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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페루에 가다

On May 16, 2016

서른다섯의 피처 에디터, 사표를 내고 중남미 여행 6개월에 나섰다. 페루 도착 첫날부터 화장실 때문에 ‘멘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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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 사막에서.

이카 사막에서.

중남미 여행 50일째. 지금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이 글을 쓴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안정적인’ 수온으로 샤워를 했다. 그동안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거나, 심히 뜨거운 물만 나와 몸을 움직이면서 씻는 ‘무빙 샤워’를 해야 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만난 배낭 여행자들의 대화 주제는 주로 샤워와 화장실이었다. 1박에 1만원대 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다 보니 하루 한 번은 남의 봐놓은 결과물을 보기 때문(화장실 수압이 엄청 낮다). 볼리비아 사막을 지나는 2박 3일간의 투어에서 들른 숙소는 불이 켜지는 것이 감사한 시골집이었다.

역시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아 볼일을 보고 어색해하는데, 캐나다 여행객이 “괜찮아, 여긴 볼리비아야”라면서 쿨하게 내가 썼던 자리로 들어갔다. 그 후로 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초반부터 화장실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남미 여행은 화장실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 많은 신경을 할애한다. 이렇게 괴로워할 거면 왜 남미 여행을 왔는지, 호텔이 아니라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지(물론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인생에서 한 번은 그런 ‘곤란한’ 상황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웬만한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거라 기대했다. 이제 ‘곤란한’ 화장실 정도는 쿨하게 넘기는 것처럼.
 

마추픽추로 향하는 ‘페루 레일’.

마추픽추로 향하는 ‘페루 레일’.

마추픽추로 향하는 ‘페루 레일’.

카메라 세례를 받는 귀여운 라마.

카메라 세례를 받는 귀여운 라마.

카메라 세례를 받는 귀여운 라마.

Machu Picchu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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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아래 작은 마을 이구아스 칼리엔페.

마추픽추 아래 작은 마을 이구아스 칼리엔페.

마추픽추 아래 작은 마을 이구아스 칼리엔페.

마추픽추에서 시작하다

내 6개월간의 중남미 여행 일정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마무리하는 것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칠레의 산티아고는 굉장히 깨끗하고, 잘 살고(이런 표현이 얼마나 우스운지 안다), 친절하며, 따뜻한 물이 잘 나온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첫 여행지인 페루가 그립다. 대부분의 행자들이 남미 여행의 계획을 세울 때, 페루를 빼놓지 않는다. 그 중심엔 마추픽추가 있다.

그곳이 전 세계의 여행자를 끌어 모으는 이유는 뭘까. 해발 2400m의 험한 봉우리에 세운 신기한 도시라서? 그곳에 살던 잉카인들이 홀연히 사라졌다는 미스터리 때문에? 처음엔 별 기대감이 없었다. 엽서에서 본 모습 그대로겠지 싶었다.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 이적, 윤상이 마추픽추를 보며 운 건 고산병으로 심신이 허약해져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막상 마추픽추에 도착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잉카인들의 도시는 무척 꼼꼼하고 정교했다. 많은 여행자가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올라와서는 오후 늦게까지 내려갈 줄 몰랐다. 마추픽추에 가는 방법은 ‘페루 레일’ 혹은 ‘잉카 레일’ 등의 기차를 타는 게 일반적이다. 그 외에 잉카인들의 길을 따라 마추픽추까지 3박 4일간 걷는 ‘잉카 트레일’(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을 이용하기도 하고, 젊은 청춘들은 자전거와 카약 및 트레킹을 하며 2박 3일간 가는 ‘정글 트레킹’도 많이 한다(대관령의 3배 되는 내리막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담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6시간 버스를 타고 간 뒤, 페루 레일이 지나가는 기찻길을 따라 4시간 걸어 마추픽추의 전초 기지라 할 수 있는 오얀타이탐보 마을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고,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일정을 택했다. 말이 버스 6시간이지 비포장도로에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리는데, 운전기사가 졸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음악을 바꿔 틀어야 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마추픽추를 다녀온 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페루 레일을 타고 편히 다녀올걸’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기찻길을 걸으며 본 산들과 잡아먹을 듯이 거센 물살의 강과 기차가 언제 올지 모르는 쫄깃한 긴장감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위의 방법들 중 성향에 맞는 걸 택하면 된다.
 

Cusco 쿠스코

사람 냄새 나는 도시 쿠스코 중앙 광장은 어린 청춘과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사람 냄새 나는 도시 쿠스코 중앙 광장은 어린 청춘과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사람 냄새 나는 도시 쿠스코 중앙 광장은 어린 청춘과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이곳에 가면,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 튀김인 치차론 데판로를 꼭 맛볼 것.

이곳에 가면,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 튀김인 치차론 데판로를 꼭 맛볼 것.

이곳에 가면,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 튀김인 치차론 데판로를 꼭 맛볼 것.

잉카인이 사랑한 도시 쿠스코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머무는 쿠스코는 잉카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다. 쿠스코란 이름은 당시 언어였던 케추아어로 ‘배꼽’이란 뜻. 고즈넉한 골목 곳곳에는 여행자들이 내는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가득하다. 온몸에 문신을 한 미인,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남자, 배낭을 메고 힘겹게 걷는 노부부 등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들기 때문. 저녁이 되면 하교한 학생들이 진한 키스를 하며 청춘을 흘려보내곤 한다.

