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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PRINCE

On May 19, 2016

혁신의 아이콘인 프린스를 떠나보내며, 네 명의 뮤지션이 애도의 글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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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퍼포먼스 투어 공연을 하는 프린스(1986. 8. 15).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퍼포먼스 투어 공연을 하는 프린스(1986. 8. 15).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퍼포먼스 투어 공연을 하는 프린스(1986. 8. 15).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BBC ‘ActⅡ투어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프린스(1993. 9. 7).

 

한 점의 흠도 잡을 수 없는  기타리스트

한 점의 흠도 잡을 수 없는 기타리스트

노민혁(애쉬그레이와 클릭비 기타리스트)

그는 많은 뮤지션에게 있어 ‘사기 캐릭터’로 통한다. 노래면 노래, 기타면 기타, 그것도 모자라 화려한 퍼포먼스에 쇼맨십까지. 심지어 잘생겼다(솔직히 이 부분은 좀 부럽다). 나름 기타 좀 친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그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으면 한 치의 흠도 잡을 수 없다. 플레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 그 속의 섹시함. 모든 게 동경의 대상이다. 단순히 ‘잘 친다’는 문장으로 그의 연주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의 음악은 연주나 가창력의 스킬만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라이브 공연을 볼 때면 넋이 나간 듯 멍해지곤 했다. 때로는 그의 연주가 거칠게 들릴 때도 있다. 이걸 두고 ‘깔끔한 연주가 아니다’라며 폄하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게 바로 프린스만의 연주법이고 매력인데 말이다.
 

반전이 있는 아티스트

반전이 있는 아티스트

김태연(‘아톰리턴즈’ 보컬 에스테반, <블링> 피처 에디터)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 주옥같다고 생각했을 때 프린스의 음악인 걸 알고 무릎을 친 적이 많았다. 비보를 접하고 그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들었다.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시애틀 그런지가 판을 치던 시절, <지구촌 영상음악>을 통해 접한 시니드 오코너의 ‘Nothing Compares 2 U’ 라이브 무대는 가히 비주얼과 동시에 오디오 쇼크였다. 삭발을 한 앳된 얼굴의 여성이 맨발에 가죽 재킷 차림으로 무대에 나와 관중을 압도했다. 그런데 그 곡의 원작자가 프린스였다니.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곡 중 가장 ‘섹시’한 넘버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를 들었을 때는 남자가 불렀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마성의 ‘가성’을 가진 프린스가 당연히 ‘게이’라고 확신했건만, 그 또한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반전을 느끼게 해준 아티스트임에 틀림없다.
 

느린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

느린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

조웅재(인디밴드 ‘본숩’ 보컬, <대학내일> 온라인 디렉터)

아버지 서재 구석에는 항상 눈에 띄는 LP가 꽂혀 있었다. 1981년형 보라색 혼다 커스텀 바이크와 의상을 깔맞춤한 청년. 그 위에 영어로 ‘퍼플 레인’이라고 쓰인 앨범이다. 록 음악에 빠져 있던 스물셋의 여름, 나는 향뮤직에서 이 보라색 청년을 CD로 다시 만났다. 주다스 프리스트에 빠져 있었던 나는 강렬한 커버에 새삼 감명을 받았고, 재킷 사진만큼이나 빠르고 강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퍼플 레인’을 듣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슬로 템포의 발라드 넘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적잖은 배신감에 뒤통수가 아렸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중 하나로 꼽은 것에 비해 내용물은 시시했다. 지루한 프레이즈가 반복되었고, 날카로운 샤우팅은 타타타 김국환의 웃음소리보다 매가리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CD 수납장 구석에 박아두었다. 그러고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근 10년 만에 다시 그 CD를 꺼내들었다. 날카롭게 찌르는 ‘Purple Rain’의 클라우드 기타가 심장을 울렸다(난 더 이상 메탈헤드가 아니다). ‘깁슨닷컴’이 그를 리치 블랙모어와 데이비드 길모어보다 높이 산 이유가 조금 이해됐다. 20년이 흐른 지금에야 깨달았다면 너무 늦은 걸까. 어쩌면 이제야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걸지도.
 

우리를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우리를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박세회(뮤지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안식교 신자로 자란 프린스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개종한 사실은 꽤 재밌는 에피소드를 통해 밝혀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하루는 프린스가 정통파 유대교를 믿는 한 부부의 집에 나타나 <파수대>(여호와의 증인에서 발간하는 종교지)를 내밀었는데, 이 이야기가 ‘프린스가 한 부부의 집에 나타나 <파수대>를 건네다’란 타이틀로 고스란히 지역 신문에 실렸다는 것. 대체 왜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될 만한 슈퍼스타가 남의 집에 가서 종교지를 권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죽은 뒤 <워싱턴 포스트>는 말년의 프린스가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이었다고 밝혔다.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뻔뻔하게 중성적 섹슈얼리티를 뽐내며 여성스러운 화장을 즐기던 그가 사후에 ‘반동성애자’ 논란에 휩싸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름 대신 상형문자(‘더 러브 심벌’)를 쓰겠다며 전 세계 언론에 플로피디스크로 그림 파일을 보낸 일은 아직도 전설로 남았지만,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체 그 이유가 뭐였는지를 파헤친 기사만 수백 개가 넘는다. 어쩌면 프린스는 음악뿐 아니라 우리를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데도 천재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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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캘리포니아에서 콘서트 중인 프린스(1985. 2. 19).

LA 캘리포니아에서 콘서트 중인 프린스(1985. 2. 19).

프린스를 추모하는 이들의 흔적.

프린스를 추모하는 이들의 흔적.

프린스를 추모하는 이들의 흔적.

스타들의 프린스 애도 SNS

“그는 떠났지만, 음악은 남았다. 감사합니다.” _태양

“프린스는 혁명적인 예술가이자 뛰어난 음악인이었으며, 멋진 작곡·작사가였고, 놀라운 기타 연주자였다. 그의 재능에는 한계가 없었다.” _롤링스톤스 리더 믹 재거

“그는 천재, 전설, 영감의 원천 그리고 친구였다. 세계는 그를 그리워할 것이며 나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_머라이어 캐리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 강하고, 대담했고, 창의적이었다.” _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프린스까지. 내가 사랑했던 가수들이 모두 너무 일찍 떠났다.” _박진영

“프린스는 파격적인 장르 파괴의 선두 주자였다. 블루스, 재즈, 록, 댄스, 소울 모든 장르를 ‘프린스’화시키며 음악은 음악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_윤도현

혁신의 아이콘인 프린스를 떠나보내며, 네 명의 뮤지션이 애도의 글을 보내왔다.

Credit Info

2016년 05월 02호

2016년 05월 02호(총권 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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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한빛누리
PHOTO
Getty Images, Splashnews/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