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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가 변했다. 그 중심에 인정사정없는 핀치 히터 마리사 메이어가 있다.

야후의 핀치 히터, 마리사 메이어

On October 18, 2013

지난달 야후가 2년 만에 구글을 따돌리고 미국 포털 사이트 방문자 수 1위에 올랐다.몰락했던 야후가 다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른 것에 대해 전 세계의 언론은 하나의이름을 외쳤다. 2011년 취임한 야후의 CEO이자, [포춘]지가 뽑은 전 세계 500개의기업 가운데 최연소 CEO인 마리사 메이어다.

  • 올 7월 WIRED 컨퍼런스에서 대담 중인 그녀.

모든 것은 ‘야후 개혁’의 장본인, 헤지펀드의 매니저인 댄 로엡에서 시작되었다.
야후의 최대 주주였던 그는 여전히 야후에 큰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10년간의 잘못된 운영에도 불구하고 야후에는 여전히 매달 7억 명이 유입되었고 아시아 인터넷 회사에서 야후에 엄청난 투자도 했기 때문. 이사회만 바꾸고 CEO를 자신이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이 유용한 아시아 자산도, 분명한 수요도 현명하게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전 MTV 사장이자 미디어 컨설팅 업체 ‘엑티베이트’의 대표인 마이클 울프와 손잡고 대대적인 야후 개혁을 감행했다. 기존의 이사회가 임시방편으로 앉힌 새 CEO 스캇 톰슨의 학력 위조를 폭로하고 사임시킨 후, 몇 명의 이사진을 밀어내고 울프와 이사회 자리에 앉은 그는 비로소 야후 새 CEO를 찾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채용 조건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대내적으로 야후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회사들과의 경쟁에 대비해 혁신적인 상품을 꾸준히 만들면서도 개척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최고의 콘텐츠와 상품, 혁신, 광고,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매혹시킬 만한 새 문화를 만들어 모바일에서 야후 유저의 경험을 ‘현대화’시킬 수 있을 것, 또한 테크 업계에서 야후의 신용과 평판을 재정립시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인물일 것.

채용을 담당한 기업 간부 알선 회사 ‘스펜서 스튜어트’의 짐 시트린에게 로엡과 울프가 손수 쥐어준 인재상이다. 시트린은 엄청난 고민 끝에 아마존, 애플, 구글에 있는 몇몇의 이름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들을 고용하기란 물론 하늘의 별따기.

  • 2013년 미국 <보그> 9월호에 등장한 마리사 메이어.

마리사 메이어도 그중 하나였다. 언제나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관심을 받으면 얼굴이 금방 빨개졌던 아이. 친구들이 열어주는 생일 파티조차 불편해할 만큼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던 ‘괴짜 과학 덕후’. 위스콘신 주의 워소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이 여자아이가 30억 달러 규모의 ‘야후’ CEO이자 샌프란시스코 포시즌의 펜트하우스에 살며 오스카 드라렌타를 입고 <보그> 셉템버 이슈에 등장한 지금의 마리사 메이어가 될 수 있었던 건 좋은 멘토들과 간섭이 심했던 엄마 덕분이다.

<타임>지의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후보 100인’에 선정되었다.

마리사 메이어
1975년생.
스탠퍼드대학교 기호시스템 학사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과학 석사
일리노이공과대학 대학원 명예 박사
1999~2012. 07 구글 엔지니어로 입사
구글 검색 서비스 부문 부사장
구글 지역 서비스 부문 부사장 역임
2012. 07~현재 야후 최고 경영자(CEO)
2012 <포브스> 올해를 빛낸 가장
매력적인 여성 12명에 듦










마리사 메이어가 띄운 5가지 승부수
원칙주의자가 돼라
그녀는 융통성 있는 여우라기보다 적을 만들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곰 타입이다. 모든 것의 최우선에 ‘고객’과 ‘이용자’를 둔다는 원칙을 절대 바꾸지 않았고, 납득할 수 없는 게 있으면 무엇에도 서명을 하지 않았다. 고객 데이터와 관련한 프로그램 개발 회의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돈과 관련된 사업적인 회의에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철저하고 용의주도한 반면 소통에 서툴러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는 약점은 접속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철저히 데이터화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극복했다.

외골수가 돼라
구글에서 중역으로 일할 당시 자신과 의논할 거리가 있는 동료들에게 온라인의 ‘오피스 아워’ 시트를 이용하도록 했다.
여전히 수줍음이 많고 사회적으로 서툴렀던 그녀가 사람들과 최소한, 그리고 최단 시간에 스피디하게 소통하기를 바라며 택한 방법. 다이내믹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아야 하는 IT 업계에서 이러한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리더십은 동료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녀에게 반기를 드는 동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옛 남친인 구글의 전 CEO 래리 페이지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구글 맵스, GEO처럼 덜 중요한 자리로 좌천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조차 성공적으로 비즈니스를 끌어온 것 역시 바로 이 외골수적 성향 덕분이다.

단호하게, 과감하게
그 누구도 구글 종신형 재소자 같았던 메이어가 야후 CEO 자리를 받아들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야후 같은 기업을 이끌 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텀블러’와 같은 핫한 신생 업체를 쿨하게 현금으로 인수했고, 야후 직원들의 자택 근무를 금지시켜 전 세계 워킹 맘들의 원성을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셰릴 샌드버그와 같은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일 덕후’인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야후를 다시 일으키는 것뿐이었다. 20번째 사원으로 들어가 13년을 몸 바쳐 일한 구글을 떠나는 것도 그녀에겐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그러나 결정이 끝난 후엔 야후와의 첫 미팅에서 야후의 문화, 임원실, 상품 라인업을 총 점검하는 용의주도한 계획서를 보고했다. 이 미팅 후 울프는 마리사 메이어를 야후의 새 CEO로 확정했다.

남편 잭 보그와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디너에 참석했다.

나만의 특장점을 부각하라
다수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녀도 자기 어필의 기회 앞에서는 거침없다. 2012년 6월 중순, 야후 입사를 위한 울프와의 미팅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뤄왔었는지를 어필했다. 디자인, 마케팅, 판매직, 엔지니어, 매니저 사원들과 그들을 감독하는 더 큰 규모의 매니저들 등 6천 명 가까운 구성원들을 감독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 그리고 마지막에 맡았던 GEO 파트가 회사 전체의 20%가량을 차지했던 것과 그 시기 동안 그녀가 처리했던 다양한 일들은 비즈니스적인 도전에 가까웠다는 사실도.

새 문을 여는 데 주저하지 말라
취임 1년 후 야후의 주식 가치가 100% 올랐다. 취임 2년째였던 올 8월, 그녀는 미국 내 포털 사이트 1위라는 결과로 야후에게 지난날의 영예를 되찾아주었다. 구글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면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성공 신화다. “새 문을 열지 않으면 모든 건 그대로죠.” 일시적인 결과인지도 모르고 아직 갈 길도 멀지만 그녀의 나이는 38세, 아직 마흔도 안 됐다. 10권짜리 성공 신화에서 고작 1권만이 완성된 셈이다.

EDITOR : 김소영

발행 : 2013년 16호

지난달 야후가 2년 만에 구글을 따돌리고 미국 포털 사이트 방문자 수 1위에 올랐다.몰락했던 야후가 다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른 것에 대해 전 세계의 언론은 하나의이름을 외쳤다. 2011년 취임한 야후의 CEO이자, [포춘]지가 뽑은 전 세계 500개의기업 가운데 최연소 CEO인 마리사 메이어다.

Credit Info

2013년 10월 02호

2013년 10월 02호(총권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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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