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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호 EDITOR'S LETTER

On January 16, 2014

이때가 참 애매하다.

EDITOR IN CHIEF 안성현




이때가 참 애매하다.
머플러로 귀를 휘감고 남의 털로 몸을 싸매고 다니는 요즘. 입 열기가 무섭게 허연 김이 오는 요즘. 추운 거 무서워서 창문도 못 열고 자꾸 배달 전문점 전화번호만 뒤지게 되는 요즘. 그런데 그 와중에 꽃무늬와 비비드 컬러의 봄, 어쩌구 하는 기사를 만들긴 해야 하는 2월호 제작 중의 요즘. 매해 이맘때가 참 애매하다. 몸하고 마음하고 따로 놀다 못해 유체이탈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까지 정신줄을 놓진 않았다(고 믿고 싶다).
이문열이 쓴 ‘레테의 연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잡지 기자인 여주인공이 데스크에게 머리털 다 빠지도록 혼나는 장면. 인터뷰이에게 반소매 셔츠를 입혀 사진을 찍은 거다. 그 기사가 실리는 건 가을 호인데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과 내가 만들어 내는 지금과의 시차. 그 간극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살기 힘들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엔 가을과 봄을 동시에 살거나 봄과 여름을 동시에 살아야하는 이중생활의 절정. 단언컨대, 이건 양다리 연애보다 힘들 거다. 나는 지금 그 절정기다. 날짜를 자꾸 착각한다. 지난 월요일에는 아들 유치원 등록일을 까먹었다. 아시겠지만 꼬맹이들 유치원 보내는 게 꽤 어렵다. 4:1 이상의 경쟁을 뚫고 추첨을 해야 하고 당첨됐다하더라도 정확한 시간에 돈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경쟁을 물리치고 노란 공(당첨은 노란 공, 탈락은 흰 공이었다)을 뽑아놓고도 등록일을 까먹어 자동 입학취소가 된 거다. 으으, 울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유치원으로 달려가 사정하고 대기 번호 다시 받고 생난리 블루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바로 그때! 도착한 문자 한 통. ‘어디쯤?’ 아악! 곧이어 도착한 또 한 통의 문자. ‘다들 모였는데, 왜 안 와?’ 아아아악! 그렇다. 이번엔 사장님 주제의 간부회의 발표를 잊은 거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머리카락이 0.1초 만에 하얗게 변했다고 느꼈다. 아마 그때 거울을 봤다면 수분을 쪽 걷어낸 백발마녀 같았을 거다.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2월호 만들다 집에 들어간 시간이 아마 밤 열한 시쯤. 남편이 물었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왜?” “모레가 당신 생일이잖아.” “아아, 그렇구나...” 그때 등골 상부 네 번째 경추가 떨리기 시작했다. 찌릿찌릿. 뭔가 모골이 송연한 게.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랬다. 1월엔 시어머니 제사가 있고 그날은 바로 내 생일 전날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그..그렇다면 바로 바로 몇 시간 후!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갔다(그때의 스타팅 반응 속도는 칼루이스보다 나았을 수도). 그 시간에 문 연 마트, 정육점 뒤지고. 고기를 사고 과일을 사고. 그야말로 지지고 볶고. “나 왜 이럴까요? 나만 그런 거 아니라고 누가 좀 말해줘요. 봄 호를 만들고 있어서 일월 스케줄을 통째로 까먹은 거라고,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좀 말해줘요.”

p.s
워킹 우먼 ‘사생활 치매’ 방지 지침서를 내볼까 생각중입니다만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이러니저러니 좌충우돌해도 2월 첫 호를 보고 있으려니 심히 흐뭇하네요. 봄기운이 살살 풍기는 게 말이죠. 김수현, 여진구, 박서준, 정준일...꽃미남들이 만개해서 그런 걸까요?

EDITOR IN CHIEF : 안성현

발행 : 2014년 23호

이때가 참 애매하다.

Credit Info

2014년 02월 01호

2014년 02월 01호(총권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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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