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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ERY LONG STORY

책장을 보면 유난히 앞으로 튀어나온 그림책이 있다. 키가 커서 다른 책들 속에서 불쑥 솟아난 책도 있다. 가로나 세로가 긴 판형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림책의 판형은 그 자체로 ‘소재이자 메시지’라고 말한다. 긴 판형의 책은 독자에게 소재를 부각시키고 긴장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기차가 등장하는 책 중 유난히 가로로 긴 판형 책이 많은 것과 나무가 등장하는 책이 세로로 긴 판형을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림책에서 이유 없는 판형은 없는 셈이다. ‘길어야만’ 더 재밌고 의미 있는 그림책을 골랐다.

 


 ->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고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 할아버지는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손자에게 남아 있게 될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정원, 꽃, 시간, 밤, 별 같은 것들. 그러면서 자신은 바람을 타고 소년 곁에 머물 거라고 말한다.

“산들바람이 네 머리카락을 간질일 때면 할아버지를 떠올려주렴. 너무나 재미있던 이 할아버지를, 영원히 너를 사랑할 할아버지를.”

해변에 홀로 앉아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는 소년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찡해진다. 아이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이별을 겪고 슬픔을 극복해낸다는 작가의 믿음이 담겨 있는 책.


 ···  록산느 마리 갈리에즈 글, 에릭 퓌바레 그림, 1만1000원, 씨드북





 ->  빨간 열매
우연히 맛본 빨간 열매가 너무 맛있어 나무에 오르고 또 오르는 곰에게 빨간색의 무언가는 전부 열매 같기만 하다. 그때마다 곰은 “아” 하며 기대하다가 빨간 열매가 아님을 확인하지만 그래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나무 꼭대기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엄청 큰 빨간 열매!”라고 외치는 아기 곰이 사랑스럽다. 그 큰 빨간 열매가 먹고 싶어 허공에 발을 내디딘 순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푹신한 큰 곰 품에 쏙 떨어진 장면에서 사르륵 녹아내린다. 엉뚱하지만 귀여운 아기 곰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을 똑 닮았다.

 ···  이지은 글·그림, 1만2500원, 사계절




 ->  높이 더 높이
세로로 긴 판형의 장점과 매력이 가득 담긴 책. 왼쪽 페이지에는 갑자기 부자가 된 벼락 씨가, 오른쪽 페이지에는 착실히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된 차곡 씨가 집 짓는 과정을 보여준다.

‘집 높이 올리기’에 혈안이 된 두 사람은 상대보다 더 높이 집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벼락 씨는 아무 사람이나 불러다 집을 짓는 반면, 차곡 씨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불러다 집을 짓는다.

그렇게 집을 높이 높이 올리다 더 이상 높이 지을 수 없게 됐을 때 그만 집 한 채가 무너지고 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목수 톱밥 씨’, ‘조각이 취미인 세계 최고 성형외과 의사 지방 씨가 만든 벼락 씨의 청동 조각상’, 등 센스 넘치는 글귀로 웃음을 자아낸다.

 ···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1만2000원, 키즈엠




 ->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바쁜 일상에 쫓겨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가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았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신문을 보며 졸고 있던 삼촌의 하늘은 글자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비친다.

저녁밥을 준비하던 이모의 하늘은 나무에 앉은 새들과 다람쥐다. 각 장면마다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하고 다음 장에서는 아무 글 없이 인물들의 시선이 담긴 풍경만이 펼쳐진다.

여름 휴가지에서 올라다본 하늘과 바람의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 다 읽고 나면 실컷 게을러지고 싶어진다. 2017 폴란드 IBBY 선정 올해의 그림책.

 ···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글·그림, 1만5000원, 비룡소




 ->  메아리
일요일 이른 아침, 잠에서 덜 깬 아이가 아빠와 함께 산에 오른다. 아빠는 아이에게 메아리한테 소원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메아리는 오래전부터 깊은 산 속에 살면서 매주 일요일 아침 7시부터 11시 사이에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양손을 입가에 대고 아이에게 필요한 이런저런 물건의 이름을 외치는 아빠. 그다음 차례로 메아리에게 소원을 말하는 아이는 그 순간 곁에 있지 않아 너무나 그리운 ‘엄마’를 외친다. 그 마음을 알아챈 메아리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안겨준다. 푸른 언덕과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 등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렸다.

 ···  알렉산드로 리치오니 글, 다비드 필토르 그림, 1만2000원, 현북스




 ->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2013년 네덜란드 ‘책깃털상(BOKENPLUIM: 매해 출간되는 네덜란드어로 된 우수 그림책 중 두 권을 선정해 주는 상)’ 수상작. 창밖을 보던 남자가 나무로 지은 오두막을 뜯어 아주 긴 나무다리를 만든다.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는 멋진 다리다.

