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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화 시위 보름째. ‘우산 혁명’의 주역들이 우산을 버리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우산 대신 텐트예요

On October 24, 2014

‘우산 혁명’의 주역들이 우산을 버리고 색색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피 터지는 농성이 시작된 걸까? <그라치아>가 직접 찾아간 홍콩의 시위 현장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진행된 지 보름이 넘었다. 홍콩 행정장관의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는 무기 대신 색색의 우산을 들어 비폭력 시위를 표방해 왔다. 하지만 최루탄과 삼합회의 저지, 몇 차례의 협상 결렬로 시위는 장기화로 진입했다. 시위대는 이제 우산을 버리고 텐트를 치는 중이다. 하지만 구호도 몸싸움도 없다. 있는 것은 텐트 앞의 작은 화분, 그리고 큰 공터에 마련된 재활용 센터다. 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이곳에서 분류하고 재활용한다. 이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도다르(52세).

제네바 국적의 은퇴한 컨설턴트인 그녀에게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홍콩은 분리수거가 잘 지켜지지 않아요. 여기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마찬가지여서, 이것 때문에 환경 미화원들을 고생시킬 수 없으니 분리수거장을 만든 거죠. 먹고 남은 음식도 분리해 천연 비료로 만들어요. 이렇게 냄새 안 나는 재활용 센터 본 적 있나요?” 도로 한가운데에 천막이 길게 늘어트려진 공간은 노천 샤워실로, 시민들이 마시고 남긴 페트병 속의 물을 큰 통에 모았다가 이용한다. 환경 보호를 위해 샴푸나 비누는 쓸 수 없고, 누군가 기증한 친환경 비누로만 씻을 수 있다. 세면대 위는 시민들이 기증한 각종 샤워 물품으로 넘쳐 호텔 부럽지 않을 정도. 거리 곳곳은 예술 작품으로 도배됐다. 홍콩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수천 개의 그림과 풍자화가 홍콩의 모든 벽면을 거의 채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스팔트 바닥에도 분필로 그림과 글을 적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형물도 인기다.

◀ (위) 시위 현장 한 귀퉁이에 모두를 위한 ‘공공 도서관’이 마련됐다. (아래) 시위 현장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는 학생.

가장 핫한 아이템은 이번 시위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가죽으로 한 번 꼬아 만든 작은 목걸이. 이걸 얻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다. 현지 언론은 이번 시위가 홍콩의 예술 문화를 깨웠다고 말한다. 구석엔 작은 도서관이 있다. 텐트를 지키는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각자 자신의 책을 두고 돌려 읽는 것. 이들의 ‘나눔’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텐트 안에 까는 매트, 방충망까지 모두 시민들의 기부로 제공되고 있다. 텐트 시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부담 없이 몸만 가면 된다. 경찰 본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스탠리(18세, 학생)는 벌써 이곳에 있은 지 일주일째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어요. 우린 그저 이 자리를 지키면 돼요. 집에 있을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니까요. 시원한 물 좀 드릴까요?” 밤이 되면 대학생들은 책상을 놓고 중·고등학생들의 과제를 돕는 ‘거리 공부방’을 만든다. 곳곳에 마련된 응급 진료소에서는 의대 교수와 학생들이 처방전까지 써주는 정식 진료를 시행한다.


앳된 형제부터 18세 친구들, 50대 노부부와 평범한 직장인까지 모두 각자의 텐트에서 먹고 자며 작은 행동을 함께 실천하고 있는 것. 도다르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했다. “우린 모두 이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만났어요. 종교도 직업도 삶의 배경도 제각각이죠.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 ‘사랑’일 거예요.”

정부와 조폭 등이 수시로 찾아와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가도 시위대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반시위대가 기습적으로 농성장을 방문해 확성기를 틀고 소리치면 순식간에 시위대 수백 명이 그들을 둘러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식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유혈 사태’로 변질됐다고 보도하지만, 시위대들은 여전히 반시위대나 경찰들과 접근할 때 양팔을 높이 치켜들고 움직인다.
비폭력 무저항 원칙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뜻.

시위 보름째. 이제 시위는 일상이고 시위 현장은 하나의 도시 같다. 시민들은 퇴근 후 자연스레 시위 현장으로 모인다. 그곳에서 시위대와 함께 음식을 먹고 빔 프로젝터를 통해 영화도 보고 잠을 잔다. 텐트를 치고 나란히 앉아 있던 50대 ‘텅’ 부부는 어제 이곳에서 틀어준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다큐를 봤다고 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함께 싸우는 모습에 놀랐어요. 부럽더군요.” 어쩌면 이들이 원하는 것은 끝내 달성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위는 홍콩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홍콩 사람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연대와 해방감은 홍콩이 앞으로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될 거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EDITOR : 김소영
PHOTO : 방병훈

발행 : 2014년 41호

‘우산 혁명’의 주역들이 우산을 버리고 색색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피 터지는 농성이 시작된 걸까? <그라치아>가 직접 찾아간 홍콩의 시위 현장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Credit Info

2014년 11월 01호

2014년 11월 01호(총권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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