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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돌아온 김영하 작가 독점 인터뷰.

김영하가 돌아왔다

On August 13, 2013

글쎄, 얼마지나지 않아 김영하의 이번 작품을 대학원 전공으로 삼는 국문학도가 생기지 않을까? [그라치아]에 한 달에 한 번, 마감에 늦는 법 없이 칼럼을 보내주는 김영하 작가가 신작을 냈다.

<그라치아>에 한 달에 한 번, 마감에 늦는 법 없이 칼럼을 보내주는 김영하 작가가 신작을 냈다.
아무리 기고를 하는 잡지라지만, 셀링 파워로도 소설의 수준으로도 우리나라에서 톱을 달리는 작가이기에 옷까지 갈아입어야 하는 번잡한 인터뷰에 쉽게 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원한 승낙의 답이 돌아왔다. 그의 주요 전작 5권을 밀린 방학숙제하듯 독파하고 나자 당장 이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꾼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7개월간 외고를 받으며 전화 통화한 것은 처음 청탁할 때 딱 한 번. 그 후 모든 대화를 메일과 문자를 이용했기에 우린 서로를 글로만 알았다. 그것도 매우 정중한. 짝사랑 먼발치에서 보는 심정으로 낯이라도 익히고 목소리라도 들을 겸 연락 없이 낭독회도 찾았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조금 아는 상태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패션 잡지 중엔
<그라치아>와만 인터뷰를 잡았다는 덕담과 함께.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하여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증후군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1인칭으로 기록한 수기 형식의 소설이다. 이 수기에 따르면 주인공 김병수는 70세의 노인으로, 딸 은희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김병수는 박주태라는 인물과 우연히 마주치는데, 살인자의 본능으로 박주태가 은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은희의 안녕을 위해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박주태를 죽여야겠다고 다짐한 그는 이 생각마저 잊어버릴까 싶어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기록한다. 알츠하이머 연쇄살인자의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수기라는 특이한 형식이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허문다.


낭독회에서 메소드 연기법(철저히 등장인물화 되도록 훈련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살인자로 약 3개월(집필 기간)을 사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라치아>는 지난 몇 달간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에게 글을 받은 격이네요.
하하. 뭐, 그 정도로 빠져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아침에 일을 해요. 오전 6시부터 11시나 12시까지 쓰는데, 정오를 넘기고 나서부터는 멀쩡하게 살아요. 반찬가게도 가고 목욕도 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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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제는 작자와 편집자, 과거와 미래, 선과 악이 혼재되어 결국 붕괴하는 소설 전체의 구조라고 생각해요.
이 붕괴의 첫 번째 징후는 어딘가요?

사람들이 간과하는 문장이 첫 문장이에요. 이 인물이 과거는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인데 첫 문장에서 이미 25년인지 26년인지 헷갈리고 있죠. 첫 문장부터 붕괴는 시작됐어요.
『위대한 개츠비』에서 스콧 피츠제럴드가 보여주려 한 건 ‘공허함’이죠. 그가 선택한 방식은 앞에 폭죽처럼 화려한 세계를 보여주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를 보여주면서 공허를 느끼게 하는 방식이에요. 이유 있는 낙차를 만든 거죠. 이렇게 소설의 구성이나 문체로 주제를 표현할 수 있어야 좋은 작가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편집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작가의 태도였죠. 살인자의 목소리에서 김영하의 목소리를 찾으며 읽었어요.
그런 식의 독서에 대해서 오르한 파묵이 멋진 말을 했어요. 우리는 소설에 감정적으로 빠져들면서, 한편으로는 머릿속으로 ‘이건 작가의 트릭이 아닐까?’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며 성찰적인 독서를 한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소설은 성찰적인 독법과 감성적인 독법 두 가지를 동시에 쓰더라도 그 즐거움이 훼손되지 않는 장르란 점이죠.

