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오늘의 인물

웹툰 작가 무적핑크가 조선에서 데려오고 싶은 4명의 영웅.

조선 시대에서 4명의 영웅을 데려온다면?

On September 17, 2014

‘조선왕조실톡’은 무적핑크가 네이버 웹툰 연재를 끝내고 심심하던 차에 한국사 ‘덕력’을 과시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만든 페이지다. 일주일에 한두 번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내용을 ‘카톡어’로 재구성해 올리고 있다.

웹툰 작가 무적핑크 변지민
출생 : 1989년 9월 17일
학력 :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재학
작품 : <실질객관동화 1>, <실질객관동화 2>, <경운기를 탄 왕자님> 등. 최근 ‘조선왕조실톡’으로 화제

“근정전에서 임금이 휘빈 김씨의 폐위에 대해 하교하다”라고 하면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실록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듣기 쉽다. 세종의 아들 문종이 세자였던 시절, 세자빈인 휘빈은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해 문종의 신을 태워 그 가루를 먹이는 흑마술을 썼다. 이 사실을 들은 세종 대왕이 휘빈에게 말했다. “아가, 너 우리 아들한테 고무신 태운 가루 먹였니?” 그러자 휘빈이 답했다. “예, 그러면 서방님이 저를 더 좋아해 주실 것 같아서요.”
세종은 “헐, 대박! 님 아웃”이라 했고, 휘빈은 궐에서 쫓겨났다.

<명량>이 1600만을 돌파하고 사극 드라마가 최고 인기인 요즘, 실록을 재밌는 ‘카톡어’로, 심지어 소셜 메신저 서비스 창처럼 꾸민 ‘조선왕조실톡’이 SNS를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작가가 누구인가 봤더니 이름이 무려 ‘무적핑크’. 동명의 닉네임으로 23살에 <실질객관동화>를 네이버 웹툰에 올리며 데뷔. ‘동심 파괴녀’란 별명과 함께, 정다정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연소 데뷔 작가’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던 그녀는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5학년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 빠순이’였던 그녀는 미남 천재로 유명한 ‘정조 옵하’(오타 아님)를 그리도 좋아했고, ‘순신 옵하’와도 홀로 외로이 썸을 탔던 사이란다. 그런 그녀가 이 시대가 원하는 영웅 네 명을 꼽았다.

대통령
이름 정조(1752~1800)
당시 직업 왕, 시인(조선 왕 중 유일하게 자작 시문집 발표)

세종이 아니라 정조를 선택했네요?

둘 다 일을 참 많이 시키는 스타일이죠. 다만 세종은 일을 시키기만 하고, 정조는 ‘바보 똥 멍청이들’이라고 부하들에게 욕하다가 결국 자기가 뛰어들어 다 해버리는 타입이었어요. 어차피 죽을 만큼 일해야 한다면 역시 자기도 열심히 하는 상사가 낫지 않겠어요?

정조가 그렇게 천재라면서요?
정조는 어려서부터 암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서워서 밤에 잠을 못 자고 책을 봤대요. 5살 때 이미 한글을 쓸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다죠.

잘난 척이 심했다면서요?
원래 ‘경연’이라는 건 나이든 신하들이 어린 왕에게 지적질을 하는 자리였는데, 정조는 공부를 하도 많이 해서 오히려 노옹들의 등을 때려가며 가르쳤대요.


잘생기기도 했다고요.
키도 굉장히 크고 풍채도 좋았다고 해요. 전 고등학교 때 정조에게 반해서 친구들이랑 정조 팬클럽도 만들었어요.

욕쟁이로도 유명하잖아요.
실록에 보면 상소에 답하는 내용이 있는데, ‘너희 같은 황적한(미친) 놈들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등등 말만 들으면 엄청난 폭군에 전형적인 마초맨이죠.

정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명량>에 나오는 선조만 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신하 탓을 하느라 바빴죠. 그런데 정조는 ‘과인 탓이오’라고 말하는 왕이에요. 게다가 인사에 능했죠. 본인이 천재니까 ‘내가 고른 사람은 천재다’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장영실, 정약용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었죠. 김홍도를 일본에 보내서 자신의 눈처럼 썼다는 얘기도 있어요. 일본을 그려 오게 한 거죠.

