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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신 교수의 음식과 윤리

절제와 균형을 지키는 식생활과 파격의 식생활

On July 08, 2014

현대인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동적 평형, 즉 절제와 균형을 지키는 것임을 지난 호에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과연 절제와 균형을 실천하기가 쉬울까? 산해진미가 가득한 잔칫상에서도 지켜야 할까? 그러면 행복할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지켜야 할까?

식생활에서 ‘절제와 균형’의 반대 개념으로 ‘무절제와 불균형’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보다 피부에 더욱 와 닿는 단어로 ‘파격(破格)’을 들 수 있다. 날마다 반복되는 밥과 김치가 아닌 그 무엇, 일상성의 대척점에 있는 ‘파격’ 말이다. 파격은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설날이야말로 파격의 잔칫날이었다. 고기반찬으로 가득 찬 밥상 앞에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브라질에서 단식과 속죄의 40일 사순절에 앞서 육식을 즐기는 카니발도 파격의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나의 형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다. 어머니는 형이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특별 휴가를 받은 아들을 위해 1주일 동안 내리 잔치를 벌였다. 형 친구들은 물론, 먼 친척들과 온 동네 사람이 다 손님이었다. 누구나 와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파격을 즐기며 모두 함께 형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염원, 죽더라도 서운치 않을 정도로 푸지게 한 상 차려주는 위로의 마음이 그 파격적인 잔치에 담겨 있었다. 요즘은 환갑잔치를 생략하는 경우가 흔하다. 여행을 간다거나 식구끼리 모여 조촐하게 음식을 나누는 정도다.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환갑이 지나면 언제 명을 다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성대한 잔치를 열어 환갑을 기념했다. 나의 어머니 환갑잔치도 한식집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악단을 불러 노래하고 장구 치고 춤추고 먹고 마시며 하루 종일 놀았다. 이승에서 그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모두 함께 파격을 즐겼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는 일상을 깨는 파격이 일어난다. 그것은 대부분 인생의 중요한, 또는 기념비적인 사건과 함께하는데 혼인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혼인 때에는 잔치를 연다.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먹고 마시며 즐긴다. 파격의 음식은 혼주와 손님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파격을 통해 행복해한다. 옛 성인들은 일상성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부분 보통 사람은 일상성보다는 파격에서 행복을 찾고 또 그 행복했던 기억을 지니고 어려운 현실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런데 파격이 매일 반복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파격일까? 오늘날 우리는 파격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은 파티, 내일은 회식, 주말마다 있는 지인의 결혼식까지. 반복되는 파격에 결과적으로 파격이 사라진 삶이 된 것이다. 매일이 생일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사순절이 없는 매일의 카니발은 얼마나 식상하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파격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오늘의 이 파격의 잔치는 나에게 일상인가, 비일상인가? 이 자문과 자답을 게을리하면 우리는 더 이상 동적 평형, 즉 절제와 균형의 식생활을 할 수 없고 나아가 ‘파격의 행복’을 잃게 된다.

이제 잡채나 떡을 먹어도 어린 시절 잔칫집에서 어머니가 슬쩍 건네주던, 참 별나게 맛있던 그 느낌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의무적으로 결혼식이나 잔칫집에 가 앉아 뷔페 접시에 한가득 담긴 음식을 피곤하게 쳐다볼 뿐이다.

파격은 이야기로 따지자면 기승전결의 ‘전’, 즉 절정이자 전환과도 같다. ‘전’에 다다랐으면 ‘결’로 끝맺음하고 새로운 ‘기승전결’로 들어가야 또 다음 ‘전’이 의미 있지 않겠는가? ‘기승전전전…’에 치우친 삶을 버리고 과감하게 ‘결’로 가야 함을 잊지 말자. 절제와 균형을 다시 찾아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식품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 분야의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 윤리를 대중에 알려 우리 사회에 올바른 식문화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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