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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고민상담>과 <D.P.>로 화제인 만화가 김보통과의 ‘사이다’ 인터뷰

얼굴 없는 고민 상담가 김보통 씨의 정체

On June 29, 2015

“고민 상담이에요. 고민 상담소가 아니라.” 김보통이 말했다. “상담소라고 하면 너무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김보통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모든 걸 이해받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고민 의뢰 사이트(ask.fm/kimbotong)에 4천 개가 넘는 질문이 쌓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당신도 이 인터뷰를 다 읽고 나면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든 한결 가벼워질 거다.

▲ 김보통이 입은 재킷, 팬츠 모두 아르코 발레노. 안에 입은 티셔츠 페기민. 슈즈 콜한. 모델이 입은 탑, 스커트 모두 세컨 플로어. 슈즈 슈콤마보니. 쥬얼리 스톤헨지.

프로필
김보통

어쩌다 보니 만화가.
올레마켓 ‘아만자’ 완결.
현재 <한겨레>에 ‘D.P.’, 레진 코믹스에 ‘내 멋대로 고민상담’ 연재 중.

트위터 보니까 연재만화인 ‘D.P.’보다 ‘내 멋대로 고민상담’이 더 인기 많다고 인정하셨더라고요.
훨씬 많아요. 담당자들이 놀랄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서 허탈하기도 하고.

4200개의 질문이 남아 있다고 얘기한 걸 봤어요. 그중엔 해결할 수 없어서, 또는 답하기가 어려워서 쌓아놓은 것도 있겠죠?
맞아요. 제가 뭐라 답할 수 없는 것들이 있죠. 해결은 당연히 못하고, 그나마 적을 말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그냥 한 달째 두 달째 보고만 있는 거예요. 생각은 계속하는데 마땅한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게 많아요.

뻔히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가 무슨 얘기든 해주길 바라게 되잖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절실한 내용을 털어놓으니까 듣는 입장에서도 쉽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첫 회째만 하더라도 굉장히 가벼운 얘기였어요. 그래서 피식 웃게 하자는 취지로 그림까지 다 그리는 데 2시간이면 충분했죠. 그런데 점점 얘기들이 무거운 쪽으로 가니까 함부로 답하지 못하겠다 싶어 방향을 급선회했어요. 전문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심사숙고는 해야겠다 싶어서. 지금은 다른 만화 마감 중에도 계속 고민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답을 메모해 둬요. 거기서 또 추리고 다듬어 보내면 최종적으로 담당 에디터 선에서 또 한 번 걸러 나가죠. 굉장히 심사숙고를 해요.

20~30대 여성들은 주로 뭘 고민하던가요?
딱히 성별을 밝히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연애 얘기가 제일 많은 듯해요. 가벼운 연애 얘기면 저도 가볍게 답하겠는데, 세상에는 이상하고도 나쁜 사람들과 얽혀서 힘든 연애를 하는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30대로 넘어가면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는지, 혹은 시부모와의 갈등 같은 내용이 더해지죠.

전부 답변할 예정이세요?
중복되는 거 빼고는 그러고 싶어요. 고민 상담 연재를 시작한 지 거의 두 달이 됐는데, 초기에 고민을 올린 분들 중엔 분명히 ‘내 질문엔 왜 답이 안 올라오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거예요. 저한테는 4200개 중 하나지만 그분에게는 절실한 고민이잖아요. 개중엔 ‘내 고민을 고민으로 생각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고요. 여기에서까지 그런 느낌을 받게 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오래 걸려서 죄책감까지 들어요.

사람들의 고민을 읽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편견에 대한 경계선이 많이 허물어졌어요. 이해하지 못했던 고통의 영역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죠. 어제는 ‘자살하고 싶었는데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며 그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이돌 좋아하는 걸 놀리고 무시한다’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저도 그전까지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팬덤에 왜 저렇게 열광하는지 공감하지 못했는데 기성세대에겐 탐탁지 않은 아이돌이 힘든 누군가에게는 살아야 될 이유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죠. 동성애자도 마찬가지고요. 이 만화를 그리기 전엔 생각지 못했던 고통에 대해 알면서 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떤 폭력을 휘두르며 살았음을 깨우치게 됐어요.

