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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말하다 - PART 1, 2

PLAY GROUND!

아이의 놀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놀이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놀이기구와 놀이터를 하나로 보는 고정관념이야말로 아이의 놀이 공간을 조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 아이를 위한 놀이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 놀이터를 200%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동네 공터에서 갖가지 놀이를 즐기며 온종일 뛰놀았다. 흙을 주무르고 나뭇잎을 빻으며 주변의 모든 자연물이 놀잇감이 되었고, 시냇물에 풍덩 뛰어들며 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겼다.

그 후 곳곳에 생긴 놀이터는 동네 아이들이 다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은 깨끗하게 잘 정돈되고 안전한 놀이기구가 마련된 키즈카페에 돈을 내고 들어가 놀이를 즐기곤 한다. 옆에는 늘 안전요원이 지켜보고 있어서 다칠 위험도 없다.

과연 이렇게 안전하기만 한 실내 공간에서 노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베스트베이비>가 점점 변해가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 대해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놀이터 전문가가 말하는 ‘아이가 놀기 좋은 놀이터’의 조건과 ‘해외의 이색 놀이터’, 선호하는 놀이기구와 놀이터 친구관계로 살펴보는 ‘재미로 보는 놀이터 심리학’, 놀이터를 200% 활용하는 ‘놀이기구 안 타도 즐거운 놀이법’까지 놀이터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쫀쫀하게 담아봤다.


 

PART 1 “모험과 위험을 즐기는 곳이야말로 최고 놀이터입니다”
INTERVIEW 김성원(생활기술과놀이멋짓연구소 소장,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놀이터> 저자)


우리나라 놀이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0년대 초 도시가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조성된 놀이터는 50~6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그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소와 그네, 미끄럼틀, 정글짐, 모래밭까지 어느 동네를 가도 똑같은 모습으로, 표준화된 놀이터는 이제 노후화되고 더 이상 찾는 아이들도 없어졌다.

반면에 청결과 안전성,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키즈카페나 실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몰린다. 어쩌다 추억 속 놀이터가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게 된 걸까?

아이들에게 재밌는 놀이터란 과연 어떤 곳일까?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연구하는 김성원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나치게 안전을 추구하는 부모들
요즘 아이가 있는 곳이라면 무엇보다 ‘안전’을 각별히 신경 쓴다.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한 나머지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아야 할 곳인 놀이터는 ‘위험한 곳’이 되고 말았다. 모래는 세균이 많다는 이유로 우레탄을 깔아 그나마도 아이가 자유롭게 만지고 놀 수 없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타는 등 그저 무언가를 타는 것뿐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의 창의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위험 요소가 배제된 놀이터는 오히려 창의력을 제한하는 어쩌면 더 위험한 곳일 수 있다.


김 소장은 아이는 자라면서 반드시 위험에 노출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어릴 때 놀이터에서 뛰놀며 통제된 위험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소한 위험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일본의 저명한 환경건축학 교수 센다 미츠루는 9세 이전에 소소한 위험을 경험해본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위험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부분 부모는 놀이기구를 안전하게 만들면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안전하게 만들어놓은 놀이기구를 위험하게 가지고 놀아요.

아이들에겐 정해진 틀 안에서 노는 것보다는 창의적으로 위험하게 노는 게 더 재밌는 법이거든요. 이렇게 위험과 모험을 즐기는 아이야말로 창조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습니다.”



 ->  아이에게 놀이의 자유와 권리를 주는 모험놀이터
유럽에서는 1930년대부터 획일화된 놀이터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끝에 ‘모험놀이터’가 조성됐다. 모험놀이터란 플라스틱과 철재 등 인공적인 시설물로 만든 기존 놀이터와 달리 최소한의 시설물을 활용해 아이가 놀이터를 자유롭게 바꾸어가며 스스로 노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흙바닥에 구르고 모닥불을 지피며 놀이를 창조해낸다. 모험놀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놀이기구가 고정돼 있지 않고 아이들 손에 의해 계속 바뀐다는 것.