성큼성큼 걸어 바닷속을 구경하고, 열대우림 나무 위 원숭이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눈 쌓인 산과 북극을 지나 도시로 향하는데…. 과연 이 남자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글이 없는 덕분에 장면 장면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  마티스 더 레이우 지음, 1만2000원, 그림책공작소




 ->  텅 빈 냉장고
2015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1층에 사는 거리의 악사 앙드레이 할아버지가 가진 건 말라빠진 당근 세 개. 작은 완두콩이라도 얻으려고 2층 나빌 아저씨 집에 올라가 보지만 그가 가진 것도 저녁에 먹을 달걀 두 개와 치즈 한 조각뿐이다.

두 사람은 3층에 사는 가족에게 찾아가 갖고 있는 먹거리를 물어보는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면 사람들이 각자 내놓은 부족한 음식이 더해져 어느새 풍성한 파이가 된다.
크림색 바탕에 간결한 선으로 시작한 그림이 한 층씩 올라가면서 오렌지, 노랑, 초록, 빨강이 더해지고 마침내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우러지는 게 인상적. 어쩌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이 불가능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갖게 한다.

 ···  가에탕 도레뮈스 글·그림, 1만1000원, 한솔수북




 ->  나는 기다립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삶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책 속 주인공처럼 키가 크기를, 부모가 나에게 와 잠들기 전 뽀뽀해주기를,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또한 사랑을 우리는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직장에 다니고, 손자가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각 책장으로 계속 이어지는 ‘빨간 끈’은 아주 길게, 때론 아주 짧게 기다림의 설렘과 안도,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현한다. 최근 그림책을 주제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문지애 아나운서가 추천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1만2000원, 문학동네




 ->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가지?
깊고 좁은 구덩이에 고양이 두 마리와 쥐 세 마리가 빠진다. 서로 힘을 합하면 구덩이를 빠져나갈 것 같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지만 고양이가 먼저 나가면 이어 올라오는 쥐가 잡아먹힐 거라고 쥐들이 반대하고, 쥐가 먼저 나가면 고양이를 내버려둔 채 달아나버릴 거라고 고양이들이 반대한다.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비가 오고 차오르는 물속에서 빠져 죽지 않으려고 어푸어푸 헤엄을 친다. 구덩이에 물이 가득 찬 덕분에 모두 밖으로 나왔지만 고양이와 쥐들은 계속 탈출 계획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나가면 모두 만족할 수 있을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듯.

 ···  기무라 유이치 글, 다카바타케 준 그림, 1만원, 북뱅크




 ->  토요일의 기차
기나긴 철로 위에 작은 기차가 서 있다. 마치 기차처럼 가로로 긴 책을 펼치면 길게 그어진 펜 선 위로 엄마의 손을 잡아끄는 아이가 보인다. “내가 세상에서 잘 아는 곳은 두 군데예요. 하나는 도시에 있는 우리 집이고요. 또 하나는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이에요.”

토요일에 기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간 아이의 여정을 담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차가 달려가는 풍경이 바뀌고 아이는 이 세상 모든 곳에 가 보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엄마와 할머니는 아이에게 그건 어려울 거라며 “크면 다 알게 돼”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지레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  제르마노 퀼로·알베르틴 지음, 14800원, 문학동네




 ->  어느 조용한 일요일
평화로운 일요일, 분홍색 페인트 통이 지붕에서 떨어진다. 쏟아진 페인트 위로 강아지가 지나가고 페인트가 묻은 축구공은 엄마가 요리하는 부엌으로, 아빠 옆에 있던 자동차 지붕으로 튕긴다. 그렇게 번지고 튀긴 분홍색 페인트로 책은 온통 분홍색으로 뒤덮인다. 글이

나오는 뒷부분에서는 앞에서 보여준 전체 이미지와 더불어 엄마, 아빠, 아이, 이웃 할머니의 시선으로 각각의 장면을 이야기한다. 동일한 한 가지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풀어내 어떤 일이든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다.

 ···  이선미 글·그림, 1만4000원, 글로연

 

책장을 보면 유난히 앞으로 튀어나온 그림책이 있다. 키가 커서 다른 책들 속에서 불쑥 솟아난 책도 있다. 가로나 세로가 긴 판형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림책의 판형은 그 자체로 ‘소재이자 메시지’라고 말한다. 긴 판형의 책은 독자에게 소재를 부각시키고 긴장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기차가 등장하는 책 중 유난히 가로로 긴 판형 책이 많은 것과 나무가 등장하는 책이 세로로 긴 판형을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림책에서 이유 없는 판형은 없는 셈이다. ‘길어야만’ 더 재밌고 의미 있는 그림책을 골랐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사진
안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