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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육아일기

내 딸의 취향

On June 08, 2018 0

 


‘늦게 얻은 자식이 효도한다’더니 딱 우리 집 막내 얘기다. 예민한 유아기를 보냈던 큰애, 까칠했던 둘째와 달리, 불혹에 얻은 막내는 방긋방긋 웃는 게 특기다. 오죽하면 예방접종하던 날 의사 선생님이 “넌 병원에 왔으면 울어야지 웃기만 하느냐”며 면박을 주었을 정도다.

반면 나날이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큰애와 둘째는 최근 우리 부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특히 옷에 대한 호불호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금쪽같은 아침 시간 대부분을 옷 고르는 데 할애하니 말해 무엇 하랴. 아이들이 자기주장이 강해졌다는 건 제 나름의 확고한 ‘취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큰애는 공룡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뜬다. 사내아이들은 으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 번쯤은 공룡박사가 되는 모양이다.

한글로 읽기도 힘든 각종 공룡 이름을 달달 외우고, 그놈이 그놈 같은 공룡들을 귀신같이 척척 구별해내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팬티부터 겉옷까지 공룡으로 ‘깔 맞춤’을 즐겨 한다. 그러나 이리 극성인 큰애도 ‘핑크’에 꽂힌 둘째에 비하면 양반이다.

오는 8월이면 만 3세가 되는 둘째는 상의, 하의, 양말까지 제 마음에 드는 것으로 빼입어야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핑크가 있다. 시작은 외할머니가 사준 ‘핑크 발레복’이 우리 집에 오면서부터다.

레이스가 하늘거리는 민소매 핑크 발레복을 본 순간 둘째는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핑크 발레복을 앞에 두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둘째는 “핑크! 쪼아!”를 수도 없이 남발하더니 처음 며칠 동안은 빨래도 못 하게 하고 주야장천 그 옷만 입고 다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서라도 멈췄어야 했지만, 나는 그저 하나뿐인 딸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결국 아이를 위해 양말이며 속옷까지 죄다 핑크로 맞춰주다 보니 이제는 먹는 것도 핑크만 고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편의점에 가면 젤리나 귀여운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과자를 고르던 둘째는 엊그제 생전 먹지도 않던 꿀꽈배기를 집어 들었다. 속으로 ‘저건 내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계산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포장에 분홍빛 꽃이 그려진 ‘봄 한정 패키지’가 아닌가.

무슨 스타벅스도 아니고 블라섬 상술이 편의점 꿀꽈배기까지 통할 줄이야! 이뿐 아니다. 분명 180원짜리 야쿠르트 한 병이면 빨대 꽂고 희희낙락했던 녀석이건만, 얼마 전 핑크 포장의 600원짜리 프리미엄 야쿠르트를 발견하고부터는 180원짜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려서부터 ‘무난’이란 슬로건 아래 조금이라도 취향을 드러낼라 치면 “남자는 너무 까탈스러우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내 딸의 ‘핑크빛’ 취향이 적잖이 낯설고 당황스럽다.

내 경우에는 서른이 넘어서야 내가 좋아하는 색을 알게 됐는데, 둘째의 핑크 발레복처럼 이탈리아에서 물 건너온 빨간색 중고 스쿠터를 만나고부터 한동안 ‘레드’에 꽂혀 살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드러내놓고 마음껏 레드를 즐기지는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익숙지는 않지만, 난 우리 딸의 취향을 앞으로도 응원해주고 싶다. 내 유년 시절에는 특별한 취향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하나도 개성이 되는 지금은 취향 그 자체를 소비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스티브 잡스도 살아생전 말하지 않았던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문제점은 어떤 취향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물론 그의 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핑크! 쪼아!”를 외쳤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김성욱 씨는요…

김성욱 씨는요…

5세, 3세, 신생아 세 아이의 아빠로 육아휴직 중. 라테파파를 꿈꾸었으나 육아휴직 일주일 만에 주부 습진 예방용 핸드크림 바를 여유조차 없다는 걸 깨달은 이 시대의 참육아인이다. 

Credit Info

기획
김도담 기자
김성욱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

2018년 6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김도담 기자
김성욱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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