. 30분 동안 단장하고, 5시까지 새벽 기도 갔다가, 6시에 끝나면 개인 기도도 좀 하고. 그러고는 배드민턴장으로 가서 한 시간 치고, 아니면 공원에 가서 서너 바퀴 돌기도 하지. 둘 중에 한 가지 운동을 해. 그러고 집에 와서 찌개와 국 끓이고, 반찬해서 밥상 차려 먹고, 설거지하고, 집 대강 치우고 출근해.

요즘도 가족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직접 하시는 건가요?
응, 내가 다 해. 애들 어리고 학교 다닐 때는 바쁘니까 사람을 써야 했지만, 요즘은 남편과 둘이 사니까.

<옥수동 수제자>를 보니 금실이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애들 다 시집보내고 나서 둘이 사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 땐 아파트를 얻어서 같이 모셨는데, 그 집에 좋은 가구를 다 보냈어. 그래서 나는 지금 헌 가구를 쓰고 있거든. 그래도 너무 행복해. 완전히 신혼 생활 저리 가라야. 남편이 아침마다 밖에 나가서 한 시간 정도 꽃나무 가꾸지, 식생활도 좋아졌지. 내가 1년에 두세 번은 해독 프로그램을 해. 3~4일 동안 염분 있는 음식이나 고기 종류 안 먹고, 채소와 과일만 가지고 해독 프로그램을 한다고. 그러면 속이 완전히 깨끗해져. 그걸 하고 나면 염도가 조금만 강해도 못 먹고, 당도가 강해도 못 먹어. 밥도 많이 못 먹고….

평소에도 좋은 것만 드시는데 해독이 따로 필요하세요?
응. 나이가 먹을수록 짜고, 달고, 지방 많은 걸 찾게 되거든. 그러니까 몸이 깨끗하지가 않은 거야. 해독 프로그램을 하고 나면 회복이 되는 느낌이야. 그러고 나면 식생활이 좋아지지. 나는 아침에 두부 반 모와 당근즙 한 컵을 먹어. 그러고 밥과 죽을 먹으면서 점심 때 먹을 걸 생각해. ‘젓갈 안 넣고 담근 열무김치가 참 맛있겠다. 거기다 고추장 넣고 참기름 넣고 비벼서 먹어야지.’ 그럼 점심 때 냉면 그릇에다가 잡곡밥 비벼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주고 나도 먹지. 그리고 저녁은 남편하고 같이 맛있게 해서 먹고. 남편이 여든다섯 살인데, 걸음걸이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할아버지 같지가 않아. 내일모레면 90이 다 되는데도 뭘 잡수면 맛있다고 하면서 드셔. 그러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서 남편이 좋아하는 걸 해주지. 그러면 뒤에서 그래. “여보, 뭐 하고 있구나! 도와줄까?” 심부름도 너무 잘해. 내가 여태까지 남편한테 그런 사랑을 받으며 살아본 적이 없거든. 옛날엔 잘난 척하면서 살다가 요즘에는 완전히 나만 바라보고, 내가 엄마야 완전히(웃음). 친구고, 동반자고,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 귀한 사람인 거야. 눈을 보면 아주 그냥 불타올라(웃음).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은 옛날 같은 마음으로 날 대하는 거야. 그러니까 자연히 나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지. 사랑을 하면 뭘 해도 힘들지 않잖아.

매일 맛있는 걸 해주니 부군께서 행복하시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래. “요리 선생의 남편은 라면만 먹고 산대.” 하루 종일 지긋지긋하게 요리했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서는 요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요리야. 왜 재미있냐면 식품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야. 어릴 때 내가 교회를 다녔는데, 어머니는 예수를 안 믿으니까 나 교회 못 가게 하려고 주일이면 스케줄을 잡았어. 동네 아줌마들하고 남한산성 가서 고사리 끊게 하고, 산나물과 버섯 따오게 하고.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이건 뭐에 좋고, 저건 뭐에 좋다”고 하셨지. 그런 걸 통해 나물의 진가를 알게 된 거야.