그러고 보니 체호프, 카버 등의 작품을 굉장히 감성적으로 읽고 파묵이나 나보코프의 작품은 성찰적으로 되는 것 같네요.
저는 반대로 읽어요. 작가들은 체호프가 썼던 기법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체호프의 단편 중 ‘입맞춤’을 보면, 주인공이 한 상급 장교의 파티에 초대를 받죠. 혼란한 파티 속에서 누군지 모르는 한 여인이 와서 주인공에게 키스를 해요. 주인공은 당황하고, 그 여인도 당황한 주인공이 자신의 밀회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는 도망치죠. 사실 기습 키스라는 것밖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그 장교의 인생이 키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버렸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죠. 이건 분명히 단어와 문장인데 무슨 마법도 아니고, 이런 게 가능한 이유가 궁금해요. 재봉선이 보이지 않는 천상의 옷 같은 거예요.

이 소설도 재봉선이 보이지 않아요. 보통은 액자 구성을 할 법도 한데요. 예를 들면 푸시킨의 ‘벨킨 이야기’처럼 말예요.
푸시킨의 그런 기법을 가져다 그대로 쓴 게 제 전작인 ‘흡혈귀’예요. ‘벨킨 이야기’에 보면 작가 벨킨이 독자가 보낸 재밌는 이야기를 소개해 주겠다는 식으로 시작하죠. 뭐 거짓말이죠. 독자가 어떻게 푸시킨 같은 문장을 쓰겠어요. 작가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에요.
이 소설도 액자를 만들었다면 독자들이 좀 더 안전하게 소설에 이입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이 소설은 그냥 생고기를 툭 하고 던져놨단 말이죠.
이 소설은 날것 그대로 던져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날아든 운석처럼 독자들의 앞마당에 ‘툭’ 하고 떨어지기를 바랐어요.

그 당혹감이 마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죽은 화자의 이야기를 듣던 당혹감과 비슷해요.
작가나 감독이 뭔가를 선택할 때는 본능적인 감각 같은 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파묵도 그렇지만 포크너도 마찬가지로 소설 작법의 한계를 벗어난 사람들이에요. 이번 소설처럼요. 노벨 문학상 취향이죠.
포크너와 파묵이란 연결 고리가 참 재밌네요. 실제로 파묵도 처음에는 포크너의 소설론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많은 작가들이 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포크너가 다 시도했던 것들이죠. 파묵은 이후, 유럽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로소 『내 이름은 빨강』을 내게 됐죠. 파묵의 작품에선 심지어 화자가 “나는 빨강입니다”라고 말하죠. 두 사람 모두 소설이 가지고 있던 작법의 지평을 확대한 거예요.

이 소설은 살인자의 아포리즘을 누군가 모아놓은 것 같은 형식이에요. 소설에 실린 순서대로 집필하셨나요?
아니요. 무수히 넣고 빼고를 반복했고 순서도 앞뒤가 마구 섞였죠. 저는 사실은 아포리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만약 이게 진지한 화자의 아포리즘이었으면 전 안 썼을 것 같아요. 그렇게 써버리면 사람들이 밑줄 긋고 정말인 줄 알며 믿어버리니까.

그렇죠. 이건 사실 유먼데 말이죠.
몽테뉴 수상록의 잠언들, 책받침이나 고속도로 화장실에 써 있을 법한 웃긴 잠언들도 어디에 쓰여 있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소설적 도구가 돼요.
금강경의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킬지니라’라는 구절을 살인자가 인용하게 하면 ‘아무나 죽이자’라는 말이 되면서 섬뜩해지죠. 소설은 콘텍스트를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재밌어요.

콘텍스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오디세이, 오이디푸스, 니체, 반야심경, 금강경이 나오죠?
살인자가 읽었을 법한 텍스트로 상정하신 건가요?

그렇기도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의 구조를 품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범인을 잡으라’라고 말하면서 희곡이 시작되는데, 알고 보면 자신이 범인이죠. 살인자가 은희를 지키려고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지만 알고 보면 은희는 자신이 죽였거나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인 것과 같아요.

스포일러일 수 있겠지만 박주태는 결국 김병수의 과거예요.
자신의 과거를 봤다는 착각에 빠지는 거죠.
게다가 둘 다 은희를 욕망하기도 하고요. 살인자가 자신의 과거를 죽인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그런데 제 결론은 조금 더 과격해요. 전 이 소설을 통해 작가 김영하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신을 죽인다고 느꼈어요.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소설가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추구하는 건 항상 ‘리얼’이에요.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항상 생생한 날것을 던지고자 노력해 왔어요.
소설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폴 오스터처럼 재밌게 풀어 쓸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유형의 작가는 분명히 아니에요. 제가 던지고 싶은 리얼함은 조금 다른 거죠. 신문에 나온 기사처럼 팩트를 나열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걸 리얼하다고 느끼지는 않잖아요?

