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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호 EDITOR'S LETTER

On December 18, 2015

하느님이 천사 대신 엄마를 내려주셨다는 말에 눈물 콧물 섞어가며 격하게 동의했습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미친 드라마라며 속으로 욕하며 봤어요, ‘응답하라’ 얘기입니다. 엄마는 무슨 때가 되면 자꾸 더 사무칩니다. 그런 엄마가 야속해져 연말엔 자꾸 말 걸고 싶어집니다. 나는 소파 귀퉁이에 공벌레처럼 몸뚱이를 말고 으슬으슬한 몸을 녹이면서 브라운관 속 뽀글 머리 아지매가 ‘엄마, 엄마…’ 하고 흐느끼는 소리를 애써 외면합니다. 아, 머리 아파요. 왜 슬프면 콧물이 흐르는 걸까요. 더럽게 슬프다는 거, 이런 건가요? TV를 끄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허공에 뿌려봅니다. “엄마, 내가 올해 머리가 아팠어요. 올해? 올해는 2015년인데요, 올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해요? 엄마 인스타그램이라고 알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은요? 아하, 이런 답답하네. 여하튼 엄마 딸이 잡지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이걸 종이로만 만드는 줄 아셨죠? 그런데 이제 휴대폰에서도 볼 수 있게 됐어요. 그럼요, 그럼요. 세상 사람 모두가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 아 그러니까 예쁜 옷을 어디서 사면 좋을지, 무슨 영화가 재밌는지 그런 걸 그 조막만 한 휴대폰으로 다 볼 수 있어요. 아, 엄마 뭐라고요? 좋겠다고요?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봐주니까? 아하, 맞아요. 좋죠. 그런데 엄마 딸은 엄청 열 배로 바빠졌다니까요. 이거 봐요. 살이 쭉쭉 빠진다니까. 아? 일도 하고 살도 빠져서 좋겠다고요? 아, 그러네. 왜 여태 그런 생각을 못했지?” 엄마와의 대화는 언제나 삼천포로 빠져요. 그래도 말하고 나면 세상살이가 별일 아닌 거 같고 그런 덤덤한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죠. 잠시 동안의 상상이었지만 꽤 알찬 대화였네요. 사실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내 얘기의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SNS, 디지털, 인스타, 도달률, 멀티유즈, 펜수, 모바일 앱… 아이고야. 저 역시도 불과 3~4년 전엔 이런 영역을 메인 업무로 삼게 될 거라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안성현에게 ‘올 일 년 동안 뭘 했니?’라고 물으신다면, 단박에 대답할 수 있어요. 지면 콘텐츠의 디지털화를 고민하고 디지털과 지면 콘텐츠의 양립 방식을 연구했다고. 콘텐츠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집니다. 휴대폰을 터치하면 끝도 없는 콘텐츠 월드가 펼쳐집니다. 지면 말고 휴대폰 액정에 깔린 나의 콘텐츠를 보는 일, 이미 익숙합니다. 모바일 콘텐츠는 좀 더 정보 위주로, 지면 콘텐츠는 좀 더 깊고 소장 가치 있는 것으로 이분화하는 일 역시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대대손손 콘텐츠는 돈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를 인수하려고 물밑 작업 중이죠. 아마존 최고 경영자 제프 베저스도 2년 전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고요. IT 거물들은 빅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뉴 미디어 시장을 잠식해 나갈 겁니다. 콘텐츠는 곧 돈이니까요. 매거진 속 수천만 개의 콘텐츠도 결국 뉴 미디어 플랫폼을 타고 흐르며 돈이 되겠죠. 사실 아직 이 디지털의 세계에서 매거진 콘텐츠로 재화를 부풀리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여하튼 덕분에 2015년의 세상은 초광속으로 흘렀습니다. 오죽하면 우리 에디터가 ‘인스타그램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라는 칼럼을 다 썼을까요. 실시간 초 단위 기사 작성을 목전에 둔 에디터들의 외침, 혹은 절규가 흥건합니다. 그만큼 숙제가 많다는 얘기죠. 2016년에는 지면과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 방식에 총체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스타일 콘텐츠의 최강자인 매거진은 좀 더 영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죠. 무적의 생산 라인,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때니까요. 그 과정을 다 겪고 난 후, 내년 연말이 되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엄마, 엄마 말이 맞네요. 딸이 만든 기사를 너무 많은 사람이 (돈 내고) 보네요. 참 좋네요.” PS 여러분, 하루하루 소중한 연말 보내십시오. 내년에 뵙겠습니다.

하느님이 천사 대신 엄마를 내려주셨다는 말에 눈물 콧물 섞어가며 격하게 동의했습니다.

Credit Info

2015년12월02호

2015년12월02호(총권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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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