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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深夜食堂

방배동, 성민양꼬치

On January 15, 2014

날은 지고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뜨끈한 데 들어가 앉아 얼굴 붉히며 기름진 것으로 배 채우고 시원한 술 한잔 들이켜고픈 날, 이 집이라면 실망할 일이 없겠다.

1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피단두부는 그 양도 푸짐하다. 차가운 피단두부 한 접시면 독한 고량주 한 병도 거뜬하다.
2,3 춘장에 볶은 돼지고기와 생채를 차가운 두부피에 싸 먹는 경장육사, 맛이 진한 듯 산뜻해 누구나 좋아한다.

산중호걸처럼 양꼬치를 뜯자

중국 향신료 냄새와 뒤섞인 특유의 양고기 내음 풍기며 꼬치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질 때, 양기름이 숯에 파르르 떨어지며 뿌연 연기 매캐하게 풍겨댈 때, 벌써부터 얼굴은 불콰해지고 꽁꽁 언 마음이 덩달아 풀린다. 노릇노릇, 번들번들하게 구워진 양꼬치를 입안에 넣는 순간 향신료 향이 확, 바삭하고 쫄깃하고 기름지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이라도 당장 맥주부터 찾게 된다. 양 특유의 내음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숯불 향에 기름 쪽 빠진 양꼬치라면 OK. 국내의 거의 모든 양고기가 수입 냉동육인 것을 감안하면 양꼬치의 관건은 얼마나 잘 해동하는가 하는 것인데 성민양꼬치는 적당히 부드럽고 쫄깃한 살결과 비리지 않은 양 내음에 마니아와 초보자 모두를 만족시킨다. 양꼬치구이를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난히 시끌벅적하기 마련, 가게를 채운 이들을 보자면 호탕한 이들만 모여 있는 듯하다. 하지만 누구든지 ‘산중호걸’로 만드는 것이 양꼬치의 힘! 넓은 초원에 불 지피고 양고기 구워 먹던 유목민들처럼, 오늘 밤만은 누구보다 호기롭게 양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자.

4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딱 입맛을 돋울 만큼 향신료에 재운 양꼬치는 물리지 않는다.
5 양꼬칫집에 빠질 수 없는 가지볶음. 양꼬치와 가지볶음, 칭다오 맥주의 조화는 가히 ‘양꼬치 삼합’이라 부를 만하다.

술과 요리 한 상 차리고 ‘피딴문답’

이 집은 양꼬치도 양꼬치지만 술맛 당기는 다양한 요리로 더 명성이 높다. 가지를 튀겨 깐풍기소스에 볶은 가지볶음은 빠질 수 없는 스테디셀러, 쫀득한 찹쌀 튀김옷 아래 폭신한 가지 살에서 육즙이 줄줄 흘러내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매콤달콤한 소스 맛에 젓가락이 바빠진다. 돼지고기를 춘장소스에 볶아 오이, 당근, 파 채와 함께 두부피에 싸 먹는 경장육사는 기름진 식탁 위의 산뜻한 별미. 저렴한 가격에 이런 안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따로 얘기하면 주문 가능한 메뉴가 몇 있는데 그중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피단두부, 삭힌 오리알인 피단 다진 것에 연두부를 넣고 고수와 갖은 향신료 넣어 뒤섞은 요리이다. 탱탱하고 쫄깃한 피단과 부드러운 두부의 조화, 쿰쿰한 삭힌 향에 고수의 향이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낸다. 피단두부를 앞에 두고 있자면 떠오르는 김소운의 수필 <피딴문답>.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수필은 ‘피딴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주인공이 운을 떼며 시작된다. 두 등장인물의 대화를 떠올리며 술을 마시자면 얼큰한 정신에 곰삭은 인생의 맛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 생각을 해 보라고. 날것째 오리알을 진흙으로 싸서 반년씩이나 내버려 두면, 썩어 버리거나,
아니면 부화(孵化)해서 오리 새끼가 나와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
그런데 썩지도 않고, 오리 새끼가 되지도 않고, 독자의 풍미를 지닌 피딴으로 화생(化生)한다는 거,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 허다한 값나가는 요리를 제쳐 두고,
내가 피딴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
...
"그저 썩지만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말 못 할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거,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남들은 나를 글줄이나 쓰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붓 한 자루로 살아왔다면서,
나는 한 번도 피딴만 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네……."

<피딴문답> 中

  • shop info

    메뉴 양꼬치 10개(1인분) 1만원, 가지볶음 1만1천원, 피단두부 1만2천원, 경장육사 1만3천원
    영업시간 17:00~05:00
    주소 서울 서초구 방배동 449-4
    문의 02-583-8859

날은 지고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뜨끈한 데 들어가 앉아 얼굴 붉히며 기름진 것으로 배 채우고 시원한 술 한잔 들이켜고픈 날, 이 집이라면 실망할 일이 없겠다.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강태희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