그게 바로 질문의 포인트예요. 지금까지 김영하의 소설에는 홍대와 광화문이 등장하고, 구체적인 전철의 노선도까지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에는 도시 이름도, 차 이름도, 심지어 등장인물의 생김새에 관한 묘사도 없지만 더 리얼해요.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독자가 더 리얼하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항상 고민해요. 예전엔 등장인물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까지 썼었죠.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단 한 줄도 없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사실 소설에는 푸른 눈인지 갈색 눈인지도 안 나와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들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죠. 제가 늘 꿈꾸는 경지예요.

중간에 ‘내가 왜 이걸 쓰기 시작했을까’라는 생각도 하셨다고요. 같은 이야기라도 좀 더 쉬운 길이 있었을 텐데 굳이 난제를 내고 어렵게 풀었어요.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시나요?
다른 작가들이 왜 안 썼는지를 알겠더라고요. 큰 전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에게 던진 어려운 도전을 넘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이런 감정이 자주 드는 건 아니에요. ‘검은 꽃’을 쓰고 나서는 앞으로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다른 의미로 ‘빛의 제국’도 마찬가지였고요. 이런 소설의 경우, 액자 없이는 쓸 수 있는 문장이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바늘땀이 보이지 않게 써야 하는 것이니, 제가 굉장히 글을 빨리 쓰는 편임에도 하루에 한두 문장밖에 못 쓰는 날이 많았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이 ‘김병수’라는 인물, 이 괴물 같은 인물은 내가 아니면 그냥 그 세계에서 괴물로 끝나는 거잖아요. 작가들은 어떤 세계에서 괴물들을 데리고 와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거거든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롤리타>의) 험버트처럼 말이죠. 그 생각을 하면서 끈질기게 어떻게든 끌고 온 거죠.



김영하가 묻고 이이언이 답하는 북 트레일러
『살인자의 기억법』이 출간되는 7월 24일 당일. 1200석 규모의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이 거의 가득 찼다.
1시간 30분 일정의 낭독회는 이적의 재치 넘치는 진행과 미디어 아티스트 겸 뮤지션인 이이언(밴드 MOT의 리더)의 북 트레일러 덕분에 지루할 새 없이 지나갔다. 김영하도 이 북 트레일러가 자못 자랑스러운지 이이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언.

소설을 읽은 첫 감상은 어땠나요?
이 소설을 새벽 1시에 PDF로 받아 불과 3시간 만에 다 읽고 새벽 4시쯤 잠이 들었어요. 자다가 오전 7시쯤 다시 깼는데, 이 소설의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거예요. 잠깐, 이거 뭐지?

트레일러 제작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서요?
순수한 프로그래밍 기법으로는 비주얼의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프로그래밍 기법과 CG 기법을 사용해서 트레일러를 구상했죠. 프로그래밍과 CG 작업이 끝나고, 이걸 화면으로 뽑아줄 랜더링 과정만 거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집에 있는 고성능 컴퓨터 4대를 연동해 돌렸는데 1프레임을 랜더링하는 데만도 1시간이 걸리더군요. 총 3천 프레임이 넘는데 소설 발표 시점까지 보름 남았으니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었죠. 결국 독일에 있는 랜더링 전문 회사에 의뢰를 맡겼어요.

본인의 인생을 다시는 작품 속에 갈아 넣지 않겠다고 트윗하셨던데요?
지난 보름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입 안에 궤양이 세 군데 정도 있어요. 수명이 7개월쯤 줄어든 것 같아요.

EDITOR : 박세회
PHOTO : 김보성

발행 : 2013년 12호

글쎄, 얼마지나지 않아 김영하의 이번 작품을 대학원 전공으로 삼는 국문학도가 생기지 않을까? [그라치아]에 한 달에 한 번, 마감에 늦는 법 없이 칼럼을 보내주는 김영하 작가가 신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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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02호

2013년 08월 02호(총권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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