“그래, 저 나이 땐 밤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설레지” 하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한량 같은 하루’도 큰 즐거움이다. 쿠스코의 밤은 이런 치기 어린 청춘들과 여행객들로 뜨겁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클럽이 영업하는데, 내가 뜨겁게 춤을 춘 클럽에선 모든 음악이 ‘기승전살사’로 끝났다. 팝과 힙합에 몸을 흔들다가도 살사 음악이 나오면 다들 보란 듯이 살사를 췄다. 나스카 지역에서 만난 가이드가 하도 잘 추기에 “언제부터 살사를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배워? 살사는 그냥 추는 건데”라고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중남미 여행 중엔 해 떨어지면 외출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심야 축구를 보거나 클럽에 가는 등 나이트 라이프도 꽤 즐겼다. 물론 중요한 소지품은 항상 숙소에 두고, 현지인이 안전하다고 애기한 곳만 다녀서 큰 사고가 없었을 테지만.
 

Huaraz 우아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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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에 몸을 맡기다

많은 여행자가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입국한 뒤, 버스로 3시간 걸리는 사막 도시 ‘이카’에서 버기카를 타고 사막을 누빈 후, 나스카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나스카 라인’을 본 다음, 쿠스코와 마추픽추로 향한다. 이도 좋지만 두 개의 지역을 더 소개하고 싶다. 먼저 리마에서 북쪽으로 8시간 버스를 타고 가는 우아라스 지역. 해발 3100m의 고산 지대라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다.

우아라스 시내보다 1500m가 더 높은 안데스 산맥의 69호수를 보기 위한 투어. 동행은 중도에 포기했고, 나는 기를 쓰고 올라갔다.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아 머리가 핑 도는데, 안데스 산맥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기다시피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호수가 나왔다. 한 여행자는 속옷까지 다 벗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아 이루어진 호수라 살이 에일 만큼 차가웠는데도 말이다. “저 여자도 올라오면서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네” 했는데, 나도 결국 호수에 뛰어들었다. 너무 힘들게 올라오니 호수가 얄밉기도 해서 ‘어디 보자’는 심정이었다. 한 여행자는 “안나푸르나 ABC 트레킹보다 힘들다”고 했다.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고산 지대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올라오니 숨이 차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든 트레킹을 왜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올라간 자만이 볼 수 있다. 69호수 트레킹 외에, 3박 4일 산타크루즈 트레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어떤 것이든 우아라스에 도착했다면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고산 지대에 적응한 뒤 참여하길. 두 번째 추천 지역은 아레키파. 나는 나스카에서 버스로 8시간 이동해 아레키파에 들른 뒤, 다시 버스를 12시간 타고 쿠스코로 넘어갔다. 아레키파는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스페인 침략 당시 가장 부유했던 도시라 공들여 지은 하얀색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안전한 편이어서 여정 중 마음 편히 쉬기에도 안성맞춤. 매일 중앙 광장에서 ‘프리워킹 투어’가 있는데, 가이드가 모르는 골목들도 소개해 주니 참여해 보라. 프리지만 약간의 팁은 내야 한다.
 

Ica 이카

사막 도시 이카에서 약 4km 떨어진 와카치나 마을.

사막 도시 이카에서 약 4km 떨어진 와카치나 마을.

사막 도시 이카에서 약 4km 떨어진 와카치나 마을.

사막 속에서 휴식을 즐기기 좋다. 대부분의 숙소가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페루 전통 음식 엠파나다.

사막 속에서 휴식을 즐기기 좋다. 대부분의 숙소가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페루 전통 음식 엠파나다.

사막 속에서 휴식을 즐기기 좋다. 대부분의 숙소가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페루 전통 음식 엠파나다.

콘도르를 기다리며

콘도르는 페루에서 신성시되는 새다. 날개를 펴면 족히 3m로, 짝이 죽으면 우울증에 시달리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떨어져 죽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협곡인 콜카에 ‘콘도르 전망대’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모여 그 신비의 새가 나타나길 기다린다(물론 콘도르가 온다는 약속은 없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콘도르다!” 콘도르는 저 멀리 산꼭대기를 날고 있었지만 크기가 워낙 커서 날개 깃털의 모양까지 보였다. “우아하다! 저 새 한 마리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니!” 믿기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 하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게 기뻤다. 그간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지 않았던가.

페루 여행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만도 벅찼지만, 습격하듯 찾아오는 ‘나의 다른 모습’과 ‘잊고 지낸 것들’을 마주하는 자체로 가치 있었다. 마지막으로 리마 공항에 입국하면, 미라플로레스만 가지 말고 라푼타에 꼭 들러보길 권한다. 바다에서 휴식을 즐기는 리마인들의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을 볼 수 있다.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돌이켜보면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Arequipa 아레키파, Calca Canyon 콜카캐년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레키파의 중심가.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레키파의 중심가.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레키파의 중심가.

콜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협곡이다.

콜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협곡이다.

콜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협곡이다.

 

Lima 리마

리마의 라푼타 해변.

리마의 라푼타 해변.

리마의 라푼타 해변.

 

서른다섯의 피처 에디터, 사표를 내고 중남미 여행 6개월에 나섰다. 페루 도착 첫날부터 화장실 때문에 ‘멘붕’이었다.

Credit Info

2016년 05월 01호

2016년 05월 01호(총권 76호)

이달의 목차
EDITOR
손안나
WORDS
김나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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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