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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호 EDITOR'S LETTER

On December 18, 2015

좀 전에 쿠론이라는 가방 브랜드에서 보낸 전시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여자에게 가방은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집입니다’라는 카피가 눈길을 끄네요. 게다가 그 초대장엔 이번 시즌 가방이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라… 그를 떠올리면 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혁명가. 아파트의 원형인 위니테 다비타시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겠다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꿈. 1920년대의 파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았고, 다닥다닥 붙은 낡은 건물 속에서 하루 종일 빛 한 모금 받아먹지 못한 청춘들이 폐병에 시달리곤 했죠. 하긴 1920년대라면 우리 어르신들이 도포 자락 휘날리며 다닐 때니까 열악하기 그지없는 삶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어쨌든 서민들의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단박에 뒤엎을, 과격하리만큼 거대한 플랜을 실현하고자 했던 이 건축가는 파리 시내 전체를 싹 다 밀어버릴 꿈을 꿨다고 합니다. 층마다 빛이 충분히 들게 설계하고 공용 휴게실과 산책로를 만들어 누구나 주거 공간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그런 공간. 도시 중심에 교통 센터가 있고, 차는 지상으로 사람은 필로티 위에서 생활하는 미래 도시. 결국 파리에선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마르세유에서 위니테 다비타시옹이라는 다소 아담한(?) 사이즈로 건축을 하게 됐는데, 그 세심함은 지금 봐도 입이 떡 벌어집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 형태가 그가 설계한 지점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경이롭고요. 그가 꿈꾼 이 이상적 도시 설계는 대대손손 건축가들에게 이어져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의명분하에 혁명가로 거듭나려는 이들을 양산해 냈습니다. 낙원, 청계, 세운상가 일대를 쭉 지상으로 연결해 꿈의 낙원으로 만들겠다는 건축가 김수근의 1960년대 도시 계획 플랜도 그 정신을 이어받은 거니까요.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치열함일 겁니다. 정치적 이슈에 수시로 휘말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강철 심지를 가져야만 하죠. 인간 생활을 담는 일, 역사를 담는 일이니 말입니다. 다시 가방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네요. 가방이 여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집’이라면…(사실 이 표현은 가방을 ‘여자의 상징이네, 여성 패션의 처음이자 끝이네’ 하는 표현보다 훨씬 현실감 있습니다) 자, 다 같이 지금 옆에 놓인 가방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제 가방은 덩치가 산만 합니다. 틈만 나면 읽으리라 다짐하고 구겨 넣는 신간들, 정리 안 된 빅 사이즈 파우치, 전천후 카디건, 뒤죽박죽 필통, 휴대폰과 명함집, 영수증으로 점철된 두툼한 지갑. 제 하루를 담은 가방, 제 라이프스타일 그대로입니다. 가방은 집과 같고,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건축가처럼 치열하며 혁명적이어야 하고. ‘가방은 라이프스타일을 닮은 집과 같다’는 훌륭한 카피가 마케팅용인 아닌, 전 세계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진심이면 좋겠습니다. 전 가방과 함께하는 시간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더 길거든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하긴 여성의 두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숄더백을 르 코르뷔지에의 혁명 정신과 비견 못할 건 또 뭐겠습니까. 아, 가방 만드는 이들을 엄청 경외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PS 가방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라치아>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잊지 말고 주목해 주십시오. 창간 이래로 우리의 마지막 칼럼은 ‘The charity bag’이었습니다. 매 호 가방 하나를 소개하고 이 가방을 <그라치아> 식구들에게 판매합니다. 왜?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키우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서. 창간 때부터 일상처럼 진행하던 일이라 크게 홍보는 안 했었는데… 지난주에 SOS마을 촌장님 등 너무 많은 분들이 감사 전화를 주셨어요. 그간의 기부금으로 너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니 독자 여러분께 한번 더 알리자 싶었습니다. 

가방에 라이프 스타일을 제대로 담아 내는 <그라치아>의 라스트 페이지에 주목해주시길! 

 

 

좀 전에 쿠론이라는 가방 브랜드에서 보낸 전시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Credit Info

2015년 11월 02호

2015년 11월 02호(총권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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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