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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17)

누하동 누하우동초밥

On October 02, 2013

저녁 마실 가듯 슬렁슬렁 걸어 술집에 간다. 이제 막 외등을 켠 가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바에 앉아 골목길을 내다보니 이미 밖은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간. 늘 하던 대로 안주를 주문하고 술을 받는다. ‘아 오늘도 지나가는구나.’ 별 탈 없이 마무리한 하루, 누하동 애주가들의 단골 술집 누하우동초밥.

귓가에 울려 퍼지는 비틀스 음악

진지한 표정으로 우동 면발을 입에 달고 있는 폴 매카트니와 새우튀김을 덥석 잡은 존 레넌, 이곳의 벽면에는 비틀스 멤버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사장의 취향을 반증이라도 하듯 비틀스의 노래가 작은 가게 가득 귓등을 때린다. 조지 해리슨의 기타 리프가 둥둥 울려 퍼지며 존 레넌의 음색이 테이블 위를 부유한다. 노란 등 아래 매캐하게 퍼지는 담배 연기, 그 사이로 후각을 자극하는 지지고 볶는 음식 냄새에 하루 동안 노곤해진 심신이 일순 풀려 음악과 함께 섞인다. 이곳은 번듯한 데이트나 호사스러운 저녁과는 거리가 멀다. 바 테이블은 벌써부터 낡아 있다. 술잔 함께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고 삶의 냄새 풍기는 소박한 음식에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다 느낀다. 봄밤, 부드러운 공기에 일렁이는 마음에 술 한 잔 털어 넣는다.

동네 어귀 투박한 심야식당

재작년 가을쯤 조용한 누하동 골목길에 조용히 문을 연 누하우동초밥. 청년 시절 열혈 로커였던 사장은 밴드 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훌쩍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뉴욕에서 음악성을 인정받아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로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라고 하면 더욱 멋진 만화 스토리가 되겠지만 뉴욕에 혈혈단신 건너간 사장이 선 곳은 무대가 아닌 레스토랑 주방의 개수대 앞이었다. 그렇게 주방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요리를 배우다보니 어느새 번듯한 일식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되었고 시간은 그만큼 훌쩍 흘렀다. 십여 년 전 떠났을 때처럼 그렇게 다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누하동으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끌어모으겠다는 야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가게 이름 ‘누하우동초밥’처럼 그는 ‘동네의 소규모 심야식당’을 표방하고 가게를 열었다. 그러던 것이 주위 영화사나 출판사 등을 오가는 예술가들과 수십 년 된 누하동 토박이 애주가들의 참새 방앗간이 되더니 어느새 유명세를 타며 이제 멀리서 부러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단골들이 앉을 자리가 없게 되어 원성이 높아지자 얼마 전 넓고 깔끔한 2호점을 냈다.

1 바 테이블과 5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소규모 이자카야.
2 직접 쓴 글씨가 정겨운 메뉴판.
3 회를 숙성시킨 솜씨가 꽤나 좋다.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술을 부른다.

소박한 맛의 우동, 입에 착 감기는 선어회

누하우동초밥이라는 이름답게 우동과 초밥이 기본이다. 우동은 잔꾀나 멋 부리지 않고 담담한 맛을 낸다. 다시마와 가다랑어를 사용해 뽑아낸 맑은 육수에 면발과 청경채, 유부를 말아 낸다. 이곳에서 직접 면을 뽑아 사용하는 일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냉동 면이지만 솜씨 있게 삶아내 적당히 탱글탱글한 식감을 낸다. 허기가 지고 식욕이 돋는 날이라면 튀김을 얹어 푸짐하게 먹어도 좋고 속풀이용으로 얼큰한 김치우동을 먹어도 좋다. 최근 오픈한 2호점에 사장이 가 있는 바람에 이곳의 초밥은 잠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사장이 새벽부터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구입해 24시간가량 숙성해놓는 선어회가 있다. 잘 숙성된 회의 맛은 더 깊고 입에 착 감긴다. 바나나튀김이라는 다소 귀여운 메뉴도 있다. 바나나를 튀김 반죽 묻혀 튀겨낸 예상 가능한 맛. 그러나 달콤하고 따뜻한 맛이 묘하게 정겹다. 대단한 요리를 기대하고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곳은 ‘노상 찾는 소박한 동네 술집’이다.

4 사장이 비틀스의 열혈 팬이다. 비틀스의 음악이 자주 흘러나온다.
5 생맥주와 어울리는 조개버섯볶음.
6 여자들이 즐겨 찾는 바나나튀김과 담백한 유부우동.

하루의 마무리

어떤 술집은 그곳을 찾는 손님들에 의해 분위기가 더해진다. 바로 이곳이 그렇다. 불콰해진 얼굴로 노래에 취해 되지 않는 영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이는 있어도 위화감은 없다. 비틀스가 ‘the long and wild road’, 길고 험난한 길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물으면 함께 울컥해 따라 부르고 링고 스타의 드럼 비트에 맞춰 다시 돌아가라고(get back) 외칠 수도 있다. 소란스러운 술집에서 마음은 소란스럽지 않다. 술기운에 판단력은 흐릿해지고 마음은 평온해진다. 노란 전구처럼 불 켜진 회한이야 마지막 한 잔 술에 털어버리고 집으로 타박타박 돌아간다. 오늘 하늘엔 별도 많다. 봄기운이 달다.

메뉴 선어회 小 2만원, 조개버섯볶음 9천원, 유부우동 5천원, 바나나튀김 3천원
영업시간 오후 6시 30분~새벽 1시(주말은 새벽 2시까지)
위치 서울 종로구 누하동 77-13

저녁 마실 가듯 슬렁슬렁 걸어 술집에 간다. 이제 막 외등을 켠 가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바에 앉아 골목길을 내다보니 이미 밖은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간. 늘 하던 대로 안주를 주문하고 술을 받는다. ‘아 오늘도 지나가는구나.’ 별 탈 없이 마무리한 하루, 누하동 애주가들의 단골 술집 누하우동초밥.

Credit Info

포토그래퍼
김나윤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