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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발비용’ 스토리

아이 키우랴 집안일 하랴 힘들었던 전업주부맘, 일하랴 살림하랴 스트레스 받았던 워킹맘,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아이들로 골치 썩었던 다둥이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엄마들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시발비용’ 스토리를 전합니다.

 


최근 ‘시발비용’과 ‘탕진잼’이 2030 세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 ‘시발비용’이란 홧김에 저지른 소비를 일컫는 말로 비속어와 비용을 합친 신조어다. 지나친 스트레스와 짜증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상심리를 유발하게 마련.

즉, 시발비용이란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가령 스트레스를 받아 평소와 달리 택시를 탔을 때, 엄두도 내지 못한 비싼 화장품을 홧김에 샀을 때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쓴 시발비용은 곧 ‘탕진잼’으로 이어진다. 탕진잼이란 재물 따위를 다 써서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를 줄인 ‘잼’을 합친 신조어로 자신의 경제적 한도 내에서 소소하게 돈을 쓰며 소비의 재미를 추구하는 걸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소비문화를 두고 과거에 비해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지고 경기 불황이 이어져 스트레스를 풀 만한 경로가 제한되면서 소소한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스트레스를 풀고자 소비를 추구하는 것은 비단 미혼 남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시발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  MOM’S TALK -> 아이들이 유난히 나를 힘들게 한 어느 날이었다. 잘 먹던 밥을 바닥에 냅다 집어던지질 않나, 보지도 않을 책을 책꽂이에서 죄다 꺼내놓질 않나…. 아이들을 쫓아 이 방 저 방 다니며 겨우 정리하면 도로 어질러놓기에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빨리 귀가해 도와주길 바라며 여느 때처럼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며 늦게 귀가하신단다. 겨우 정신 줄 붙잡고 아이들을 재운 뒤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렸다.

10시에 연락하니 “어~ 한 시간 뒤에 갈게”, 11시에 연락하니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란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전화를 못 받았을 수 있다. 평소와 같은 평화로운 날이었다면 너그러이 이해했겠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두 아이 돌보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인 건 차치하더라도 밥도 한 숟갈 뜨지 못한데다 집안 꼴은 엉망인데 남편까지 연락두절이라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참다 참다 12시에 전화기를 들어 평소 남편과 둘이 먹어도 남기기 일쑤인 ‘매운 닭발’을 시켜 혼자 꾸역꾸역 먹었다. 다음 날 잔뜩 부은 얼굴과 3만2000원이라는 거액이 선명하게 찍힌 영수증을 보며 후회하긴 했지만. ID jangsk524



 2 
 >  MOM’S TALK -> 독박육아는 매일이 전쟁이다. 아이 데리고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우리 애는 또 비글(!)이라서 자리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그날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이리저리 어찌나 왔다 갔다 하는지…. 결국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힘겹게 키즈카페에 도착했건만 졸린 건지 피곤한 건지 계속 떼를 쓰는 게 아닌가. 결국 본전도 못 뽑고 도로 나와 유모차에 태우니 그제야 잠이 든 아이.

열이라도 식힐 겸 키즈카페 옆에 있는 아동 의류 매장에 들어갔다가 아기 옷을 실컷 질렀다. 영수증을 보니 무려 20만원대. 이왕 지를 거 고생한 보상으로 내 옷도 한 벌 살 걸 아이 옷만 잔뜩 사버린 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ID 조민정



 3 
 >  MOM’S TALK -> 때는 바야흐로 새해를 앞둔 12월 31일. 그날따라 참 피곤했다. 며칠 전부터 “애들이랑 안 내려오니?”라는 시댁의 전화가 걸려와 그랬을까.

좀 쉬고 싶다는 와이프 말은 귓등으로 듣는지 “할머니 집에 가면 애들도 좋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늘어놓는 남편의 말에 깊은 빡침(!)을 느껴 결국 크게 한바탕 해버린 뒤라 더 그랬을까.