한식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신데, 요리 연구를 할 때는 양식 학원도 다니신 걸로 압니다. 전에는 양식도 즐기셨나요?
1950~60년대 서울 사람치고 미팔군에서 나오는 베이비 푸드부터 시리얼, 햄버거, 햄, 이런 거 안 먹고 산 사람이 없어. 그런 데는 향료가 엄청 첨가돼 있지. 안 그럼 냄새가 나니까. 향료에 익숙해지면 마늘과 소금, 후추만 뿌린 음식이 맛없어.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먹고 자란 사람들은 평생 그 맛을 찾게 돼. 한식은 짜고 맵고 복잡하다 생각하고, 매일 먹으면 질려 하고, 어쩌다 스테이크 먹으면 기분 좋아하고. 그런 점이 안타까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지름길은 우리 음식을 계속 먹어주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은 장기가 굉장히 길어, 서양 사람은 장기가 짧고. 체질이 완전히 다르거든. 우리는 한식을 먹어야 오래 살 수 있는 민족인데, 너무 양식만 좋아해서 큰일이야. 아무 데나 토마토케첩 찍어 먹고. 그리고 된장찌개 하나만 잘해도 전 세계 어딜 가든 부자가 될 수 있거든. 하와이에 갔더니 중국 사람이 한국 음식점을 하더라고. 위생도 형편없고, 한식이라면서 천엽을 막 썰어가지고 소금에다 찍어 먹으라는 거야. 우린 내장을 한여름에 그렇게 안 먹어. 하와이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안 될 말이지. 깜짝 놀랐어. 그래서 택시 기사한테 물어서 다른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잘하진 못하지만 먹을 만하더라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전 세계에 나가 식당을 하면 성공하겠구나 싶었지.

왜 직접 식당을 차리진 않으세요?
나는 원래 장사를 싫어해. 그날 하루 교통사고 안 나고, 병 안 나고, 삼시 세끼 먹을 거 있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지, 돈 욕심은 없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장사를 안 했어. 내 제자들 중에는 많지. 재벌들은 남편이 잘 벌어서 안 했지만, 중소기업 하는 집안은 식당 여러 개 차려서 성공한 경우가 많아. 그러니 같이하자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았겠어. 그래도 안 했어. “나는 연구를 할 테니 장사는 네가 해라” 그랬지. 공짜로 연구해서 다 주고. 그래서 “떡 한 말 해와라” 하면 금세 해와. “옷 해와라” 하면 옷도 해오고. 그 사람들한테는 내가 부모야. 그렇게 잘해.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살았어. 식당에서 일하게 되면 연구를 할 수 없잖아.

개발한 레시피만 2만여 가지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연구는 어떻게 하시나요?
새벽 기도를 하잖아. 그럼 기도하다 말고 내 머릿속에서 고기가 왔다 갔다 하고, 생선이 왔다 갔다 하고, 게가 왔다 갔다 해. 그러면 이 게를 어떻게 해야 가장 맛있게, 근사하게 먹을 수 있나 계속 연구하는 거야. 어떻게 만들면 전 세계인이 보기에 ‘진짜 고급스럽다’ 하는 음식이 될까. 그러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써. 새벽 기도를 하다 말고. 그러고는 그 아이디어를 집에 와서 연습해 보지.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거지. 이름은 똑같아. 예를 들면 된장찌개야. 한국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물에다가 이것저것 썰어 넣고 끓이면 끝이거든.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호박, 두부, 된장 맛이 마구잡이 섞여서 국물 맛이 싹 사라져버려. 식품마다 자기 맛이 있는데, 그게 합쳐지니까 맛이 변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하느냐. 재료마다 염도가 다르고 단단하기가 다르고 향의 세기가 다르니까, 각각 간을 하고 단단한 것부터 순서대로 끓이다가 마지막에 달래를 넣어서 살짝 향기만 나게 하면 돼. 그럼 달래된장찌개가 되는 거지.

직접 맛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네요. 제자들 식당 중에서 ‘심영순의 요리’가 궁금한 사람들이 가보면 좋을 곳을 추천한다면 어디가 있을까요?
차병원 뒤에 ‘하늘 아래 뜰’이라는 식당이 있어. 내가 교육 방송에서 <최고의 요리 비결> 할 때부터 따라다닌 사람인데, 다른 제자들은 다 조리사를 두고 하지만 그이는 직접 해. 그 집의 백김치가 맛있어. 내 음식 맛의 한 60%는 내는데, 왜 100%를 못 내는가 하면 단가가 안 맞아서야. 그래도 남편 친구들은 딴 데 절대 안 가고 그 집만 가.

