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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호 EDITOR'S LETTER

On March 05, 2015

봄기운이 찰랑이는 창밖.

EDITOR IN CHIEF 안성현

봄기운이 찰랑이는 창밖.

겨우내 스웨터 아래 성실히 쌓아두었던 나의 지방들에게 안녕을 고할 시점이다. 어쩌자고 지난겨울에도 어김없이 이런 짓(?)을 한 걸까 싶다가도,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려버린다. 나이가 들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니 20대의 빛나는 몸매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물개 박수로 공감.

겨울이야말로 가족과 친구를 식탁 앞으로 불러들이기에 가장 좋은 온화함의 계절이니, 살덩이 좀 덜자고 그 훈훈한 인간애를 포기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킨포크적 에세이의 응원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무시하기 싫어진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만고의 진리를 ‘맛있게 먹음’에도 적용해야 한다니 맘이 아프긴 하지만 어쩌겠나? 이제 두꺼운 모직 팬츠와 H라인 패딩을 벗어버려야 하는 걸. 게다가 올봄엔 <그라치아> 3월호를 가득 채운 바로 그 옷들을 입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인가. 아랫배에 힘 빡 주고 시스루 셔츠에 와이드 팬츠 차려입고 싶고, 복고 데님에 플라워 패턴 블라우스도 (팬츠 안에 넣어) 입고 싶단 말이다. 상의를 하의 안에 쏙 집어넣는 날랜 행위를 꿈꾸게 되자 먹는 거 하나하나가 고민이다.

어제 나는 아침마다 꾸역꾸역 먹어왔던 고구마를 두고 시름에 빠졌다. 건강 검진을 하던 의사는 고구마보다 현미밥이 천배 낫다며, 과거 나의 헬스 트레이너가 친히 날씬 조식으로 지정했던 고구마와 달걀 샐러드에 대한 나의 맹목적 신뢰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아, 이제부터 아침밥을 지어야 하나? 가족의 건강을 위해(사실 다이어트를 위해) 경북 고령에서 공수한 우엉차 역시 나를 실의에 빠뜨렸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뿌리식물이 당뇨 치료, 면역력 강화,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남편의 당뇨와 나의 체지방 분해 그리고 아들의 면역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데, 망설일 게 무엇인가? 엑스라지 사이즈의 주전자에 뜨끈하게 우려내어 보리차 대신 마시리라! 폭풍 검색으로 대량 주문 완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형 보온병 구입. 가정(?)의 안위를 위해 성실하게 제 몫을 해냈다는 즐거움에 잠겼던 그 며칠 후, 우엉이 나를 배신했다. 아니 내가 멍청했다. 덖은 차를 샀어야 함에도 나는 출신 성분에 집착하다 생으로 말린 놈을 취하게 된 거다. 암만 물에 넣어 불려도 색(보기만 해도 구수한 진한 갈색)이 우러나지 않고 종국엔 푸르스름한 풀색이 잔에 번지기에 ‘특급 제품은 이런가’ 싶어 한 모금 마셨다가 격하게 뱉었다. 이건 그냥 풀! 봉지에서 바짝 마른 우엉을 꺼내 프라이팬에 쏟아 넣고 약한 불로 덖고 또 덖기를 수차례. 나의 무지함을 탓하며 차를 우려낼 때, 힘들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원 없이 마시리라. 그리하여 나의 지방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리라, 훌훌! 결의에 차 뜨거운 김을 후후 불어가며 갈색 물을 들이켤 때만 해도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나의 지방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뒤틀리고 대장이 요동치는 새벽을 맞이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차를 잘못 덖은 탓(그러니까 내 탓)인지, 체질의 문제(이 또한 내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겨우내 쌓인 지방을 일거에 소탕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은 사라졌다.

알토란 같은 최신 정보만 갈무리하고 체험을 통한 야무진 조언만 전하는 <그라치아> 뷰티 칼럼을 놓치지 않는 내가 왜, 왜, 왜!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이런 한탄을하고 있을 때 한 후배가 카톡을 보내왔다. “선배, 그 덕에 그 정도 몸이라도 유지하는 거 아닌가요?”

PS <그라치아>의 봄 호엔 새 옷이, 새 정보가 넘칩니다. 새 옷을 보고 결의를 다지고, 정보를 숙지해 몸매를 다지길 바랍니다. 저처럼 실패하지 말고 꼭 성공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저와 기자들의 이런저런 생활 밀착형 뷰티 생체 실험(?)은 찰진 칼럼이 되어 여러분을 찾아갈 테니, 뭐 그리 슬픈 스토리만은 아니네요.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5년 50호

봄기운이 찰랑이는 창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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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호

2015년 03월 02호(총권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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