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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진 가을, 이 틈을 타 아우터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카디건에 관하여.

카디건의 역습

On September 16, 2013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휙 지나갈 정도로 가을이 짧아졌다. 그래서 다른 아우터는 소용이 없다. 의외로 뼈대 있는 카디건의 스토리를 알고 나면 옷 입기가 훨씬 수월해질 터.

1920년대 샤넬의 카디건을 입은 여인들.

짐작하건대, 지금 당신의 사무실 의자에는 카디건 하나가 덮개처럼 걸려 있을 거다. 에어컨 바람이 세다 싶을 때, 밥 먹다 흘린 반찬 자국을 가리고 싶을 때, 혹은 출렁거리는 팔뚝 살을 숨기고 싶을 때,
우린 의자 위에 걸어둔 카디건을 탁탁 털어 어깨에 걸친다. 카디건은 이렇듯 주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참으로 간만에 카디건이 단독 주연으로 부상했다. 생로랑, 로샤스, 미우미우, 니나리치가 기용한 이번 시즌 루키가 바로 카디건이니 말이다. 카디건의 뿌리를 찾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카디건의 출생지가 실은 피 터지는 전장이었다는 것.

1854년 크림전쟁 중, 영국의 카디건 경이 부상 치료가 편하도록 입고 벗기 용이하게 니트에 단추를 단 게 시작이었다. 이후 카디건이 군인이 아니라 여자에게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꽤 드라마틱한 변화들을 겪게 된다. 그중 주목할 몇 가지 신들을 꼽아보자.

여성의 몸과 맘에 해방의 불씨가 타오르던 1920년대, 가브리엘 샤넬은 엉덩이를 덮는 기다란 카디건을 주로 입었다. 일자로 툭 떨어진 카디건으로 몸의 실루엣을 가려버린 여자들. 남자들은 불만투성이였겠지만 여자들은 더 이상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대중’적인 카디건 룩으로 ‘대중’의 사랑을 얻은 미셸 오바마

한편 카디건이 음전한 여자의 상징이 된 건 1950년대 후반 재클린 케네디 덕분이었다. 스마트한 여자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그녀는 승마 시 언제나 담백한 트윈 세트 카디건을 입고 진주 목걸이를 걸쳤다. 이때부터 퍼스트레이디들의 캐주얼 스타일에는 꼭 니트 카디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셸 오바마가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된 데도 카디건의 역할이 컸다. 대선 직전, TV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는 제이크루의 노란 카디건을 입고 소탈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단출한 이 노란색 카디건의 이름은 ‘재키 카디건’이었다.











그런지 룩의 아이콘 커트니 러브

그렇다고 카디건이 늘 착한 것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 히피에서 분화된 수많은 반엘리트, 반패션주의자들은 에스닉한 패턴에 낡고 큰 카디건들을 걸쳤다(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입은 게 아니라 ‘걸쳤다’는 불량스러운 애티튜드다!). 특히 배드 걸의 상징인 커트니 러브는 무대에 오를 때조차도 카디건을 입었다.
아니, 벗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카디건의 배드 걸 이미지를 굳힌 건 마크 제이콥스였다.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재미없는 요소를 뽑아내 화려한 것으로 탈바꿈시키길 좋아한다. 어쩌면 ‘속물적인 반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라는 그의 철학은 카디건에도 적용됐다.
1993년 ‘난장판’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던 마크 제이콥스의 데뷔 쇼에도 낡고 큰 그런지한 카디건이 등장했다. 그때부터 ‘친’패션주의자들도 빈티지한 카디건을 걸치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스쿨걸 룩의 유행과 함께 카디건도 반짝 인기를 한 번 더 누렸다.

하지만 카디건은 소란스러웠던 그 시절 이후 몇 년간 사무실 의자에 걸쳐진 채 보조 역할만 해왔다. 그러니 이번 가을 키 아우터로 카디건이 부상한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카디건의 역습을 이끈 건 짧아진 가을과 카디건의 다양한 장기를 이끌어낸 몇몇 디자이너들 덕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커트니 러브에 대한 사랑을 담아 만든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컬렉션을 보라. 모델이 마지막으로 입은 옷은 코트도, 재킷도 아니다. 낡고 펑퍼짐하고, 요란한 카디건이 메인 아우터로 등장한다. 성인 남자들조차 족히 입을 법한 사이즈의 카디건은 생각보다 두꺼워 추위 따윈 접어도 될 정도다. 카디건에 곁들여진 베이비 돌 드레스나, 일부러 찢어 놓은 스타킹, 터프한 워커 등은 1993년도 마크 제이콥스의 쇼와 꽤나 흡사했고, 또 그만큼 논란이 됐다.

도발적인 카디건 룩을 발견해 낸 리한나.

한편 뽀빠이의 여자 친구 올리브를 닮은 미우미우 컬렉션에는 드레스라 불러도 좋은 긴 카디건이 그보다 더 긴 스커트와 궁합을 맞췄다. 아마도 미우미우 쇼윈도를 보고 나면 ‘롱스커트 대신 스트라이프 타이츠만 더해도 되겠다’와 ‘꼭 검정 벨트 하나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범을 비범으로 바꾸는 데 맛깔스런 솜씨를 가진 로샤스에선 셔츠도 티셔츠도 없이 카디건 하나만 입고 있다. 물론 셔츠와 티셔츠, 코트의 역할을 카디건 한 장이 모두 해낸다.
더욱더 기특한 건 그 흐릿한 멜란지 니트 카디건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로샤스 같은 하우스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쉽고 가볍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서풍이 불기 시작하는 9월의 어느 날, 당신 사무실 의자에 걸려 있던 카디건을 탁탁 털어 집으로 가지고 가자. 그런 뒤 카디건을 주제로 한 스타일링에 도전해 보자. 퍼스트레이디들이 사랑한 보드라운 캐시미어 카디건도, 그런지 룩을 완성한 낡고 벌키한 카디건도, 드레스로도 소화할 수 있는 길고 타이트한 롱 카디건도 모두 쇼윈도에 걸려 있다.

다행스러운 건 카디건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증명하듯 카디건 하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일도 수없이 많다는 것.
그러니 짧은 가을을 보내기에 카디건만큼 경제적인 아우터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바다.


EDITOR's CHOICE
가격의 고저부터 스타일의 난이도까지 까다롭게 골라낸 올 시즌 카디건 베스트 4.

1. 비즈 꽃이 수놓인 카디건 1백40만원 프라다.
2. 솜사탕 같은 컬러의 카디건 3만9천9백원 유니클로
3. 재킷을 연상시키는 카디건 1백3만원 안드레아 폼필리오 by 쿤위드어뷰.
4. 히피스러운 카디건 2만9천원 H&M.














  • ‘심플 이즈 베스트’를 보여주는 알렉사 청의 카디건 룩.

EDITOR : 김민정
PHOTO : 김영훈(제품), Getty Images, Wenn-Multibits

발행 : 2013년 14호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휙 지나갈 정도로 가을이 짧아졌다. 그래서 다른 아우터는 소용이 없다. 의외로 뼈대 있는 카디건의 스토리를 알고 나면 옷 입기가 훨씬 수월해질 터.

Credit Info

2013년 09월 02호

2013년 09월 02호(총권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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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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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제품), Getty Images, Wenn-Multib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