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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심

 


미국 플로리다로 휴가를 떠난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멋진 사진을 잔뜩 올렸다. 천혜의 자연환경, 근사한 리조트,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무엇보다 형형색색 화려한 디즈니월드를 보니 당장이라도 비행기에 올라타고 싶어졌다.

여유만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키마우스 풍선을 쥐어주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놀게 하고 싶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디즈니월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만은 아니다.

디즈니월드가 속한 플로리다 주 올랜도 지역은 홈리스가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온화한 기후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올랜도는 관광객과 홈리스, 누리는 사람과 버려진 사람들, 고급 리조트와 싸구려 모텔, 동화와 현실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양극화의 살풍경이 바로 그곳에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이야기는 바로 이 아이러니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있는 모텔 ‘매직캐슬’을 배경으로 한다.

매직캐슬은 애초에 디즈니월드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 시설이었는데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와 집을 잃은 사람들이 떠도는 곳이 되었다. 디즈니월드를 흉내 내듯 벽면에 화려하게 페인트칠을 했으나 내부에는 빈대가 들끓고 싸움과 폭력이 다반사인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모인 고만고만한 처지의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이어간다. 여섯 살 꼬마 무니와 미혼모 핼리도 비슷한 처지의 투숙객이다. 핼리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전전긍긍하다 결국 매춘까지 하게 되고 이 소문이 퍼지면서 서툴게나마 이어가던 인간관계마저 끊긴다.

이렇듯 매직캐슬에 모인 어른들의 세계는 가난과 슬픔에 찌들었지만 영화는 섣불리 동정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천진하게 노는 모습을 따라간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인근에 사는 하층민들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주 눈부신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무니와 친구들은 놀이터 하나 없는 곳에서도 어떻게든 재미난 놀이를 찾아낸다.

자동차에 침을 뱉고 구걸한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들판에 방목된 소떼를 사파리 삼아 구경하는 식이다. 물론 바람직한 놀이는 아니다. 보호자 없이 폐가와 국도변, 악어가 나오는 늪지를 떠도는 아이들은 범죄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무니는 여섯 살 아이다운 환상을 키운다. 쓰러진 나무처럼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안다. 모텔의 형편없는 위생 상태는 아이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

고작 하룻밤 여행을 떠날 때도 전용 베개에 각종 장난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니의 놀이는 경이롭고 존엄해 보일 지경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천진한 시선에서 진행되다가 종국에는 아이러니한 슬픔을 터뜨리고 만다.

딱히 불행한 사건으로 끝맺는 건 아니지만 무니의 삶이 해피엔딩이 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안다. 무니는 엄마와 헤어져 살 수 있고, 엄마처럼 가난하게 살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아이가 자란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머리가 커지면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인지하게 된다. 지금은 빈대가 들끓는 모텔에서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자신을 위한 마법의 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저릿해졌다. 양극화나 복지의 사각지대 같은 이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무니의 동심이 바닥나지 않길 기도했다.

동심을 잃는 순간 비교하고 시기하며 낙담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푹푹 찌는 여름, 사고뭉치 두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는 힘들지만, 아이들은 조금 늦게 철들어도 좋겠다고.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