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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PD의 엄마를 말하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진화생물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산도의 넓이와 두뇌의 크기 사이에서는 일종의 군비경쟁이 급격하게 전개되었다. 만일 아기의 머리가 너무 작다면, 아기는 죽고 말 것이다. 또한 아기의 머리가 너무 크다면, 산모가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바로 아기의 두개골이 엄마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기 전에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다. 이 말은 아기는 두뇌가 충분하게 발달하기 전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물은 무엇인가?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다. 반죽이 다 익기도 전에 오븐에서 끌려나온 까닭에 아이는 몇 년에 걸쳐 경험 많은 두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가족과 친척들이 대개 그 일을 맡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아이를 세상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 최성애, 존 메디나 <베이비 브레인> 중에서.

인류의 진화를 둘러싸고 엄마와 아이 사이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어 왔다고 한다. 엄마를 죽게 할 만큼 커서도 안 되고, 아이가 죽을 만큼 작아서도 안 되는 적절한 크기의 두뇌와 산도의 넓이. 아이를 키우면서 이게 비단 진화와 출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됐다.

이건 부모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표현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은유이다. 아이를 돌본다는 건 말 그대로 ‘삶을 갈아 넣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체력, 시간, 감정까지 내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지만, 너무 많은 힘을 쏟으면 내가 소진된다.

아이를 돌볼 만큼 충분하게, 그러나 내가 죽지는 않을 정도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아이도 살고 나도 산다. 마치 적절한 두뇌 크기를 찾으며 진화해온 인류의 역사와 같다. 얼마큼 진화해야 이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자꾸만 습관처럼 무리를 하게 된다. 직장에서도, 육아 전선에서도 과한 에너지를 쏟아 부은 탓인지 결국 건강에 탈이 났다. 수술이 필요한 병이 생겨서 당분간 회사에 병가를 내고 쉬어야 한다.

긴 휴가를 앞두고 하나둘씩 주변을 정리하는 중이다. 계획했던 일은 접고, 맡고 있는 일도 대신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 마치 유사 죽음 체험 같다. 당연한 일이지만 ‘절대적인 내 일’이라는 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진즉에 내려놓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고희영 작가의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제주 해녀 삼대의 이야기이다. 도시로 떠났다 돌아온 ‘초보 해녀’인 엄마가 어느 날 무리해서 전복을 따려고 하다가 숨이 부족해 정신을 잃는다.

평생 제주에서 물질을 해온 ‘베테랑 해녀’ 할머니는 그날 이후 바다에 나가는 엄마에게 매일매일 말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베테랑이라는 건 ‘내 숨’이 얼마큼인지를 알고 적절할 때 바다에서 빠져나올 줄 아는 사람인가 보다. 쉴 줄 모르는, 에너지 분배에 실패한 초보 엄마는 결국 이렇게 강제로 주저앉혀졌다.

수술이 끝나면 제주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욕심내지 않고 딱 나의 숨만큼만 머무는 법을 제주에 가면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동안 <엄마를 말하다>라는 코너를 통해 아이 키우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나눌 기회를 누렸다. 마지막 시간에 힘주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모두 무리하지 말자고. 그건 아이도, 가족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니 부디 각자의 숨만큼만 하자고. 오늘도 더 하지 못해, 더 주지 못해, 더 사랑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자책하고 있을 동료 부모들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게 나의 진심이다.

 

장수연 PD는요…

장수연 PD는요…

딸 둘의 엄마이자 페미니스트, 취미는 독서, 장래 희망은 작가인 MBC 라디오 PD. 

책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냈으며, 현재 팟캐스트 <쓰리맘쇼>를 진행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강지수 기자
장수연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