국방부 장관
이름 이순신(1545~1598)
당시 직업 군인(지금으로 따지면 해군 제3함대 사령관)

이순신 하면 역시 ‘충’이죠?

의외로 이순신은 선조한테 잘 ‘개기는’ 신하였어요. 백의종군 후에 선조가 싸우라고 전령을 보냈는데 ‘승산 없는 싸움입니다’라고 거부해서 고문을 받았던 사건은 유명하죠. 자기가 합리적으로 생각한 거랑 왕의 결정이 다르면 절대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고전적인 의미의 ‘충’과는 조금 다르죠.

시스템의 탓 아닌가요?
그렇죠. 말 타고 쪽지 하나 전달하는 데 하루 이틀이 걸리던 시절이니, 왜구가 쳐들어오거나 어디서 누가 거병을 해도 왕이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죠. 실록에도 보면 ‘왜구가 쳐들어왔어요’라고 상소가 들어갔는데 장관 이상급인 당상관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 나오거든요. 이순신은 그런 시스템하에서라면 자기가 더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힘든 관직 생활을 했죠.
선조와 원균 콤비의 견제 때문이었어요. 당시 이순신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엄청났어요. 그런데 선조는 샘도 많고 걱정도 많아 ‘혹시 이순신이 다른 마음을 먹고 자기를 치지 않을까’ 싶어 못마땅하게 여겼던 거죠. 그 반대 급부로 자기한테 살갑게 구는 원균을 계속 밀어준 거고요. 이순신도 뭐 참는 성격이 아니어서 원균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고 해요. 원균이 선배인데도 ‘일은 안 하고 여자나 만나러 다닌다’며 욕했죠. 그럼에도 결국 어려울 때 선조가 “순신아, 지난번에 고문한 거 정말 미안해. 이번에 좀 어려우니까 한 번만 눈 딱 감고 싸워주라”라며 자신을 찾게 만들었어요. 모든 걸 물리치고 실력으로 살아남은 케이스죠.

가장 멋있는 장면은 뭔가요?
역시 하나를 꼽으라면 명량 해전이죠. 산술적으로만 보면 너무 마법 같은 전투였어요. 영화에선 표현이 안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2척의 기함 뒤에 백성들의 피난선 100여 척이 섰다고 해요.

이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요?
이순신을 두고 ‘쉽게 이길 싸움’만 했던 장수라고 말하는 비판이 있어요. 질 싸움은 아예 하지를 않아서 비겁하다는 거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길 싸움인지 질 싸움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명장 아닐까요? 반대로 얘기하면 이순신이랑 싸웠던 일본 장수들도 다 이길 싸움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결국 졌단 말이죠. 국방부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승패에 대한 감각 아니겠어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이름 정약용(1762~1836)
당시 직업 좌부승지(지금의 청와대 비서실 소속), 역사학자, 사회학자, 의학자 등등

정도전이 문과 천재라면 정약용은 이과 천재죠.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정약용을 보통 거중기를 만든 사람 또는 의학자로 생각하는데, 한창 밀어주던 정조가 죽고 나자 날개를 잃고 유배를 가서 18년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썼어요. 그 책 안에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같은 사회학과 경제학 서적들도 많아요. 문과 이과를 넘나든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 수 있죠. 당시에는 성리학 말고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건 천한 일이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의학이나 응용 과학은 양민이나 배우는 거였죠. 그런데 재상까지 올랐던 양반이 유배지에서 실학에 몸을 던져 의학, 행정학, 사회학 서적을 쏟아냈으니 존경스럽죠.

정약용도 약점이 있었다면서요?
이걸 약점이라 하기엔 좀 그런데, 정약용이 전형적인 ‘내신은 엄청 좋은데 수능에 약한 타입’이었나 봐요. 머리가 엄청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른 가까이 돼서야 대과에 패스했죠. 물론 그 나이에 합격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천재라고 하기엔 좀 늦은 편이었죠.

