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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이 6개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소설가를 조심하세요

On April 04, 2014

입고 온 캔버스 단화에 청바지 차림도 좋았지만 하얀색 투피스로 갈아입고 화장을 조금 고치자 이내 『새의 선물』 주인공 12살 진희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신작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소설가 은희경 말이다.

이곳저곳 끌려 다니며 사진 찍느라 피곤하죠?
포즈가 너무 가식적이진 않았나요? ‘이게 마지막이겠지’라는 마음으로 포즈를 잡았어요.

다행히 옷도 잘 어울리고 사진도 좋아요. 그나저나 이번 소설집,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등장인물이 다들 고독한데, 그 ‘고독’이 그다지 서늘하거나 궁상맞지 않아서 좋았어요.
저 원래 따뜻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소설을 쓸 때는 왜 그런지 몰라도 좀 서늘해지곤 하죠. 이 소설에선 고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고독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거나 슬프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에요. 고독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예요. ‘모두가 고독하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어요.

‘넌 고독하지 않다’는 거짓말보단 훨씬 따뜻하네요. 구성도 좀 특이해요.
지금까지 저로선 안 해본 구성이에요. 따로 읽어도 좋고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로 읽혀도 좋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눈송이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바람에 날리다 만나기도 하는 그런 소설이죠. 똑 부러지게 나눠보자면 사실 꽤나 비슷한 두 가정을 다룬 여섯 개의 이야기죠.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제목이 그 형식과 주제에서 나온 거였군요.
다 읽고 나면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한 단어도 뺄 수 없는 제목이에요. 6개의 이야기는 굉장히 닮았어요. 그런데 살펴보면 또 유일한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마치 눈송이의 결정체처럼 매우 닮아야 하고 그렇지만 단 하나여야 하니 그런 제목이 나온 거죠.

페이스북에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질문을 받았더니 소재를 어떻게 찾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이 올라왔어요.
제 소설의 디테일한 소재는 거의 전부 제 체험에서 나와요. 예를 들면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뜨개질을 하는데 작년에 제가 뜨개질을 해봤거든요. 그런 식이죠.

◀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6개의 단편소설로 묶인 소설집으로, 화자와 주인공이 바뀌긴 하지만 등장인물이 중첩되며 하나의 느슨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뜨개질이 꽤나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죠.
뜨개질이 사람 사귀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실밖에 없는데 엮이고 이어지면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서툰 사람들끼리 만나면 말끔한 관계를 맺기 힘들 듯이 서툰 뜨개질 솜씨로는 예쁜 걸 못 뜬다는 점도 비슷하죠. 너무 힘을 주면 울고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면 성글어진다는 점은 마치 연인 사이의 ‘밀당’ 같기도 하고요. 아주 단순하게 실을 엮는 행위일 뿐인데도 그 안에 인생에 대한 서사가 담겨 있더라고요.

뜨개질의 철학인가요?
뜨개질을 잘했으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웃음).
제가 아는 작가들은 저를 포함해 대부분 뭘 해도 서툴러요. 길을 못 찾는다든지 사무 업무를 전혀 못한다든지 말이죠. 잘 못하다 보면 생각을 하게 돼요. ‘대체 내가 이걸 왜 못하나 생각이나 한 번 해보자.’ 그러면서 나름의 생각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게 이야기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하겠군요.
그렇긴 한데, 중요한 건 ‘뜨개질에 관한 소설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뜨개질을 배우면 안 된다는 점이에요. 소재를 찾는 게 취재가 되면 어떤 걸 찾아야 할지를 염두에 두게 되어서 새로운 걸 찾아내기가 힘들어요. 언젠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 술술 생각나 주기를 바라며 일단 봐두고 겪어두는 거죠.

이번 소설에도 일상이 녹아 있나요?
그럼요. 특히나 시공간은 더욱 그렇죠. ‘프랑스어 초급 과정’에 등장하는 신도시는 처음 신혼 때 살았던 과천시고,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배경이 되는 공간도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있었던 곳이죠. 심지어 그 소설에 등장하는 8인용 접이식 식탁은 제가 미국에 도착한 그날에 샀던 바로 그 식탁이고, 지금도 쓰고 있어요.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고창, 전주, 과천, 일산 등 전부 제가 살았던 곳과 익숙한 곳을 배경으로 하죠. 1995년에 데뷔하고부터는 계속 일산에 살았는데, 그 이후의 소설들에 신도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죠(웃음).

너무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쓰면 ‘악역’으로 등장한 사람들이 불평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소설가의 눈에 띄면 안 돼요. 나중에 어떻게 등장할지 모르니까(웃음). 좋은 역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나쁜 역으로 나오기도 하니까요.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도 딱 한 명 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정착을 도와준 친구예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에 나오는 카타 아줌마가 먼 친척인 주인공의 정착을 도와주며 등쳐 먹는 역할로 나오는데 제 친구는 저를 정말 성심껏 도와줬거든요. 나중에 그 친구가 이 소설을 읽고 나한테 ‘내가 언제 너한테 그랬니. 내가 그렇게 잘해 줬는데’라고 할까 봐 겁나요.

