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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거처가 사라지고 있다

On April 12, 2016

종로의 씨네코드선재가 간판을 내렸다. 강원도 내의 유일한 독립 예술 영화관이었던 신영극장도 결국 휴관에 들어갔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말한다. 시장 논리에 따라 영화의 거처가 하나둘씩 파괴되고 있는 지금, 그걸 지켜보는 게 얼마나 아득한 심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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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이곳 지하 2층엔 예술 영화 전용관 ‘씨네코드선재’가 자리했었다.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이곳 지하 2층엔 예술 영화 전용관 ‘씨네코드선재’가 자리했었다.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

1995년 2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러 갔다. 종로엔 눈이 소복이 쌓였고, 최초의 예술 영화 전용관인 ‘코아아트홀’ 앞엔 사람들이 줄지어 선 채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해 <희생>은 자그마치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미증유의 기록을 세웠다. 한국 시네 필 역사의 정점이자, 예술 영화 시장의 첫 신호탄. 나 역시 그곳에서 타르코프스키와 키에슬로프스키, 왕가위의 반짝거리는 영화들을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지하 시네마테크에서 화질 뭉개진 해적 비디오판으로 영화에 대한 열망을 간신히 채우던 사람들에게, 지상의 예술 영화 전용관은 햇살 가득한 봄날의 오아시스와 다름없었다. 코아아트홀을 필두로, 여러 예술 영화 전용관이 박수갈채를 받으며 잇따라 꽃처럼 우후죽순 피어났다. 그러나 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돌연, 2004년에 코아아트홀이 문을 닫았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예술 영화관들도 줄줄이 폐관하기 시작했다.

종로 씨네코아, CQN 명동, 스폰지하우스 압구정, 중앙시네마, 하이퍼텍 나다 등이 경영난으로 폐관됐다.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예술 영화관들이 사라져갔다. 최근에는 씨네코드선재마저 계약 만료로 간판을 내려야 했다. 1998년 개관 이래 지금까지 독립 예술 영화들의 지주 역할을 했던 아트선재센터가 그 끝을 고한 것이다. 멀티플렉스의 독점, 그게 이 난데없는 연쇄 폐관의 결정적 이유다. 상업 영화뿐 아니라 흥행성 있는 아트 블록버스터까지 대형 배급사들이 독점적으로 배급하면서, 기존의 예술 영화관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어진 것이다.

철저한 ‘시장 논리’에 의해 반짝 등장했던 예술 영화관들은 10년도 못 돼 그렇게 아스라하게 쓰러져갔다. 2002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방의 낡고 열악한 극장들을 전용관으로 지정해 근근이 독립 영화들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2014년부터 ‘효율성’을 문제 삼으며 지원을 끊기 시작했다. 그 탓에 경남의 유일한 독립 예술 영화관인 거제아트시네마가 문을 닫았다. 뒤이어 대구의 동성아트홀이 폐관 직전까지 갔다가 지역 시민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재개관했다. 영진위는 여기에 ‘정치 논리’까지 들이대기 시작했다. 영진위가 지정한 위탁 업체가 선정한 2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에게만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 세월호를 다룬 다큐 영화 <다이빙 벨>의 개봉 논란 직후였다.

독립 영화계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정책이라며 반발했다. 그 와중에 강릉의 신영극장이 잠정적으로 휴관을 결정했고, 결국 지금 원고를 쓰는 이 시간에 마지막 영화를 상영했다. 바야흐로 영화의 거처들이 철거되는 시대. 독립 예술 영화는 영화의 꿈이 기거하는 요람이다. 영화 산업 구조에 피를 수혈하는 동맥이기도 하다. 단기 이윤을 위한 ‘시장 논리’로, 목전의 권력을 위한 ‘정치 논리’로 그 꿈의 거처들이 허겁지겁 파괴되는 시대란 얼마나 아득한가. 우리는 이렇게 꿈이 줄지어 도산되는 악몽의 겨울을 나고 있다.
 

 

1. 아노말리사 2. 사울의 아들

1. 아노말리사 2. 사울의 아들

1. 아노말리사 2. 사울의 아들

지금 예술 영화관에서 놓쳐서는 안 될 영화들

1. 아노말리사
‘<이터널 선샤인>의 스톱모션 버전 러브 스토리’라고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중. 한 남자의 꿈결 같은 여행을 그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만든 작품답게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2. 사울의 아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1944년 아우슈비츠 시체 소각장에서 시체 처리 일을 담당하던 남자 ‘사울’이 주검 속에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생지옥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종로의 씨네코드선재가 간판을 내렸다. 강원도 내의 유일한 독립 예술 영화관이었던 신영극장도 결국 휴관에 들어갔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말한다. 시장 논리에 따라 영화의 거처가 하나둘씩 파괴되고 있는 지금, 그걸 지켜보는 게 얼마나 아득한 심정인지.

Credit Info

2016년 04월 01호

2016년 04월 01호(총권 74호)

이달의 목차
EDITOR
손안나
WORDS
이송희일(영화감독)
PHOTO
그린나래미디어, 롯데엔터테인먼트, 아트하우스모모, 아트선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