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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말하는 '우리의 시간을 훔쳐가는 것들'.

시간 도둑

On October 30, 2013

<b>Insight, Outsight</b><BR>소설가 김영하가 예민한 촉수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조금 이상한 현실’을 포착한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내가 어렸을 때는 시간이 한 달 단위로 흘렀다.
<보물섬>이라는 만화 잡지가 창간된 후부터 그랬다.
한 달 내내 그 잡지가 집으로 배달되기를 기다렸다. 우편집배원이 두툼한 잡지를 건네주면 방에 틀어박혀 단숨에 읽어 치우고는 또 한 달을 기다렸다. 인터넷은 커녕 TV 신호도 잘 안 잡히는 시골에서는 잡지가 구원이었다. 시간은 무한정으로 남아도는 것이어서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사방에서 볼 것이 쏟아진다. 텔레비전을 켜면 VOD 서비스로 놓친 영화를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볼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트북을 펼치면 그것도 또 한 세계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맹렬히 내 시간을 노리는 것투성이다.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 시간 카드’는 시간이 거래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세계에서 시간은 배급제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된다(여기까지는 우리와 같다). 그런데 자기에게 부여된 시간이 필요 없는 사람(혹은 시간보다 돈이 더 절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팔 수가 있다. 부자들은 돈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월급 받아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벅차고 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부자에게 팔아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 결과 부자의 달력에는 9월 33일, 4월 38일 같은 날짜들이 덤으로 주어진다. 돈을 주고 산 시간에 그들은 골프도 치고 여행도 가고 마음껏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자의 달력은 4월이 25일로 끝난다든가 5월은 27일까지밖에 없다든가 하게 된다.

즉, 5월 27일에 잠든 가난한 사람은 6월 1일 아침에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든 빈자든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다만 그 가격이 다르다. 부자의 시간은 비싸고 빈자의 시간은 싸다. 평균 소득을 시간으로 나누면 이건희의 시간당 소득은 평범한 샐러리맨 김 대리의 연간 소득보다 많을 것이다. 하루에 1천만원을 버는 성형외과 의사에게는 하루의 휴식이 1천만원짜리가 된다. 반면 하루에 10만원을 버는 노동자에게 하루의 결근은 10만원짜리가 된다. 그래서 고소득자 중에 워커홀릭이 많다고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을 대중화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시간 도둑이 TV였다면 21세기는 단연 스마트폰이다.
2년 반의 뉴욕 체류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지하철 내부의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무가지라도 보고 있던 시민들이 이제는 모두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인 함민복은 그런 모습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함민복,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중) 맨해튼의 뉴요커들은 여전히 지하철에서 책과 신문을 읽고 있었기에 체감하는 변화는 더 컸다. 그런데 뉴요커들이 책과 종이 신문을 읽는 이유는 그들이 책을 사랑하는 선진 시민이어서가 아니라 맨해튼의 지하철에선 휴대폰이 거의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LTE나 3G 같은 네트워크는 고사하고 통화도 안 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뉴요커들도 지하철이 지상 구간으로 올라가는 순간,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마르셀 에메의 소설에서는 부자가 빈자에게 직접 시간을 산다. 이런 시스템은 차라리 축복일지도 모른다. 하루에 1천만원을 버는 성형외과 의사가 하루에 1만원을 버는 알바생에게 하루를 산다면 최소한 1만원 이상의 돈은 치를 테니까. 잘하면 꽤 많은 돈을 받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좀 더 엄혹하다. 우리의 시간은 애플과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이 공짜로 빼앗아간다.
게다가 돈도 우리가 낸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창을 통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가 침투해 또 우리의 시간을 빼앗고, 메시지가 오지 않는 시간에는 게임 회사가 나타나 우리의 주의를 독점한다. 부자와 빈자 모두 스마트폰에 시간을 빼앗기지만 양상은 빈자에게 좀 더 불리하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감수성이 발달한 부자들은 점점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뉴욕에서 유행하는 ‘폰스택’ 게임을 소개했다. 룰은 간단하다. 고급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할 때 모두의 휴대폰을 테이블 한가운데에 쌓아놓고는 먼저 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기에는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고 대화와 식사에 집중하자는 건전한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파워 게임의 면모도 있다.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심할수록 더 힘이 강한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임을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이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지위가 낮을 경우에는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의 타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애타게 구직을 하는, 어제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는 젊은이가 스마트폰을 끄고 친구와의 대화에만 온전하게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건 사치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혹시나 배터리가 다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초조하게 체크할 것이고, 그러다가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저런 뉴스를 검색하게 될 것이고, 친구로부터 온 별 중요치도 않은 메시지에 답장을 쓰게 될 것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라든가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이들 역시 스마트폰의 전원을 함부로 끄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는 스마트폰이라는, 이름도 그럴싸하고 모양도 근사한 멋진 물건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런데 이 앙증맞은 전자 제품이 책과 신문, 잡지, 눈앞에 앉아 있는 친구 등과 사이좋게 나누어 갖던 시간이라는 희소한 자원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카페에 모인 친구 넷이 말없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풍경이다.
스티브 잡스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더 나쁜 방향으로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부자가 한국의 가난한 젊은이에게 직접 시간 쿠폰을 살 필요는 없다.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EDITOR : 박세회
PHOTO : 김용찬

발행 : 2013년 17호

<b>Insight, Outsight</b><BR>소설가 김영하가 예민한 촉수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조금 이상한 현실’을 포착한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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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01호

2013년 11월 01호(총권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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