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비하인드 그라치아

2015년 11월 1호 EDITOR'S LETTER

On December 18, 2015

동대문 운동장, 다들 기억하십니까?

 

EDITOR IN CHIEF 안성현

 

  

그곳에 처음 간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만, 아마도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그때 <소년동아일보> 학생 기자였는데, 동대문 운동장에서 큰 행사가 열려 참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거대한 돔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공간의 크기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운동장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평지인 줄 알던 순수 소녀 아니었겠어요?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내뿜는 이질적인 체취와 엄청난 박수 소리, 공중을 어지럽게 휘젓는 비행기, 그 꼬리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연기(그러고 보니 이게 어린이날 기념행사였나 봅니다)! 비현실적인 웅성임에 파묻혀 퇴장할 땐 그 어느 때보다 엄마 손을 꼭 쥐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낡고 큰 함선을 빠져나올 때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처럼 나란히 자리한 스포츠용품 가게들을 만났습니다. 기름진 야구 배트와 글러브, 위협적인 스파이크화, 당장 집에 데려오고 싶은 곱디고운 화이트 피겨 스케이트…. 쇼윈도 너머의 세상은 아름답고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들이 유리창에 내걸려 있어 자꾸 발길이 머물렀죠. 손을 당기는 엄마가 야속하게 여겨질 만큼 제 어린 고개는 자꾸 그곳을 향했습니다. 그렇게 동대문 운동장, 아니 동대문 스포츠용품 숍은 크는 내내 제 ‘드림 스페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종마 같은 근육을 가진 ‘달려라 하니’ 유형의 운동 소녀였던 건 아닙니다. 하나의 공간이 어린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 철든 머리로 생각하니 그때 그 공간이 주는 감성이 크는 내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정겹고 낡은 쇼윈도 안에 올림픽이나 프로야구 경기 중계에서만 봤던(위풍당당한 전리품 같은) 게 마구 펼쳐져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매직으로 갈겨쓴 스포츠 스타의 사인까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어린 안성현,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점철된 어린 안성현을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건재하길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엔 시간의 단면이 존재하니까요. 저는 내일부터 동대문 운동장에 갑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라는 많이 세련된 이름으로 재탄생한 그곳으로 갑니다. 운동 기구를 팔던 정겨운 가게들은 사라지고 운동장의 역사는 기념관 속에 밀봉됐지만, 그래도 동대문과 평화시장을 곁에 둔 친밀한 그 좌표만으로도 ‘추억은 방울방울’입니다. 제가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는 이유는 서울 패션위크 때문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이 넘치던 동대문 운동장이 패션 피플로 가득한 캣워크가 된 지 올해로 3년째. 혹자는 이곳을 원형이 무시된 괴물 건축물이라 하고, 전시 행정의 표상이라 하고, 역사를 무시한 난개발에 가슴을 치고, 지지 하디드와 서울 4대문과의 감성 괴리를 성토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정신으로 이곳에서의 새로운 추억을 잘 가꾸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건축은 바뀌어버렸고, 그렇다면 이제 이 새로운 공간과 새 추억을 쌓아야겠죠. 참 다행히도 우리의 부지런하고 영민한 디자이너들이 봄가을로 이곳에 새 이야기를 채워줍니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의 손을 잡고 가볼까 합니다. 30여 년 전 제가 엄마 손을 꼭 잡고 긴장하며 드나들었던 그 거대한 공간과의 인연을, 아이에게 물려줄까 합니다. 서울 컬렉션에 참여한 모든 대한의 디자이너들에게 큰 응원을 보냅니다. 그들은 트렌드뿐 아니라 ‘공간에 담긴 추억’을 제공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니까 말입니다. 

 

PS 

서울 패션위크 기간입니다. 

추억 제공자인 그들의 이야기를 이번 호 68페이지에 담았습니다 

 

 

동대문 운동장, 다들 기억하십니까?

Credit Info

2015년 11월 01호

2015년 11월 01호(총권 65호)

이달의 목차
EDITOR IN CHIEF
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