정약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뭔가요?
정약용은 아이패드 같은 존재였어요. 의학 앱을 깔면 의학을 하고, 기계공학 앱을 깔면 거중기를 만들고, 사회학 앱을 깔면 『목민심서』를 쓰고. 그렇게 따지면 정조는 딱 스티브 잡스네요. 정약용한테 앱을 깔아준 게 정조니까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적당한 이유는 뭔가요?
우리 시대에는 뭔가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런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그냥 취미로 백성들의 실생활에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썼죠. 아무 대가도 없이 말이에요. 그 저서들이 조선의 미래를 바꾸었죠. 지금 당장 보상받지 않아도 찾고 싶은 걸 찾아서 집중하는 자세는 개인적으로 본받아야 하겠고, 그런 미덕을 알고 있는 정약용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되면 물리학이나 인문과학 등의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국무총리
이름 정도전(1342~1398)
당시 직업 성균관 대사성(지금의 서울대 총장)

정도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스타트 업 회사의 사장님이죠. 조선 500년의 기초를 세운 어마어마한 기획력과 그걸 이뤄내는 추진력은 정말 엄청나요.

사료를 찾아보면 정도전에 대해 좋은 말이 별로 없죠?
실록에는 패악질이 심했고 정적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죠. 자기 스승인 이색도 정적이 되자 섬으로 등 떠미는 걸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없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실록은 후대에 편찬되기에, 정도전에 대한 내용을 편찬한 왕이 정도전을 죽인 태종 이방원임을 염두에 둬야죠. 이방원이 같은 말이라도 곱게 썼을 리가 없잖아요.

정도전의 가장 큰 업적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고려 말기에는 왕도 제정신이 아니고, 나라 전체가 병든 상태였죠. 특히 종교로 인한 병폐가 심했어요. 고려는 불교 국가였는데, 스님들이 공관에 멋대로 머물고 백성들에게 자신이 왕사라며 돈 뺏고, 그 돈으로 고리대금을 그렇게 심하게 했대요. 정도전이 야인 시절에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거죠. 성리학이 조선 시대에 변질되긴 했지만 정도전이 당시에 외친 성리학은 한마디로 ‘부처가 다 뭐기에 백성 위에 있느냐?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지나친 이상주의자였다는 생각은 안 하나요?
귀족들의 토지까지 싹 몰수해서 백성들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한다는 ‘계민수전’을 주장한 걸 보면 철없이 이상적이긴 했죠.
하지만 정도전 같은 사람이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좀 맞는 거 아닌가요?

실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요?
조선을 건국하고 첫 연회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이 ‘형님, 아우’ 하며 술잔을 나누던 게 실록에 그대로 실려 있어요.
드라마에서는 곱사춤을 추며 창을 하는 걸로 나왔죠.

정도전이 국무총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요?
지금 정치계에는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자도, 다른 사람이 그린 큰 그림을 밀어붙일 만한 수완가도 없는 것 같아요. 정도전은 큰 그림을 그릴 줄도 알고, 심지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 그림을 완성하는 사람이었어요. 착해 빠져서는 도저히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정치인들이 대의를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얼굴 마담을 하는 사이에 물밑 작업을 하는 섀도 스트라이커의 역할, 정도전에게 제일 잘 어울려요.

EDITOR : 박세회
PHOTO : 김영훈
HAIR : 설희(바이라)
MAKEUP : 배진화(바이라)

발행 : 2014년 38호

‘조선왕조실톡’은 무적핑크가 네이버 웹툰 연재를 끝내고 심심하던 차에 한국사 ‘덕력’을 과시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만든 페이지다. 일주일에 한두 번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내용을 ‘카톡어’로 재구성해 올리고 있다.

Credit Info

2014년 09월 02호

2014년 09월 02호(총권 38호)

이달의 목차
EDITOR
박세회
PHOTO
김영훈
HAIR
설희(바이라)
MAKEUP
배진화(바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