아이들이 며칠간 열감기로 고생한 터라 집 안은 엉망이고 애들 돌보느라 내 몸도 만신창이. 아프고 난 뒤라 잔뜩 어리광이 늘어 종일 텔레비전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 첫째, 한겨울에 샌들을 꺼내 신고 밖으로 나가겠다며 떼쓰는 둘째.

속으로 참을 인 자를 몇 번이나 써내려가며 겨우 겨우 달래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남편은 신년회를 하고 오신단다. 아이들을 재우고 보니 어느새 새해가 밝았고 괜스레 서글퍼져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홧김에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색조화장품을 덜컥 사버렸다. 그것도 직구로 배대지(배송대행지) 비용까지 포함해 무려 100달러 넘게…. 그땐 분명 ‘애들이 조금만 더 크면 예전처럼 마스카라에 색조화장까지 풀메(!) 하고 리즈 시절로 돌아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화장대에 뿌옇게 먼지가 쌓인 고가의 색조화장품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그땐 이거라도 사서 기분이 풀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ID minadie



 4 
 >  MOM’S TALK -> 안 그래도 더운데 사방에서 ‘찜통’, ‘가마솥’, ‘폭염’을 종일 외쳐대니 죽을 맛이었다.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주부로서 아무리 무더위라도 에어컨을 팡팡 틀 수는 없는 일. 전기료 아껴보겠다고 거실에 둔 멀쩡한 1등급 에어컨을 그저 바라만 보자니 성질이 나서 외출을 감행했다.

동네 카페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실컷 쐬며 커피 마시고, 배도 고픈 김에 보쌈도 한 접시 먹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3만원이나 썼다. 그냥 집에서 에어컨 틀고 가만히 있었으면 쓰지 않았을 돈, 제대로 낭비했구나. ID 면짱



 5 
 >  MOM’S TALK -> 남편이 직장일로 너무 바빠 아이 둘을 돌보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살림은 기본이고 아이들이 눈뜰 때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감당하는 건 물론 재택근무도 하고 있다. 저녁조차 못 먹기 일쑤.

둘째를 아기띠에 둘러업고 첫째 목욕시킨 뒤 차례로 아이 둘을 재우고 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된다. 잠도 부족하고 몸도 피곤하고 먹는 것도 부실하니 그야말로 반시체(!)가 따로 없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스트레스 배출구가 돼주는 것이 바로 별다방에서 사 먹는 커피 한 잔.

모유수유를 하는 터라 디카페인 커피를 찾다 보니 주변에 마땅한 곳이 거기뿐이었다. 이름값에 더해 카페인 앞에 ‘디’ 한 글자가 더 붙으니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하루라도 건너뛰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거의 매일 찾는다.

얼마 전 첫째가 별다방 컵을 보더니 “엄마, 커피숍 또 갔어? 어제도 갔으면 이제 내일 가야지!”라고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옆에 있던 남편 들으라고 부러 “엄만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아무도 일당을 안 줘. 이건 엄마 하루치 일당이야~”라고 대꾸했다.

역시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 하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꽤 통쾌했다. 하루 5000원씩 한 달이면 약 10만 원.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무료 봉사’가 따로 없다. ID rorong




 6 
 >  MOM’S TALK -> 육아에 전혀 동참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늘 육아 스트레스에 허덕였다. 나는 친구 얼굴 본 지가 1년은 되어 가는데, 남편은 늘 혼자서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말 그대로 총각 행세다.

엊그제 저녁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기에 너무 괘씸해서 “나가려면 애들도 다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남편은 혼자만 쏙 나가버렸고 그런 남편이 너무 야속했다. 날도 더운데 저녁은 언제 하나, 남편은 친구 만나서 또 돈 쓰겠지….

홀랑 나가버린 남편 얼굴이 떠오르니 속이 뒤집어졌다. 결국 홧김에 ‘에라, 우리도 돈 쓰자!’ 하며 1만6000원짜리 피자를 시켰다. 막상 배불리 먹고 나니 쓸데없는 외식비를 지출한 것 같아 생활비 걱정이 되긴 하더라. ID 내사랑똘이



 7 
 >  MOM’S TALK -> 시어머님은 결혼 전부터 “나중에 애가 생겨도 안 맡기는 게 효도다”라며 당신 삶도 있기에 절대 손주를 돌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단 한 번도 시어머님께 부탁드린 적이 없다.