이를테면 흙놀이를 하면서 평평한 땅을 언덕으로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면 다시 형태가 바뀌는 식이다. 유럽에서는 1946년 즈음부터 지금까지 1000여 곳, 일본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300곳에 이르는 모험놀이터가 생겼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 | 순천에서 운영 중인 ‘기적의 놀이터’ 3호 시가모노(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 전경.

창동 뚝딱뚝딱놀이터 | 서울시 최초의 모험놀이터 ‘뚝딱뚝딱놀이터’.
전래동화에서 도깨비가 외치는 ‘금 나와라, 뚝딱!’ 주문처럼 아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해
아이 스스로 다양한 놀이 활동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놀이터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고 관리한다. 하지만 안전사고와 각종 민원으로 인해 놀이기구에서 모험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고, 놀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역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결국 지자체에서도 이를 깨닫고 ‘모험놀이터’라는 타이틀을 단 새로운 놀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서울 도봉구 창동 초안산 입구의 ‘뚝딱뚝딱 놀이터’, 인천 남동구 노현동의 ‘늘솔길근린공원’, 청주시의 ‘아이뜨락’ 등이 있다.

순천에도 ‘기적의 놀이터’라는 이름의 모험놀이터 3곳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김 소장은 유럽처럼 제대로 된 모험놀이터라고 부를 만한 수준은 아직 아니라고 말한다.


“모험놀이터는 놀이시설이 아닌 놀이 활동이 중요해요. 놀이시설을 아이들이 마음대로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느냐, 놀이터에서 톱과 망치를 들고 마음껏 놀 수 있느냐 등이 모험놀이터가 되는 기준이죠.

요즘 우리나라에는 모험놀이터라며 목재나 밧줄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한 놀이터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건 모험놀이터보다는 자연주의놀이터에 가까워요. 아직 모험놀이터가 되기엔 제도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지만 놀이터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죠.”


아이들이 몰입해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놀이터의 공통점은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대로 쌓고 뭉치며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험놀이터가 재밌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주체적인 자기 판단에 의해 창의성은 절로 길러진다. 재밌는 놀이터는 결코 멋지게 만들어진 놀이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련된 놀이터를 ‘좋은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체험 프로그램이나 키즈카페는 어른들이 만든 기준을 충족시킬 뿐 아이가 원하는 진정한 놀이터는 아니지 싶다.

조금 지저분해도 일상에서 흔히 보는 갖가지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곳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최고 놀이터일 것이다.


 

PART 2 해외의 모험 놀이터
모험놀이터는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아이 스스로 결정하는 게 허락된 놀이터다. 뻔한 놀이기구 대신 삽과 망치, 나무판 등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해 자칫 쓰레기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모험심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제격이다. 해외의 이색 모험놀이터를 둘러보자.

 


1 안지요시
중국 안길 시의 대부분 유치원은 ‘안지요시’라는 놀이법을 채택했다. 이곳의 아이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실내 위주로 생활하지 않는다. 모두 유치원 뜰로 나와 땅을 파고 사다리를 걸고 드럼통을 굴린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허용하지 않을 불장난도 하고, 나무 블록이나 송판으로 다양한 구조물도 만든다. 안지요시는 몬테소리와 프뢰벨의 교육철학에 영향을 받은 안길 시의 유아교육 감독이자 교육자인 챙커진에 의해 16년 전부터 시작됐다.

