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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도 뮤지션이 될 수 있는 세상

On March 10, 2016

'범죄자도 뮤지션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인정한 건 놀랍게도 그래미 시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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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불우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나는 뮤지션 출신이다. 이 ‘출신’이라는 말이 우스운데, 1집 앨범을 내고 완벽하게 망해 버리는 바람에 2집을 접었기 때문이다. 1집 앨범의 반응을 살핀 후 2집을 낼 작정이었으니까. 반지하도 아닌데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습기를 먹은 앰프 소리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처럼 눅눅했고, 비행기 소음 때문에 녹음을 멈추는 일도 잦았다. 이럴 때면 성에 못 이겨 차진 욕설을 뱉었다. 하필이면 왜 항공대학교 옆에 작업실을 얻었던 걸까. 결국 망했지만 나름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은 있었다. 국내 최고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우리를 ‘아티스트’라 불러주는 게 좋았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음반을 냈다는 이유로 “개나 소나 음악을 하느냐”라는 비난도 받았다. 당시 장기하와얼굴들이나 장미여관 같은 밴드들이 주목받는 중이었는데, 나는 은근히 이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같은 클럽에서 공연도 했다(물론 함께한 건 아니다). 하지만 격차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5년 뒤 <무한도전> 가요제로 차트를 장악하는 모습에 속이 꼬였다. 대중의 선택이 원망스러웠지만 모두가 배순탁이나 임진모는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뮤지션이 되었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쉽지 않았다. 평론가들이라도 인정해 주면 좋으련만,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I have no Everything Here)란 앨범 제목처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뮤지션이 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졌다.

정말 이런 제목으로 앨범을 낸 ‘좀바 프리즌 프로젝트’가 제58회 그래미 세계음악상의 유력 후보로 선정됐다. 제목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다. 멤버들이 살인범과 방화범, 절도범으로 구성된 죄수들이니까. 이들이 그래미상을 거머쥐게 되면 연쇄적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라며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이 이를 영화화하려 들 거다. ‘편견의 벽을 허문 감동의 서사시’, ‘윤리 예술의 기준을 흐리는 문제작’이라는 뻔뻔한 텍스트가 포스터에 대문짝만 하게 박힐 게 뻔하다. 이동진은 8점을 줄 거고, 박평식은 여전히 5점 정도를 주지 않을까. 댓글에서는 ‘범죄자 미화’ vs ‘인간 승리, 감동의 쓰나미’라는 의견이 2 대 8 정도로 대립할 테고. 나는 이 영화를 안 볼 작정이다. 그래미에게 인정받지 못한 전직 뮤지션이 보내는 일종의 시기다. 출신 따위는 알 바 아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도 같은 생각일 거다. 이들은 2009년에 갱스터 출신 래퍼 50cent에게 최우수랩퍼포먼스상을 안겨줬다. 폭행 사건에 연루된 문제아 크리스 브라운도 2012년에 최우수R&B앨범상을 받았다. 2016년 후보 명단을 봐도 알겠지만 생각보다 그래미는 뮤지션의 과거사에 관심이 없다. ‘범죄자의 개과천선 음악’이라 높이 평가한 건 아니다. 그들이 고작 사연 따위로 예술성을 평가하는 집단이라면 나는 당장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심사위원을 찾아가 명치를 가격할 거다. 그리고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 넣으며 이런 말을 하겠다. “이건 돈 없고 가난한 뮤지션이 비행기 소음을 이겨내며 만든 고난의 음악이다. 내게도 상을 줘.”

우리를 후보에 올리지 않은 안목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미가 ‘뮤지션’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행간 속 전제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모든 깜둥이는 스타다”(Every Nigga is a Star). 올해 유력한 수상 후보인 켄드릭 라마의 앨범 속 가사다. 자메이카의 흑인 가수 보리스 가드너의 노래를 샘플링한 이 가사야말로 ‘뮤지션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우문에 대한 우회적 현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2016 그래미가 주목한 후보

  •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2015)

    ‘마틴 루터 킹의 환생’, ‘2pac에 대적할 살아 있는 전설’ 등 켄드릭 라마가 낯간지러운 찬사를 받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앨범이다. 이번 제5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수작. 힙합을 모르는 필자도 본 앨범을 들으면 컴턴 교차로에서 팔자걸음을 걷는 기분을 느낀다.

  • Mark Ronson ‘Uptown Funk!’(2015)

    올해 이 노래를 빼고 그래미를 논할 수 있으랴. 무려 14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이다. 논현동 올리브영과 신촌 왓슨스에서도 흘러나왔다. 이마트 계산대에서 대파를 살 때도 브루노 마스의 목소리는 늘 우리와 함께였다. 4개 부문 노미네이트. 수상이 의심된다면 “Don’t believe Me, Just watch”.

'범죄자도 뮤지션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인정한 건 놀랍게도 그래미 시상식이었다.

Credit Info

2016년 03월 01호

2016년 03월 01호(총권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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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백지영
PHOTO
좀바프로젝트, 유니버셜, 소니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