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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효리’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잼이나 만들며 살고 싶죠?

On May 27, 2015 0

놀라운 건 미주 여성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이게 유행이라는 사실이다. 『하우스와이프 2.0』의 저자 에밀리 맷차는 이른바 ‘새로운 가정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일하는 엄마가 한물간 유행이 된 시대라고 말이다. 그녀가 ‘제주 효리’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보내왔다

  • 노예같은 직장 생활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꿈꾸는 수많은 여성을 만나 인터뷰 한 에밀리 맷차.

알다시피 요즘엔 힙스터 주부가 유행이다
증거는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사람들은 잼을 만들거나 바느질 같은 DIY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웹사이트와 출판물이 이걸 ‘로맨틱’하게 내보였고, 개인 블로그를 통해 유행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블로그 세계의 기현상인 ‘도메스틱 포르노’란 용어도 생겨났다. 이케아로 꾸민 북유럽풍 인테리어, 복고풍의 원피스를 입고 뜨개질한 스웨터, 집에서 요리한 계절 밥상(꼭 정탑에서 찍은) 등 인테리어·공예·요리에 관한 블로그를 보는 중독성이 포르노 못지않다 하여 ‘도메스틱 포르노’라 부른다.

비 오는 날의 우수 어린 사색, 아기의 솜털을 클로즈업한 사진도 여기에 포함된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미국학 교수이자 음식 전문가인 마시 코헨 페리스는 유독 여성이 이런 블로그를 주도한다고 말했다.

“이건 정말 커다란 사회적 변화예요. 이 블로그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거든요. 자신이 이런 창조적인 분야에서 얼마나 역량이 높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방법이에요.”

블로그가 홀대받던 집안일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요즘엔 이런 집안일의 회복을 진보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이라고 칭한다. 소믈리에 일을 그만두고 시간제 산파로 일하는 한 엄마가 말한다. “이건 페미니즘의 새로운 조류예요. 여성들이 가정을 되찾는 거죠.” 그렇다. 이제 가정의 시대인 거다!

영국 작가인 인디아 나이트는 “이 여성 블로거 현상은 시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라고까지 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왜 직접 빵을 굽고 옷을 꿰매면서까지 팔방미인이 되려는 걸까? 빵집에서 빵을 사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것으로 아낀 시간을 내가 잘하는 일에 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을까?

유리 천장이 안 깨지는 걸 봤기 때문이다
201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커버스토리인 ‘20대가 된 Y세대’를 쓴 노린 말론은 말한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하찮은 것인지를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남들이 비웃더라도 뭔가 조몰락조몰락 만드는 일에 힘을 쏟는 거예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게 피클을 만들고, 꽃꽂이 수업을 듣기도 하죠. 이런 취미 생활은 우리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고, 피 말리는 직업 세계에 대한 대안이 되었어요.”

<시카고 트리뷴>의 前 기자 에밀리는 직장 생활을 ‘노를 젓고 있는데, 더욱 빨리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일회 용기에 포장된 저녁을 먹고, 직장에 입고 다닐 새 옷을 끊임없이 사고, 출퇴근을 위해 먼 거리를 다녀야 했죠. 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비가 필요한지 깨닫고는 넌더리가 났어요.” 그녀는 소비로 시작해서 소비로 끝나는 직장 문화를 거부하고 한 걸음 느리지만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선택했다. “나 따윈 요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회사에 내 건강과 재정이 달렸다는 사실을 냉정히 직시하기 시작했거든요.”

부족한 출산 휴가와 직장 내 복지 혜택이라고는 없는 현실, 성차별적인 직장 문화, 유리 천장이 깨질 거란 기대를 못 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거지 같은 직장을 떠나 집에서 잼이나 만들겠어’라는 꿈을 꾸는 건 당연해 보인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였던 앤 마리 슬로터는 “이전 세대의 여성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직장·가정·개인 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믿었어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허풍’이라 생각하죠”라고 말한다.

사회평론가 엘리자베스 바대테르도 “많은 커리어 우먼이 기대한 직생 생활과 너무 달라 좌절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커리어를 체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똑똑한 여성들은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자신을 무기력하게 느끼고 있다. 내가 사 먹는 음식이 납으로 오염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저 돈 때문에 직장에서 (남을 위해) 노예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카드 값을 내느라 땀을 빼는 대신, 맛있는 빵을 구우며 오븐에서 땀을 흘리고 싶은 거다.

‘가정의 시대’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먹거리 문화를 보자. 요리는 지루한 노동에서 트렌드의 중심으로 옮겨갔다. 음식 블로그는 유명세를 얻고, 요리사는 스타가 되기도 한다. 요리 마니아들이 늘어가는 현상은 직장 생활이 주는 소외감, 단절감 때문일지 모른다. 직장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들, 즉 손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일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21세기 음식 트렌드인 ‘푸드 베팅’(음식 안전에 대한 공포로 음식의 출처를 알려는 노력)이 먹거리 DIY 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마시 코헨 페리스는 “보다시피 젊고 지적이며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들이 집안일로 돌아오는 것은 망가진 식품 시스템에 대한 반작용이에요”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언론은 직장을 그만두는 현상을 멋지게 포장하고 있다. 사회학자 패멀라 스턴은 말한다. “일하는 어머니는 한물간 유행이 된 거죠.” 수많은 여성을 만나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작가 에밀리 맷차는 우리의 가치가 변했음을 강조한다. “우린 부모님이 업장에서 분투하며 살아도 삶의 행복은 별반 달라지지 않음을 보고 자랐죠. 지금이라도 가정과 가족에 집중하고 싶어 해요. 또한 덜 소비적이고, 덜 버리고, 대기업의 거대 시스템에 덜 의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죠.”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도메스틱 포르노는 말 그대로 포르노지 실생활이 아니며, 우린 이효리처럼 일 안 해도 나오는 저작권이 없다. 에밀리 맷차도 이런 사실에 충분히 공감하며, <그라치아> 독자들에게 이 유행에 합류하고자 할 때 명심할 것들을 보내왔다. 이 모두를 극복할 수 있다면 당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 에디터는 포기했다.

