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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코 3’ 우승자

무직 최광호 선생, 7번의 터닝 포인트

On September 17, 2014

퇴로를 끊고 죽자 살자 매달려야 한다. <마셰코 3> 우승자 최광호가 사는 법.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업이 없었나? 그래서 그의 별명은 ‘무직 최광호 선생’이다.

고재키의 입담이 기사에 오르내리고, 전봉현의 잘생긴 얼굴이 회자되고, 국가비의 6개 국어 구사설이 떠돌았지만, 막상 우승자인 최광호에겐 무심했다. 초반에 심사 위원에게 욕만 먹으며 ‘실력 없는 애’라는 딱지를 달아서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최광호’(29세, 무직)라는 캡션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쟨 뭔데 저렇게 당당하게 무직이야?’ 현직 전업주부 홍다현은 캡션에 ‘27세, 미스코리아’라고 나오는데 왜 쟤만 당당하게 ‘무직’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업이 없었나? 그래서 그의 별명은 ‘무직 최광호 선생’이다.

그러나 그것뿐.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개인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어디서 요리 공부를 했는지, 어떻게 요리를 시작했는지, <마스터셰프 코리아 3>(이하 <마셰코 3>)에는 왜 나오게 됐는지, 전공이 뭔지 아무리 찾아봐도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그야말로 쌀 한 톨 정도. 결승전에서 남들 다 하는 양식 하나 내놓지 않고 ‘오리 삼첩반상’으로 뚝심 있게 <마셰코 3>의 우승을 차지한 최광호에 대해 묻고 싶은 말이 차고도 넘쳤다. 그래서 물었다. “대체 지금까지 뭐 하던 사람인가요?”

20세 공돌이가 되다
원래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조리학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우연찮게 공돌이가 됐어요. 보기보단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거든요.
웬만한 과로 ‘인 서울’은 가능했을 정도? 게다가 수능에서 특히 ‘대박’을 쳤죠. 드디어 꿈이었던 경희대학교 조리과학과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내가 어느 대학을 갔으면 좋겠는지 두 분도 원서 한 장씩 써보라고 했어요. 엄마는 교사 되라며 사대를 썼고, 아빠는 ‘전파공학과’를 썼더군요. 경희대가 ‘안전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유를 좀 부린 건데, 아뿔싸! 조리과학과를 떨어진 거예요. 아찔했죠. 그렇게 전파공학도가 되었어요. 1학기 때 학사 경고 맞고 정신 차려 2학기 때 겨우 2.0점을 넘겼으니 그야말로 학점 쓰레기였죠. 요리에 대한 꿈을 못 버리고 방학 때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는 했지만요.

21세 군대에서 요리를 배우다
제게는 군대에서 요리를 했던 경험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어요. 취사병으로 지원을 했는데, 군대 취사병은 대부분 삽으로 밥을 푸고 멸치볶음 300인분씩 만들어서 물통에 담아 날라야 해요.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식재 관리를 하며 가끔씩 차출돼서 ‘진짜 요리’를 할 수 있는 보직을 받게 됐어요. 행사가 있으면 케이터링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때가 되면 간부들 차례 상을 준비해 주는 이상한 역할이었죠. 대신 저도 배짱을 부렸어요. ‘차례 상을 차려줄 테니 상점을 달라’는 식으로 배짱을 튕기며 점수를 쌓아서 휴가도 많이 나왔죠. 병장 때는 특히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어요. 대대장님이 ‘네가 애들 다섯 명 데리고 요리 대회에 좀 나가야겠다’고 해서, 공군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 케이터링 부문과 세팅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죠. 이때 처음으로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23세 학교가 아니라 주방으로 직진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아무래도 복학을 하지 말고 주방에서 일을 좀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때 마침 신입생 시절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사장님이 ‘와인바’를 낸다며 저한테 주방을 통째로 맡아 보겠냐고 물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가 성격이 엄청 까칠했어요. 아무리 사장이라도 설거지를 할 때 손을 바지에 비빈다든지 하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는데 왜 자꾸 그러시죠?’라며 화를 벌컥 낼 정도였으니까요. 먼지 알레르기가 심해서 결벽증 증세가 좀 있었다고 할까요? 아마 그런 철저한 면을 좋게 봤나 봐요.

사장님과 친하긴 했지만 24살짜리한테 식자재 관리부터 조리는 물론, 메뉴 선정까지 맡기긴 쉽지 않죠. 과장 좀 하면 갑자기 헤드 셰프가 된 거니까요. 처음으로 내가 만든 요리를 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간단한 파스타 주문이 들어왔는데 빈 접시가 돌아왔어요. 소스까지 빵으로 싹싹 긁어먹은 그 접시를 보면서 ‘내가 만든 음식을 이렇게 돈을 내고 싹싹 다 먹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감동이 엄청났어요. 셰프의 기쁨을 알아버린 거죠.



24세 유학을 결심하다
<마셰코 3>에서 다른 지원자들은 계속 요리 학교 출신인 게 드러나는데, 제 경우에는 거의 안 물어보더군요. 게다가 계속 ‘무직’이라고 표기되니까 제가 무슨 학교도 안 나온 놈인 줄 아는 분이 있던데, 저도 엄연한 요리 학교 나온 놈이에요. 원래 모든 프로페셔널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죠. 계속 요리를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나름 행복하긴 한데, 어느 순간 ‘이대로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간단한 것, 예를 들면 제대로 된 수란 하나를 만드는 것도 조리에 대한 팁을 모르면 못하거든요. 그때 어머니가 말했죠. “나가라, 무조건 나가서 공부해라.” <마셰코 3> 시청자들이 또 오해하는 게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고 유학도 혼자 힘으로 다녀온 줄 아는데, 사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하겠다고만 하면 금전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최대한 지원해 주는 분들이에요. 결국 부모님께 큰 빚을 지고 유학을 떠났죠.