악역이 나올 때마다 마음 졸여야겠네요.
미안한 사람 많죠. ‘그녀의 세 번째 남자’라는 소설을 절에서 썼는데 묵던 방 옆에 목수 아저씨가 한 명 있었어요. 재밌게 가족처럼 잘 지냈죠. 나중에 소설을 쓰다 보니 어떤 여자가 심란한 마음에 절에 갔다가 본인과는 달리 육체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목수와 관계를 맺으며 흔들리는 장면을 쓰게 됐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기도 ‘우적우적’ 먹는 사람으로 굉장히 무식하게 그렸어요.
그러고 나니 그 목수 아저씨가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아저씨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기라고 생각할까 봐 겁났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에디터가 등장해서 악역을 맡더라도 ‘혹시 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웃음).

소설 속에 온통 가족들이 나오는데 그것도 조심스럽지 않나요?
소설가는 어쩔 수 없나 봐요. ‘한 아이가 엄마가 밤마다 어딘가를 가는데 알고 보니 어려운 살림 때문에 몸을 파는 거였다’라는 내용의 오정희 선생님 소설이 있어요. 그걸 보고 선생님 어머니께서 ‘야,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몸을 팔진 않았다’라고 나중에 한 소리 했대요. 저도 시댁 눈치 보고 그래요. 만만한 게 남편이라고 제 소설에 기자가 나쁜 놈으로 많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남편이 기자 출신이니까 읽는 사람들이 ‘제 남편이겠거니’라고 생각하겠죠.

아예 이 이야기를 소재로 써도 재밌겠어요.
이미 있어요. 신경숙 씨의 ‘모여 있는 불빛’이라는 소설에도 나와요. 주인공이 고모 이야기를 썼는데 고모가 ‘왜 나를 이렇게 썼느냐’라고 따지며 소동이 벌어지는 내용이죠. 남한테 들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고요.

글은 주로 어디에서 쓰나요?
한때는 집 밖 멀리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잘 못 썼어요. 눈치 볼 사람이 없는 곳, 내가 나일 필요가 없는 곳을 찾아서 떠나는 거죠.

낯선 곳을 찾는군요.
‘낯선 곳’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들어 있죠. 근대까지만 해도 떠도는 사람, 고향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으로 그려지곤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뿌리 없음’은 오히려 ‘자유’ 아닌가요? 화분을 옮기듯, 지금 세대의 삶은 어디를 가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글 쓰는 공간을 정하는 조건이 있나요?
특별히 따지는 건 별로 없어요. 다만 저를 의식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힘들죠. 가끔 집에 빈방 많으니 와서 작업하라고 권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여요.

술을 즐긴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란 첫딸이어서 어디를 가든, 뭘 하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대학 때까지도 술을 거의 안 마셨어요. 술을 즐기게 된 건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였는데 필름이 끊긴 적도 여러 번 있죠.
술에 취해서 내가 했던 행동이 나답지 않아서 좋았어요. 특히 필름이 끊기고 나면 다음 날 친구들에게 ‘내가 뭐 했어’라고 물어보며 기억을 이어붙이는 게 재밌었죠. 남편을 만날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도 술 때문이에요. 술에 취해 헤어진 옛 연인에게 할 얘기를 지금 남편에게 늘어놓는 실수를 했는데, 별다른 말없이 넘어가더군요. 그때 ‘이 남자 괜찮다’라고 생각했죠.

잠이 안 올 때는 싱글몰트를 마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술을 좋아하나요?
싱글몰트는 한 병을 다 마시고 다른 보틀을 따는 게 아니라 두세 병쯤 따 놓고 그때그때 마시고 싶은 걸 마시는데, 라프로익과 발베니를 좋아해요. 가끔 라프로익처럼 향이 아주 강한 게 당기더군요. 대부분 잠이 안 올 때는 싱글몰트, 친구들과는 맥주, 혼자 마실 때는 와인을 즐겨요.

지금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군가요?
남편이죠. 남편은 정말 제 가장 후진 모습까지 본 사람이니까. 내가 부탁도 할 수 있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에요. 물론 아이들도 있죠.

예전에는 소지섭을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요즘 맘에 드는 연예인이 있나요?
정우성과 소지섭을 좋아하죠. 지금도 소지섭이 좋아요. 음악 쪽으로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밴드 ‘못’, 요새는 ‘김일두’와 ‘9와 숫자들’이 좋아요.

EDITOR : 박세회
PHOTO : 김보성
STYLE EDITOR : 김민정
HAIR & MAKEUP : 장해인
FASHION COOPERATION : 자라, 미네타니
PLACE : Assouline Lounge

발행 : 2014년 28호

입고 온 캔버스 단화에 청바지 차림도 좋았지만 하얀색 투피스로 갈아입고 화장을 조금 고치자 이내 『새의 선물』 주인공 12살 진희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신작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소설가 은희경 말이다.

Credit Info

2014년 04월 02호

2014년 04월 02호(총권 28호)

이달의 목차
EDITOR
박세회
PHOTO
김보성
STYLE EDITOR
김민정
HAIR & MAKEUP
장해인
FASHION COOPERATION
자라, 미네타니
PLACE
Assouline Lou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