에밀리 맷차가 말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잼을 만들기 전에 상기할 것들’

남에게 보이려는 행동이 아닌지 생각하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직장 생활법 센터’의 소장인 조앤 윌리엄스는 “DIY 가사 활동은 사회 계층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특히 순수한 재료로 집에서 만든 음식에 대한 집착은 자신이 중상류층에 속함을 보여주려는 행동이라는 것. “음식에는 항상 계층을 암시하는 단어가 있었어요. 요즘 중상류층에 걸맞은 행동이라면 신선한 지역에서 재료를 가져와 직접 음식을 만드는 거예요.” 또 경기 침체기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계층을 입증하는 데 더욱 열심이라고 덧붙였다. “빵을 굽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장을 보는 ‘좋은 취향’을 표하면서 자기가 어떤 계층인지 보여주는 거예요. 당신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말이죠.” 의 유럽 담당 에디터였던 케빈 웨스트는 패션에 비유한다. “명품 브랜드 대신에, 평범하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본인이 직접 발굴하고 찾아낸 제품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게 바로 새로이 정의된 고급스러움이었죠. 마찬가지로 먹거리의 세계에서도 유기농법과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이 극대화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결국엔 자기의 고급스러움을 증명하기 위한 ‘액션’일 수도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우습게 보지 말라
가정으로 회귀하려는 여성들에게 재정적인 독립성에 대해 물었을 때, 약간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지서나 청구서 같은 게 왜 중요한데요? 우리가 죽고 나면 아무 상관도 없을 시시콜콜한 일들이 왜 중요한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자. 고지서와 청구서는 절대 시시콜콜한 잡무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걸 낼 돈이 없는 상황은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 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겨서 가정과 개인 관심사에 충실하고 싶단 마음은 이해한다. 이를 위해선 검소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생활을 잘해 낼 것만 같다. 하지만 해보면 결코 쉽지 않을 거다. <베네티페어>와 <뉴스위크>의 기고가인 레슬리 베네츠는 경고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면서 이 새로운 유행을 받아들이는 건 위험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경제적 자립은 확보해 놓고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혹시 누군가가 항상 자신을 대신해 돈을 벌어들이는 무거운 짐을 질 거라는 추정하에 그러는 건 아닌가? 내가 조사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재정을 남편이나 남자 친구 혹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은 언제든 다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특히 아이를 낳으면 다 때려치우고 싶단 생각이 더 간절해질 거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는 건 정말 힘드니까. 하지만 자녀의 어린 시절(당신이 옆에 붙어서 밥을 먹여줘야 할 때 말이다)은 금방 가는 반면에, 직장은 다시 들어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아이들이 제 앞가림 좀 할 때가 되면, 집 안에서 할 일은 확 줄어들고 나이가 들수록 가난해질 가능성은 커진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집안일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라
인터뷰한 많은 여성이 아이들에게 냉동식품 사 먹이는 걸 무슨 독약 먹이듯이 여기고 있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그 음식들이 존재하는 건 안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극단적인 미식가의 세계’다. 굳이 거기에 휩쓸려 가지 말라. 요리하는 게 싫으면 하지 말라. 제발 요리가 즐겁고 뜨개질이 재밌을 때만 하라.

어중간한 자기 처지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라
가정으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현재 생업에 힘겨워하는 중산층이었다. 임시직에서는 아무 만족을 못 느끼기 때문에 뜨개질을 배우는 대학 졸업생, 시작부터 그리 마땅치 않던 직장에서 너무나도 짧은 육아휴직 기간이 끝날 무렵 우연히 집에서 아기를 키우는 ‘애착 육아’에 대해 알게 된 여성들. 질 떨어지는 공공 의료 보험, 거지 같은 직장, 거지 같은 동네의 거지 같은 집 등으로 이어지는…. 아주 만족스럽고 보람된 직장을 찾지 못했다든가 직장일과 사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정의 시대’는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소위 보수와 복지가 매우 탄탄한, 전문직 여성들은 직업에 만족하고 커리어에 더 투자하길 원했다. 예일 대학을 나온 외과 의사도 취미 삼아 뜨개질을 할 수는 있지만, 의사 일을 그만두고 생활 규모를 줄여 수공예품을 파는 블로그나 하며 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통계일 뿐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EDITOR : 김나랑
PHOTO : Dollar Photo Club, 에밀리 맷차
참고서적 : 『하우스와이프 2.0』(미메시스+)

발행 : 2015년 55호

놀라운 건 미주 여성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이게 유행이라는 사실이다. 『하우스와이프 2.0』의 저자 에밀리 맷차는 이른바 ‘새로운 가정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일하는 엄마가 한물간 유행이 된 시대라고 말이다. 그녀가 ‘제주 효리’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보내왔다

Credit Info

2015년 06월 01호

2015년 06월 01호(총권 55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나랑
PHOTO
Dollar Photo Club, 에밀리 맷차
참고서적
『하우스와이프 2.0』(미메시스+)

2015년 06월 01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나랑
PHOTO
Dollar Photo Club, 에밀리 맷차
참고서적
『하우스와이프 2.0』(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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