그런데 정작 아가씨는 출산 후 복직을 이유로 몇 년째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있다. 운전도 못 하시는 어머님이 무려 30~40분 거리를 버스로 매일 출퇴근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고 계신다.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했지만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자마자 괜히 짜증나고 속상하고…. 결국 한동안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던 위시리스트를 몽땅 결제해버렸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 아이들 옷이 우선이고 남편 옷까지는 챙겨도 내 옷은 늘 장바구니행이었는데 그날은 홧김에 17만 원어치 몽땅 결제! 물론 그 옷은 지금까지도 알뜰살뜰 잘 입고 다니는 중이다. ID 혜진천사



 8 
 >  MOM’S TALK -> 아이 낳고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단연 생후 30주 정도 되었을 무렵이다. 남편은 3개월째 출장 중이었는데 그 사이 명절이 껴 있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아이 업고 땀 뻘뻘 흘리며 명절 음식 만들랴, 아이 돌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당장 눈앞에서 고생하는 며느리보다 출장 중인 아들 힘들까 봐 온통 그 걱정뿐이시고, 정작 날 달래줘야 할 남편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서운함이 폭발한 그날 저녁, 그간 비싸서 구경만 했던 몽○○○ 다운점퍼를 질렀다. 분명 구입하는 시간은 몇 초 잠깐이었는데 카드 값은 영락없이 내 몫이고 후회는 오래갔다. ID maetel44464



 9 
 >  MOM’S TALK -> 때는 바야흐로 독박육아 7개월 차. 남편은 자영업으로 새벽 5시 30분에 나가 밤 12가 넘어 귀가하고 시댁과 친정 모두 일을 하시기에 돌도 안 된 아기와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어느 금요일 저녁. 하필 한여름이어서 땀을 콩죽같이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대에 남편이 집에 왔다. 눈물 나게 반갑기도 하고 여유롭게 목욕해본 지가 언제인가 싶어 이참에 제대로 좀 씻어보자며 남편에게 아이를 맡겼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 머리에 샴푸를 발랐을 뿐인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이어서 들려오는 “여보~” 소리. “좀 달래주고 있어 봐. 나 머리 감고 있어” 대꾸하니 “아, 여보! 너무 운다. 빨리 나와 봐” 하는 거다. 아니, 쌓인 피로 풀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와이프가 머리 한 번 감아보겠다는데 그 5분도 기다려주지 못할까? 아이 태어나서 같이 산 지가 얼만데! 서글픔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샴푸를 헹구지도 않은 채 벌거벗고 거실로 나와 “내가 혼자 10분 씻는 것도 사치냐!” 고래고래 소리치며 엉엉 울었다. 남편은 옷도 걸치지 못하고 서럽게 우는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그날 그렇게 난리굿판을 벌인 뒤 나는 애 아빠가 육아의 공동 책임자임에도 경제활동을 한다는 핑계로 내게만 육아의 모든 책임을 지운다는 데 경종을 울리고자, 남편이 가장 두려워하는 ‘돈 막 쓰기 신공’을 펼쳤다.

오랫동안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던 고가 시계를 남편 카드로 질렀는데 가격이 자그마치 60만원! 로○몽 탄생석 시계는 여전히 내 손목에서 예쁘게 빛나고 있지만 좋은 날, 좋은 마음으로 선물 받았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싶어 마음 한편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ID 수원김아무개

 

아이 키우랴 집안일 하랴 힘들었던 전업주부맘, 일하랴 살림하랴 스트레스 받았던 워킹맘,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아이들로 골치 썩었던 다둥이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엄마들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시발비용’ 스토리를 전합니다.

Credit Info

기획
김도담 기자
사진
안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