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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 쿠튀르의 의미 있는 부활

On August 27, 2015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뉴스에서도 오트 쿠튀르라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 단어가 왜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까.

  • <디올 앤 아이> 속 라프 시몬스.

오트 쿠튀르는 브랜드의 영혼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디올 앤 아이>에서 나온 대사다. 라프 시몬스가 디올의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도전하는 8주간의 기록을 다룬 이 영화에서 뜻밖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단순한 패션 영화가 아니었다. 패션 역시 예술이라는 결론과 함께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 영화였다.

디올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할 즈음 파리에서는 오트 쿠튀르가 한창이었다. 역대 최고의 쇼였다는 찬사를 받은 샤넬의 ‘갬블러 쇼’부터, 지상 최대의 모피 쇼를 보여준 펜디의 오트 쿠튀르 데뷔 쇼까지 파리 오트 쿠튀르는 ‘대흥행’이었다.

쿠튀르 복귀를 알린 생로랑.

이어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은 다음 시즌부터 다시 이브 생 로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트 쿠튀르 쇼를 열겠다고 공표했고, 토즈 그룹 역시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아파트를 복원하는 것으로 오트 쿠튀르에 발을 디뎠다. 한동안 수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유물 취급당하던 오트 쿠튀르가 완벽하게 환생했다.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 그러니까 크리스찬 디올이 뉴룩을 선보였던 1947년 즈음에는 오트 쿠튀르를 구입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2만 명이 넘었다. 지금은 낙관적으로 추측해도 1만 명이 채 안 되는 수준.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트 쿠튀르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오트 쿠튀르의 고객이 유럽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인도, 러시아, 브라질, 두바이 그리고 한국(그렇다. 샤넬의 패션 부문 대표인 브루노 파블로스키는 두바이 다음으로 새로운 고객층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했다!) 등으로 새로운 오트 쿠튀르 고객층이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고객들의 나이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 점에서 하우스 브랜드들은 오트 쿠튀르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의 국적과 나이는 변했지만 오트 쿠튀르가 만들어지는 과정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오트 쿠튀르는 단춧구멍 하나까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영화 <디올 앤 아이>에서 엿본 디올 쿠튀르 아틀리에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10년은 우습고, 무슈 디올이 있었던 시절부터 일해 온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옷을 만드는 건 ‘공예’에 가까운 일이다.

“보통 오트 쿠튀르는 고객이 주문을 하면 세 번 이상은 미팅을 합니다. 첫 번째 미팅에서는 디자인을 상의해요. 두 번째는 피팅, 세 번째는 파이널 피팅을 위한 미팅입니다. 오더메이드인 만큼 디자인은 수시로 고객의 취향에 맞춰 바뀔 수 있어요. 미팅은 고객이 있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가능하죠. 오트 쿠튀르 슈트는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200시간이 걸리고, 드레스는 600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디올 쿠튀리에의 말이다.

실제로 영화 <디올 앤 아이>에서의 가장 큰 갈등은 아틀리에 수석 재봉사가 뉴욕의 고객을 위해 피팅을 떠나면서 빚어졌다. 그 고객은 1년에 4억원이 넘는 옷을 주문하는 고객이니, 당연히 그녀가 있는 곳까지 가서 직접 피팅을 한다. 오트 쿠튀르의 매력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다.

클릭 한 번이면 ‘로켓 배송’으로 옷을 받아보는 세상에서 600시간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숫자다.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사치품인 셈. 게다가 오트 쿠튀르의 수익은 옷값의 1%도 되지 않는다. 사는 사람만큼이나 파는 사람에게도 오트 쿠튀르는 요즘의 잣대로는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제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들이 오트 쿠튀르의 부활에 앞장서는 이유는 그게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 옷뿐 아니라 옷이 보여지는 배경까지도 ‘손맛’의 정수를 보여준 디올 오트 쿠튀르.

이제 의식주의 시대가 가고, 곧 아트의 시대가 올 것이다. 아트의 시대에 사람들이 주머니를 여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 좋은 것이 아니다. 스토리(<디올 앤 아이>에서 말하던 ‘영혼’과 일맥상통하는)가 있는 무언가를 소비하는 시대가 온다. 그건 사람의 손과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늘과 실에 의해 만들어지는 오트 쿠튀르는 단순한 ‘의’가 아니라, ‘아트’다. 패션이 아트의 시대에도 여전히 힘을 가지려면 그 타이틀이 필요하다. 패스트 패션의 경박함을 누르는 시간과 공이라는 묵직한 이미지 말이다.

최근 UN은 미래에 ‘메이커’(Maker), 즉 장인 정신이 각광받을 거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트의 시대가 온다는 것도, 미래엔 메이커만이 살아남는다는 예상도, 지금 패션계에서 오트 쿠튀르에 집착하는 이유도 다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다. 기술이 첨단의 뾰족한 꼭짓점을 찍고 나면 다시 무딘 사람의 손에 가치를 두는 시대가 온다. 오래되었지만 그게 우리의 미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뉴스에서도 오트 쿠튀르라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 단어가 왜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까.

Credit Info

2015년 09월 01호

2015년 09월 01호(총권 61호)

이달의 목차
Words
김민정(프리랜서)
Photo
©Dior, Saint Laurent, Fe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