<옥수동 수제자>에서 선보인 심미장, 심미즙이 화제예요. 한식의 깊은 맛을 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정보니까요.
내 양념이 7~8가지가 되는데, 심미장·심미즙·심미기름 이 세 가지가 기본이야. 참, 굴소스도 있어. 시중에 나온 걸 먹어봤다가 토했거든. 도대체 뭘 넣었기에 이렇게 속이 니글거리고 메슥거리나 깜짝 놀랐지. 그래서 굴을 사다가 직접 만들었어. 고추기름도 보통은 가장 싼 고춧가루를 쓰는데, 태양초 고춧가루를 써야 해. 그걸 기름에 넣어서 불린 다음에 갈아서 밭쳐. 고춧가루가 먹는 기름이 있기 때문에 몇 배를 받아야 해. 그러니까 식당에서 쓰기에는 단가가 안 맞지. 그래도 그렇게 해야 양념 자체가 보약이 돼. 심미즙 만드는 법을 가르친 이유는 매번 마늘 썰고 양파 썰고 이것부터 시작하니까 음식이 복잡해서 안 해 먹잖아. 외국 음식은 파우더로 다 돼 있는데 말이지. 그래서 우리 음식을 해먹기 편하게 꼭 필요한 양념을 즙으로 만든 거야. 파우더와 즙이 다른 게 뭐냐면, 파우더는 건조된 거라 음식에 들어가면 다른 식품에 흡수되지를 않아. 겉에만 묻어서 향이 좀 날 뿐이지, 몸에는 안 좋다는 얘기야. 내가 요리 연구한 지 40년 만에야 후추도 안 좋다, 고춧가루도 그냥 먹으면 안 좋다, 위벽에 붙는다, 뭐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고.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당연한 거 아니야? 고춧가루는 항상 물에 불려서 써야 해. 매운탕이건 김치건. 이렇게 과학적으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우리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거지.

좋은 음식을 드셔서 이렇게 건강하신 걸까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병원 한 번 안 가고 98세까지 사셨어.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시기 10분 전까지 화투 패를 떼셨지(웃음). 어제는 부산에서 개인 지도 받으러 어떤 이가 왔거든. 나한테 열 번 개인 레슨 받아서 30~40가지 음식을 배우고 조그맣게 가게를 여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그이가 젊은 사람인데, 할머니가 며칠 전에 돌아가셔서 하루 빠졌어. 백 몇 세까지 사셨대, 건강하게. 음식 좋아하는 집은 그렇게 다 장수한다는 거지. 아직까지 나도 병원에 안 갔거든. 언제 갈지 모르니까 큰소리는 못 쳐. 하지만 칠십 넘도록 무병하고 일하고 있다는 게 증거야. 내 나이가 경로당에서 화투 칠 나이지 일하러 다닐 나이야?

 

피부도 고우세요.
요즘 방송에 나가니까 한 달에 한두 번씩 등 마사지를 받아. 그럼 얼굴에 팩도 발라줘. 그거야, 별거 없어. 화장품도 4천원짜리 알로에 써. 그거 사면서 6천원짜리 립스틱도 샀어. 알로에 만드는 공장에서 만드니까 좋은 거 같아. 그런데 너무 싸서 혹시 잘못될까 봐 좀 고급으로 사려고 백화점 2층에 가봤어. 우리 딸이 거기서 반찬 가게를 하거든. 간 김에 2층 화장품 코너에 가서 립스틱 하나를 물어봤더니 7만원을 달래. 그런데 워낙 사람들이 알아봐 가지고 물어놓고 안 살 수가 없는 거야. 그거 사고 얼마나 억울한지(웃음). 무슨 립스틱이 그렇게 비싸. 나는 거의 화장 안 해. 그런데 화장해 주는 이가 나는 아직 입술이 안 죽었다 하더라고. 별거 없어. 그냥 잘 먹으면 돼. 살찌기 싫으면 반찬부터 먹어. 밥은 나중에 먹는데 딱 절반만. 밥은 다 먹었는데 반찬이 맛있으면 밥을 더 먹게 되거든. 그러면 자꾸 뚱뚱해질 수밖에 없지. 두부 반 모 삶아서 먹으면 밥 한 공기 먹을 거 반 공기밖에 안 먹게 돼. 나는 그렇게 사니까 속이 너무 편해.

젊었을 때도 미인이었을 것 같아요. 연애결혼을 하셨나요?
나는 한 번도 내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눈도 단춧구멍 같고. 그런데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녔어. (남편과는) 누가 소개해 줘서 연애를 했지. 처음에는 나도 맘에 안 들고 우리 어머니도 맘에 안 들어 했어. 그런데 남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한 거야. 그러니 어떡하겠어. 남편도 너무 따라다녀서 결국 내가 진 거야.

