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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호 EDITOR'S LETTER

On September 04, 2015

탄산 소주가 나온답니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탄산 소주가 나온답니다. 순하리라는 소주인 듯 소주 아닌 소주 같은 술에 길들여진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세상에나, 인간들 입맛을 개조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끝은 어디일까요? 솔직히 말해 어떨 땐 식품 연구원들에 의해 우리 입맛이 조정당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니까요. 사람의 혀가 얼마나 간사한지 길들이면 길들이는 대로 적응을 척척 하지 뭡니까. 시트러스 계열(그러니까 자몽이나 귤 같은) 향이 안 나면 요즘은 왠지 소주가 텁텁한 거 같고, 막 쓰고 그래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어릴 적엔 미트 소스 스파게티만 먹었어요. 슈퍼에 그거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뻥 좀 보태서 수만 가지 파스타를 맛보다 보니 그건 ‘애들이나 먹는 맛’이라고 제 혀가 자꾸 태클을 걸곤 합니다. 지금은 물처럼 퍼 마시는 원두커피도 그래요. 옛날 드라마 대사에는 이런 거 참 많았거든요. “설탕 셋, 프림 셋. 맞으시죠?” 똑 부러지게 생긴 비서가 겉은 냉정하나 속은 따뜻한 실장님께 건네는 전형적인 대사죠. 2000년 초반만 해도 사무실마다 커다란 프림 한 통, 설탕 한 통, 가루 커피 한 통으로 이루어진 이 ‘삼실삼우’가 있어야 비즈니스가 잘됐더란 말입니다. 아, 우유도 아닌 프림을 듬뿍듬뿍 스푼으로 퍼 넣던, ‘커피는 역시 프림 맛이지’ 했던 우리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마치 무성영화 시절의 한 장면 같지 뭡니까. 먹고사는 일이 기본인 우리에게 이 음식의 진화란 그 무엇보다 크게 다가옵니다. 게다가 요즘의 먹거리란 오감의 집약체, 최고 레벨의 트렌드 안테나이기도 하니까요. 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먹고, 먹고, 또 먹고’ 정도 되겠습니다. 지인이자 유명 포토그래퍼인 Z는 최현석 셰프의 책을 촬영 중이랍니다. 그가 주방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인스타에 투척하곤 하네요. 한마디로 ‘고퀄’이죠. 잡지사 마케터인 J는 현대 판교의 ‘Food & Beverage’, 그러니까 식품관을 깨알같이 설명합니다. 글쎄 이곳의 그 코너가 국내 최대 규모라나요. 찬찬히 구경하려면 날을 잡아야 한답니다. 축구장 두 배 크기라며, 다리가 후들거려 걸어 다니기 힘들다는 코멘트까지…. 이건 뭐 신천지인 모양입니다. 이 백화점이 들어설 때 차별화시킨 마케팅 전략이 꽤 여러 가지였는데, 결국 타임라인을 달군 건 일관되게 식품관 얘기뿐. 먹고 먹고 또 먹고, 그 얘기만 했네요. 지구상의 인간을 장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먹거리임을 증명한 셈이죠. ‘한 번 커진 집과 차는 줄이기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전 여기에 ‘입맛’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맛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할 정도로 입맛의 ‘레벨 업’은 끝 간 데 없이 ‘레벨 업’되고 있습니다. 타임라인을 훑다 보면 마카롱은 피에르 에르메, 케이크는 도레도레, 푸딩은 매그놀리아에서 사먹어야 할 것 같은 판타지에 빠져듭니다. 이게 다 성실한 마케터들의 집요한 유혹과 연구원들의 끊임없는 상품 개발 때문 아니겠습니까? 특히 여심을 자극하는 달달한 디저트 메뉴는 패션 브랜드의 절친이기도 합니다. 행복 지수를 높이는 데 한몫을 하는 건 물론이고, 디저트먹스타그램이 트렌드의 최고봉이니 패션 브랜드에서 그 영역을 놓칠 리가 없죠. 몇 시즌 전부터 체리, 파인애플, 케이크, 아이스크림, 도넛이 드레스나 원피스 위에 얹어지기 시작하더니 샤넬의 슈퍼마켓 테마의 캣워크로 활활 불타올랐죠. 이번 호 132페이지를 한 번 펼쳐보세요. #UnitedEat이라는 베네통의 달콤한 캠페인 화보가 펼쳐집니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디저트 숍 지도도 투척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먹거리 마케팅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요즘 같은 때 걸맞은 명언이네요. 단언컨대 이 푸드 마케팅에 끝이란 없을 겁니다. 앞으로 더 더 더 먹고 먹고 또 먹고, 마케팅이 진화에 진화 또 진화하겠죠.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꼭꼭 씹어서.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62호

탄산 소주가 나온답니다.

Credit Info

2015년 09월 02호

2015년 09월 02호(총권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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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