재밌는 건 삶에 대한 개인적 태도가 담긴 글일수록 공감을 많이 사더라고요. ‘참고 견뎌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는 마인드에 질린 사람들에게 ‘다 필요 없고 나만 생각하자’는 김보통 씨의 말이 위로가 되는 듯해요.
‘고통을 감내해야만 성숙해진다’라는 피학적 변태 성욕자 같은 강박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고통을 감내하고 산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행복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그냥 감내하고 살 뿐인 거죠. 지금의 현실이 맘에 안 들면 바꿔야 되는데, 왜 개인의 노력 부족이고 인내심 부족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만 득을 볼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일종의 환상을 자꾸 심어주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저는 제 자신이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증거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그 ‘가야 되는 길’을 벗어나도 춥지 않더라, 불행해지지 않더라,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지도 않더라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요. 저도 4년간 다닌 회사 그만두고 트위터를 하다가 어쩌다 보니 만화가가 됐거든요. 자신이 지금 가는 길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낭떠러지라고 생각해 그냥 그 길을 울며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길을 이렇게 나왔더니 산소도 있고 중력도 있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어요.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 김보통 씨처럼 그만둘 용기가 없어 고민하는 20~30대 여성들도 많지 않나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는 되게 많아요. 그런데 앞에서 얘기했듯이 성별을 밝히는 사람이 없어 장담은 못하지만, 그중 반 이상이 여성일 거라는 추측은 해요. 제 만화를 여성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만화.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의 유형이라 공개합니다.”

직접 경험을 하셨잖아요. 산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만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회사를 다니는 건 누구나 힘들지만 대개 ‘언젠간 좋은 날이 온다, 지금은 다 힘들다, 어딜 가나 힘들다’ 그런 얘기로 위안 삼으며 다니잖아요. 저도 그 말이 맞을까란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회사를 다니는 4년 동안 단 하루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4년을 생각했는데도 이러면 앞으로도 똑같지 않을까란 생각이 덜컥 드는 거예요. 심지어 저보다 직장 생활을 오래한 과장이나 차장, 부장까지도 다 똑같이 “그나마 여기가 제일 낫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아, 이 사람들은 10년 20년을 다녀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앞으로 내가 10년 뒤에도 저 모습이고 20년 뒤에도 저 모습이라면 기대할 게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대책은 없었죠. 사람들이 제가 회사를 그만둘 때 뭔가 할 게 있겠지라고 착각했는데, 저는 그냥 잠자고 싶어서 그만둔 거거든요(웃음).

일단 더는 못 견디겠어서?
네. 솔직히 혼자 생각엔 DJ 하려고 했어요(웃음).

실제로 배우기도 했어요?
그럼요. 퇴직금으로 산 장비가 얼만데(웃음). 많은 분이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되고 거기서도 고꾸라지면 죽는다’란 각오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 대해서도 만화가를 목표로 매진해서 최단기간에 만화가가 됐을 거라고 착각하죠. 하지만 아닙니다. 피아노를 치다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책 읽다가, 게임하다 별의별 생각을 다했어요.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 협회를 만들어서 그걸로 다이어트 동영상을 찍을까란 생각도.

하하. 쉽게 말해서 백수였단 얘기죠?
네. 해가 뜰 때까지 누워서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정말 의도치 않게 옛날에 만들어놓은 트위터 계정이 생각나서 트위터를 하다 만화가가 된 거예요. 회사를 그만둘 때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더 잘해 나가겠지만 없이도 이렇게 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계획이 있어도 변수는 늘 생기니까요.
맞아요. 사실 저는 뭔가 하다가 엎어져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에요. ‘이 일은 아닌가 보다. 다른 길로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식이죠. 그동안 이 길을 가기 위해 퍼부은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는 분도 많은데, 이미 그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안 해요. 저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모든 행복을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동안 쏟아부은 돈이며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통째로 날려버린 거죠.

그 시간을 즐기며 살지 않은 데서 오는 후회인가요?
진짜로 열심히 한 사람에 비할 건 못되지만, 일단은 그런 강박 속에서 서열대로 정석대로 살아야 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했음에도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뭘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에 큰 미련이 없어요.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이 좀 필요하지 않나 싶죠. 이거 아니면 패배자나 인생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해요. 처음엔 제 주변에서도 다 저를 그렇게 봤거든요. 정석의 길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한 사회 부적응자, 낙오자란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재밌으면 되는 거니까’ 싶었죠.