안지요시를 채택한 공공 유치원은 130곳으로 현재 1만4000여 명의 아이들이 이 혁신적인 놀이 환경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놀이 장소와 재료, 사용 방법, 놀이 규칙을 스스로 정하며 교사나 부모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긴급한 위험 상황에만 대처할 뿐 안전을 위해 아이의 행동을 규제하거나 놀이 활동을 축소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위험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2 헌팅턴 비치 모험놀이터
캘리포니아 주의 헌팅턴 비치 중앙도서관 옆에 위치한 이곳은 5~12세 아이를 위한 자연주의 모험놀이터다. 아이들은 놀이터 한가운데 있는 45~60㎝ 깊이의 흙탕물 연못에서 뗏목을 타고 노는데, 여기에는 12m 길이의 밧줄로 만든 출렁다리도 있다.

또 진흙 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언덕진 곳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이나 부모들이 기증한 각종 목재와 패널을 가지고 아이들은 못, 망치, 톱을 사용해 사다리와 뗏목 등 다양한 놀잇감도 만든다.





3 케임브리지 스피니 위스베치 모험놀이터
영국 케임브리지의 야외활동단체와 캠브리지 지방정부 의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공 모험놀이터. 낡은 정크선을 이용한 실내 공간과 전통적인 놀이기구가 마련된 곳에서 건축놀이, 물놀이, 진흙놀이, 불놀이 등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회원가입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긴급 상황 시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용료는 무료다. 이곳에는 최소 2명 이상의 놀이활동가가 상주하는데 아동 활동과 관련한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4 가와와 보육원
일본 요코하마 시 카와와쵸에 위치한 가와와 보육원은 일반적인 유치원이 아니다. 유치원 앞마당을 숲속 모험놀이터로 만들어 대부분 활동을 실내보다는 바깥 놀이터에서 진행한다.

느티나무 평상, 은행나무 트리하우스, 감나무와 작은 왕국, 모래 언덕 등 모험 놀이시설로 조성돼 있다. 이 보육원의 특징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뿐 아니라 일반 보육원의 정규 수업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이곳은 집이자 작업장, 요리를 하는 부엌, 수영장, 내 손으로 농사를 짓는 텃밭 등 다양한 놀이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면서 다양한 삶의 기술과 경험을 체득한다. 이 같은 교육 방식에 동의하는 부모의 이해와 의지 없이는 보내기 쉽지 않은 곳이다.





5 버클리 마리나 모험놀이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이 모험놀이터는 1979년에 문을 연 곳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10대 놀이터 중 하나다.

또한 2016년에 <샌프란시스코> 잡지가 선정한 최고의 놀이터, <디아블로> 잡지가 선정한 가장 창조적인 놀이터이기도 하다. 이곳은 폐자재, 폐목재, 밧줄 등 온갖 잡동사니로 만들어 ‘잡동사니 놀이터’로도 불린다.

특별한 점은 아이들이 직접 작은 판잣집이나 돌출 데크, 전망대 같은 구조물을 만드는데,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작은 놀이 마을이 생긴다는 것. 이곳에서 어른들의 허락은 절대 필요치 않다.





6 유메 어린이 꿈의 공원
일본 가와사키 시에 위치한 유메 모험놀이터. 이곳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게 하되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자유롭게 노는 걸 모토로 하는 종합 놀이터다. 어린이 회의실, 사무실, 모험놀이터, 도서관, 운동장, 음악 스튜디오, 수유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놀이터를 이곳저곳으로 확장하도록 조성하여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변형해가며 놀 수 있다. 텃밭, 동굴, 옥상 놀이터, 헛간, 나무집 등을 재활용 자재로 만든 것도 특징.

 

아이의 놀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놀이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놀이기구와 놀이터를 하나로 보는 고정관념이야말로 아이의 놀이 공간을 조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 아이를 위한 놀이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 놀이터를 200%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Credit Info

기획
강지수·김도담 기자
사진
이성우,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sbank.com), 서울문화사 자료실
일러스트
이현주
참고도서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놀이터>(빨간소금)
도움말
김이경(관악아동발달심리센터 소장), 손석한(연세신경정신과 원장), 원민우((원민우아동청소년발달센터 원장), 함현진(도담언어심리발달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