어머니는 왜 반대를 하셨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내가 죽었으면 했어. 아들을 낳고 싶었는데 또 딸이니까. 홍수가 나서 내가 둥둥 떠내려가도 언니한테 이불이나 하나 더 건지라고 했지, 나는 신경도 안 썼대. 그런데 언니가 나를 살린 거지. 그렇게 구박을 하면서도 나 어릴 때부터 김치도 꼭 내가 있어야 담그고, 된장도 내가 있어야 담그고 그랬어. 내가 똑똑했던 모양이야. 시집을 잘 보내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내가 가난한 남자한테 시집간다고 하니까 머리 싸매고 밥도 안 잡숫고 돌아누워 있었어. 우리 남편이 등에다 대고 절을 몇 번이나 했어. 언니들도 남편하고 나하고 대문으로 들어오면 반가워하지 않았고. 작은형부가 들어오면 맨발로 뛰어나가면서. 남편이 공무원이라 월급이 5만~6만원밖에 안 됐거든. 잘 살 수가 없는 조건이지. 내가 이렇게 밖에 나가서 돈을 벌 것이라곤 생각을 못 하고. 그래도 결혼 후에는 어머니가 남편을 아주 떠받들어 주셨어. 어머니가 애국자셨거든. 어느 정도냐 하면, 김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가서 며칠을 소복 입고 울었을 정도야. 그런 분이라 사위가 공직자라는 거, 나랏일 한다는 거에 자긍심이 있었지. 남편도 우리 어머니를 무척 존경했고.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꺼내서 깨끗이 닦으라고 하더니 우리 어머니 얼굴에 키스를 하더라고. 나는 친엄마인데도 이 사람 저 사람 들어간 냉동실에서 꺼내 닦으니까 기분이 별로였거든. 그런데 자기만 하지 왜 다른 사람도 하래? 나도 어쩔 수 없이 했지. 목사님이 자기는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장례식은 처음 봤대. 그 정도로 우리 어머니를 존경했어, 남편이. 돌아가신 지 10년 넘었는데도 시누이, 시동생들하고 우리 애들이 산소에 벌초를 해. 그걸 보고 내가 알았지. 살아 있을 때 남한테
잘 베푼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잊히지 않는구나.

아이러니네요. 그렇게 구박한 딸이 결국 가장 늦게까지 부양을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인생이 어떤 거냐면, 자기 생각하고 다른 거야. 장담할 수 없는 거지. 나를 불행하게 할 것 같던 남자가 나한테 잘하고, 버리려던 딸이 아들 못지않게 형제들 보살피고, 얘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옛말에 악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다잖아. 사람이 진실하게 사니까 계속 좋은 일들이 생기는 거야. 나는 여한이 없어 정말,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고 살아서.

<옥수동 수제자>의 특별한 순간들

  • 1화 - “야한 옷을 입지. 섹시하게”
    집에서도 한복만 입을 것 같은 심영순은 사실 “여름에는 옆에도 터진 거, 겨울에는 딱 맞는 거, 가슴은 보일락 말락 섹시하게” 입는다. 노년의 부부 관계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충격 발언의 현장.

  • 2화 - “꽃게는 씻고 하는 거야?”
    제철을 맞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꽃게와 사투를 벌이는 박수진. 괴성을 지르며 배 가르기에 성공했지만 “꽃게는 씻고 하는 거야?”라는 심영순의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3화 - “울화가 치미는 애들에게…(좋겠다)”
옥수당 제3의 멤버인 유재환이 심영순에게 EDM을 전파하려 춤까지 선보였다. 지켜보던 심영순은 “울화가 치미는 애들에게…(좋겠다)”라고 평해 유재환을 좌절시켰다.

“인생이란 장담할 수 없는 것.” 심영순은 그렇게 말했다. 칠순이 넘어 뜻하지 않은 명성을 얻은, 솜털 구름처럼 고운 백발을 한 여인이.

Credit Info

2016년 06월 01호

2016년 06월 01호(총권 78호)

이달의 목차
EDITOR
백지영
WORDS
이숙명(프리랜서)
PHOTO
김보성
STYLE EDITOR
진정아
HAIR & MAKEUP
권순주
PROP STYLIST
한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