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유투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연재기사

엄마, 영화를 읽다

지금도 사랑할 시간

On July 10, 2018 0

 


몇 년 전만 해도 주말부부는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가끔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심지어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주말부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란 농담까지 돈다.

꼭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도 한때는 뜨겁고 애틋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가사와 육아가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나니 일상이 마냥 관성적으로 흘러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같은 드라마를 보며 일시적으로 달달한 기분에 잠길 때도 있지만 그건 손예진과 정해인의 예쁜 로맨스일 뿐 완전히 감정 이입하긴 힘들다. 아이쿠,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건조하고 재미없는 중년이라니. 감정의 처방이 필요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3부작은 로맨스 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걸작으로 멜로 감정을 환기하기에 제격이다. 세 편은 모두 9년 간격으로 만들어졌다.

1편 <비포 선라이즈>가 20대의 열병 같은 사랑을, 2편 <비포 선셋>이 30대의 불안을, 3편 <비포 미드나잇>이 40대의 현실을 그리면서 마무리된다. 내가 <비포 선라이즈>를 처음 봤을 때가 20대였으니 나 또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를 따라 함께 늙어간 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빠져나온 듯 아름다웠던 두 배우가 세월의 직격탄을 맞은 모습은 가슴 아프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세 편 중 최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비포 선셋>을 선택하겠다. 1편보다 성숙해지면서 3편보다 열정적인 것이 진짜 어른의 로맨스라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영화는 제시와 셀린느가 9년 만에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편에서 6개월 후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자던 약속은 불발되고 다시 만나기까지 결국 9년이나 걸렸다.

작가가 된 제시는 셀린느와의 하룻밤 추억을 책으로 쓰고 유럽 홍보 투어 차 파리에 왔다가 서점에 들른 셀린느를 만난다. 제시는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셀린느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까 제시와 셀린느가 파리의 거리, 카페, 유람선 그리고 셀린느의 집을 오가며 데이트하는 80분이 곧 실제 러닝타임인 것이다.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조심스럽게 근황을 이야기하는 사이, 9년간 묵혀두었던 감정이 터져 나온다.

추억은 엇갈리고, 현실은 불만스러우며, 미래는 두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둘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포 선셋>은 가벼운 키스 신 하나 없이 오직 주옥같은 대사와 떨리는 눈빛으로 사랑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러고는 짓궂게도 감정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끝난다. 이후의 이야기는 관객들이 상상하라는 듯이.

<비포> 3부작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늘 시간에 쫓긴다. 동이 트고(비포 선라이즈), 해가 지며(비포 선셋), 자정이 넘어가면(비포 미드나잇) 마법 같은 시간이 끝날지도 모른다. 특히 <비포 선셋>에서 셀린느는 제시에게 몇 번이나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을 묻는다.

사랑할 시간이 유한한 만큼 지금 같이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증거다. 영화는 안 그런 척하지만 내심 안달이 난 두 연인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 그런 거였어. 사랑은 결핍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것이었어.

완벽한 해피엔딩 끝에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 속 문구는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랑할 시간이 유한함을 실감한다면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의미를 찾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일상에 지친 지금도 여전히 사랑할 시간이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2018년 7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bank.com)

0 Comment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