‘목표 이루며 살아봐도 별게 없으니까 그냥 기분에 따라 살자’라고 바뀌신 거죠?
맞아요. 그렇게 2년을 살았더니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웃기는 건 2년 전에 저한테 “넌 분명히 불행해질 것이고 후회하며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요즘엔 “너 행복하겠다. 잘 풀려서 좋겠다” 그래요. 그때나 지금이나 전 똑같거든요. 속으로 얼마나 배가 아플까 생각하면 웃기고 재밌어요.

지금은 스트레스가 전혀 없나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 생각을 보고 평가하는데.
요즘 고민 상담 받으면서 많은 아픔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악플 같은 건 그러려니 여겨요. 세상에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아픔이 너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것들은 가벼워 보이더라고요. 트위터에 발언할 때는 강박적으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되레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거 아닌가. 내 편견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라는 것을 계속 체크하는 필터로 작용하고 있죠.

역대 반응이 가장 좋았던 상담 내용.

고민에서 전이되는 감정은 어떻게 해요? 그게 고이면요.
요즘 그게 걱정이에요. 딱 고민 상담 그리려고 하면 두근거리고 막 어지러워요. 일단은 제가 아무리 고민한다 해도 실제 그걸 겪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괴로워해야 그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도 고민 상담 잘해 주는 편이었나요?
전혀요. 그냥 혼자 살았어요. 대학교도 혼자 다니고 회사에서도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 고민을 털어놓거나 남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죠. 제 평생 처음으로 경청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당구도 안 치고 게임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유흥도 안 즐겨서 친구의 필요성을 못 느껴요. 외롭지도 않고요. 솔직히 인간 사회에 살고 있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처음으로 그린 만화인 ‘아만자’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바치는 이야기라는 말이 있더군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담아만 뒀기 때문에 작품으로 나온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아버지 임종을 지켜볼 때, 청력은 남아 있으니까 뭐라도 한마디 하라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못하겠더라고요, 평생 안 했던 말이라. 아버지 투병하는 기간에도 손 한 번 못 잡아드렸고요. 처음에 암 환자 얘기 그리겠다고 했을 때 연재하는 곳에서도 반대했어요. 결말 뻔하고 우울한 얘기 왜 하느냐고.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다른 이야기를 못하겠다고 했죠. 일단 너무 쌓여 있는 게 아버지라는 존재였거든요. 아버지 죽음을 그냥 외면하듯 지나쳤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 식으로라도 보내드리지 않으면…. 그러니까 처음엔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거였죠.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호응해 줘 감사했어요. 지적하신 것처럼 말을 안 하고 살았기 때문에 제 얘길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인간관계가 남들처럼 원활해서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하고 다녔다면 이런 만화 안 그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깨달았습니다. 하하.

‘아만자’는 댓글이 더 슬프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요?
암 환자들한테 굉장히 메일을 많이 받았었는데, ‘다음에 6차 항암 들어갑니다. 책은 언제 나옵니까? 지금 12차 항암을 하고 있습니다. 완결은 언제 하나요’란 글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저는 완결까지 한참 남았으니 끝까지 봐야 된다고 답했죠. 그러고 끝나면 더 재밌는 만화 그릴 거니까 그것도 봐야 된다고. 연재 중반부터는 그분들 때문에 만화를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또 중간에 정말 살고 싶지 않은데 살아야 되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 얘기 나올 때는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 시도한 분들에게 메일이 왔어요. ‘오늘 자살 시도를 했는데 이 만화를 봤다.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 그때부턴 또 이분들을 위해 그렸죠. 처음 사인회를 할 때 그분들이 다 오셨어요. 저 아직 안 죽었다고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했죠.

지금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D.P.’도 공감을 많이 살 만한 소재가 아니긴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의뢰를 받긴 했지만 ‘아만자’처럼 사람들이 기피하는 주제임에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분명 있는데도 누구 하나 이야기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D.P.’ 다음 만화도 비슷해요, 주인공이.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만화를 앞으로도 그릴 생각입니다.

EDITOR : 김소영
PHOTO : 이윤화
MODEL : 임다비
HAIR : 홍은, 기루
MAKEUP : 김경화(이경민포레 홍대점)
STYLIST : 박송미

발행 : 2015년 56호

“고민 상담이에요. 고민 상담소가 아니라.” 김보통이 말했다. “상담소라고 하면 너무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김보통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모든 걸 이해받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고민 의뢰 사이트(ask.fm/kimbotong)에 4천 개가 넘는 질문이 쌓이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당신도 이 인터뷰를 다 읽고 나면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든 한결 가벼워질 거다.

Credit Info

2015년 06월 02호

2015년 06월 02호(총권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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