26세 자퇴 후 호주 요리 수행
한 번 결심하면 퇴로를 끊는 스타일이에요. 1학년까지 다닌 대학도 자퇴를 하고 적을 팠어요. 돌아갈 곳이 있으면 나태해지잖아요. 그렇게 2년 반의 유학 생활을 시작했어요. 제가 선택한 곳은 호주의 ‘윌리엄 블루’라고, 나름 호주에서는 유명한 칼리지(전문대학)예요. 어학도 달리는 데다 ‘조리 경영학’이라는 생소한 과정도 힘들어서, 농담 좀 보태면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 싶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어요. 마지막 한 학기는 6개월 동안 레스토랑에 유급으로 취직해서 인턴 과정을 거치는데, 그때 있었던 레스토랑이 기억에 남아요.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지구의 배꼽이라는 ‘울루루’ 근처 리조트에 취직했는데, 오전 4시부터 정오까지 8시간 근무였어요. TV도 없고, 인터넷도 잘 안 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하루 16시간의 외로운 자유 시간 동안 심신 수행을 한 거죠. 그때 요리 연습도 많이 하고, 좀 덜 까다로운 성격으로 변하기도 했어요.

27세 학위가 발목을 잡다
광활한 사막에서의 면벽 수행에 지쳐 호주를 박차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처음엔 CJ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제 학위로는 아예 입사 지원도 못하는 상태더군요. ‘윌리엄 블루’라는 대학의 학위가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문 학사와 학사의 중간 정도인데,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학사 이상만 지원이 가능하거든요. 말 그대로 ‘멘붕’이었죠. 편입해도 2년을 고스란히 날려야 학사 학위를 딸 수 있으니, 당장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한두 달 동안 너무 우울해서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더군요. 그때 <마셰코 2>에 지원했다가 ‘시그너처 디시’를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인터뷰에서 떨어졌어요.
면접 때는 강레오 셰프님이 아예 절 쳐다보지도 않았죠. 그만큼 제가 빛나지 않았나 봐요.

28세 무직 최광호가 되다
제가 계속 무직이었던 건 아니에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 기업에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로 들어가서 5개월 만에 정직원도 달았죠. 당연히 <마셰코 3>에도 지원을 했는데, 그 전과는 약간 마음가짐이 다르더군요. 이미 주방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나서도 ‘제가 그 시간에 가기 힘드니 바꿔달라’고 배짱 좋게 면접을 미뤘어요. 다행히 제작진에서 다른 날을 잡아줬죠.
그리고 운 좋게 <마셰코 3>의 최종 14명 안에 포함됐고, 합숙에 들어가며 힘들게 얻은 정직원을 그만뒀어요. 아까 말했듯이 다시 한 번 퇴로를 끊은 거죠.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초반에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어요. 이세찬 형은 연구원으로 계속 다니고 있었고, 정유석 형도 헬스 강사를 완전히 그만둔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객관적으로 ‘무직’인 건 저 하나뿐이었죠.
그렇게 ‘무직 최광호’가 됐어요. 사실 지금도 무직이랍니다.


● 최광호가 사랑하는 식자재
오리
<마셰코 3>의 첫 재료도 오리였고, 마지막 결승에서도 오리를 사용했어요. 오리엔 추억이 있는데, 할머니가 지병 때문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못 드세요. 그래서 할머니 댁에 가면 쇠고기와 오리고기로 요리를 많이 해주셨죠. 오리의 모든 맛을 할머니에게 배운 셈이에요. 오리 요리는 센 불에 짧게 익히든지 약한 불에 아주 오래 익혀야 해요. 어중간하게 익히면 질기고 맛없죠.
외국에선 ‘미디엄 레어’로 강하고 짧게 익혀 먹는 게 대세예요.

문어
준준결승에서 문어 때문에 떨어질 뻔했죠. 그날 문어를 처음 잡아봤거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요리가 나왔고, 제 자신에게 실망도 많이 했어요. 그 뒤로 ‘문어 이놈’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조리를 해봤죠. 문어를 맛있게 익히려면 때려야 한다더군요.
분노를 담아서 마구 치대고 미친 듯이 팼더니, 아주 연한 문어 육질을 얻을 수 있었죠.

안심
지금 한 레스토랑에는 ‘최광호의 안심 스테이크’가 메뉴로 올라가 있어요. 자랑스러운 식자재죠. 안심은 다루기 좀 힘들어요. 스테이크는 거의 7cm에 가까운 두께로 조리하니까 팬으로만 구워선 안 되고 오븐에서 마무리해 줘야 하죠. 가장 주의할 점은 마지막에 레스팅을 해줘야 한다는 것. 막 구워낸 안심은 육즙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상태거든요. 이때 칼질을 하면 한 번에 육즙이 다 빠져서 맛이 없어져요. 3~5분 정도 상온에서 식혀줘야 육즙이 고르게 단백질 사이로 스며들어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답니다.

EDITOR : 박세회
PHOTO : 김영훈
HAIR : 나란(바이라)
MAKEUP : 하나(바이라)
STYLIST : 김예진

발행 : 2014년 38호

퇴로를 끊고 죽자 살자 매달려야 한다. <마셰코 3> 우승자 최광호가 사는 법.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업이 없었나? 그래서 그의 별명은 ‘무직 최광호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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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2호

2014년 09월 02호(총권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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