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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FAMILY

On May 25, 2018 0

사람에 따라 ‘가족’의 의미는 다를 테지만 누구에게나 이 단어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좋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저마다의 이야기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네 가족을 만나봤다.

 


PROLOGUE…
아이를 키우면서 마냥 행복하면 좋으련만, 삶이란 생각처럼 물 흐르듯 평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사실은 부모라면 누구나 통감할 터. 집안일과 육아에 치이면서 돈을 벌고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간다.

물론 힘에 부칠 때도 많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뿐. 싱글맘, 다문화가정, 다둥이 가족, 세계 여행하는 가족 등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네 가족을 만나봤다. 이들의 육아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1

 

여행의 즐거운 기억이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고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아이와 함께 어디로 떠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여행이 주는 행복을 전파하는 오재철·정민아 부부
무려 400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온 오재철·정민아 부부. 평범한 결혼 생활을 거부하고 여행을 택한 이들은 여행의 매력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딸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행을 이어나갔다. 아이는 백일을 강원도의 한 캠핑장에서 맞이했고, 걷지는 못해도 아기띠에 매달려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간 다녀온 나라만 21개국, 길 위에서 보낸 날을 세어보니 500일이다. <함께, 다시, 유럽>과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 그동안 다녀온 여행 이야기로만 출간한 책이 세 권이다.

이처럼 남다른 여행 경력은 부부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다. 여행 작가로서 명성도 얻고 여행에서 배운 것을 강연을 통해 많은 이들과 나누게 된 것.

‘전문’ 여행 가족으로 알려지면서 자주 듣는 질문은 아이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고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오재철 씨는 아이와 같이 여행한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아이는 최악의 여행 파트너예요. 취향, 식성, 수면 패턴, 여행 호흡 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아이랑 함께하는 여행이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와 여행 방식을 맞추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돼요.

아이 때문에 굳이 외국까지 나가서 쭈그리고 앉아 길가에 핀 민들레를 봐야 할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민들레는 제가 이제까지 접했던 민들레가 아니더라고요.

물론 꽃의 모양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꽃을 아이랑 같이 바라보는 게 너무 즐겁고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아이가 없었더라면 이런 기분은 못 느꼈을 것 같아요.”


 

부모님과 함께 여행한 캐나다 웨웰스 그레이 주립공원. 대가족이 여행하는 만큼 신경 쓸 것이 많지만 그만큼 추억도 많이 쌓인다. 


캐나다 로키 산맥의 아이스필즈 파크웨이는 차만 타면 짜증을 내던 딸 아란이까지 감탄하는 곳이다.

엄마 정민아 씨도 남편과 같은 생각이다. 부부끼리 여행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 아이 데리고 여행을 하면 한 지역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곳의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에도 들르게 되는데 뜻밖의 재미난 일이 많이 벌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제가 외국어에 그리 자신 있는 편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랑 다니니 대화를 나눌 일이 생겨요. 놀이터에 가면 같이 노는 아이들에게 ‘안녕, 이거 재미있니?’ 같은 짧은 인사라도 하게 되니까요.

아이는 저보다 훨씬 친화적이에요.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러웠는데 이젠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게 여행의 큰 즐거움이 됐어요. 아이 덕분에 저도 많이 바뀌었죠.”


여행은 오재철·정민아 부부에게 가장 큰 행복감을 안겨주는 일이다. 여행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얻은 것은 보너스. 오재철 씨는 여행 덕분에 지금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고 믿는다.


“여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강해진 것 같아요. 사실 몇 년 전 종아리에 종양이 생겨 육종암 수술을 받고, 지난달에는 위암 수술도 받았거든요. 가족력이 있어서 솔직히 암 진단을 받고 걱정도 많았지만 예상보다 간단한 수술로 제거할 수 있었어요.

방사능 치료도 받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거든요. 의사도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하셨는데, 저는 여행이 제게 행복감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 덕분에 병이 커지지 않고 쉽게 이겨냈다고 생각해요.”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마음은 기억한다.’ 아직은 어려서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할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부부가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한마디다.

여행의 즐거운 기억이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부부는 아이와 함께 어디로 떠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부부는 다음 여행지를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북부로 정했다. 캠핑카 한 대 빌려서 유럽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표정이다.

아이가 졸려 하면 바로 재울 수 있고, 현지에서 장을 봐다가 요리도 해 먹을 수 있는 캠핑카 여행은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 제격이다. 게다가 숙박비와 외식비를 아낄 수 있어 장기간 여행하는 대가족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아이 데리고 여행을 하는 건 준비할 것도 많고 여행지에서도 고생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한 번 용기를 내어 도전하면 아이와 여행하는 매력에 푹 빠질 걸요? 그러니 저희를 부러워하지 말고 한번 떠나보세요!”






 

2

 

형제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배려심이 깊은 편이에요. 밖에서 주변 어른들을 만나면 의젓하다는 얘기도 자주 듣고요.
무엇보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서 저희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 같아 든든하고 안심이 돼요.

더할수록 사랑과 행복이 커지는 서지희·최영훈 부부
자녀가 둘 이상인 집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다둥이 가정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올해로 결혼 11년 차를 맞은 서지희·최영훈 부부는 신혼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알뜰살뜰 서로를 아낀다.

두 사람 사이에는 11세인 첫째 하준이를 시작으로 하윤(9세), 하루(7세), 하담(4세), 하솜(14개월) 오남매가 있다. 결혼 후 계획과 다르게 다섯 아이를 낳고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엄마 지희 씨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볼 때면 곁에 와준 게 언제나 감사하고 기적처럼 느껴진다.


“사실 다섯 아이 모두 계획하고 낳은 건 아니에요. 하늘의 뜻이었는지 의도치 않게 오남매를 낳게 됐죠.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오남매네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다. 교회 전도사인 아빠 영훈 씨가 새벽예배를 위해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서고, 차례로 엄마와 아이들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며칠 전부터 자그마한 일을 시작한 지희 씨가 출근하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아이들의 등교를 챙긴다. 아이가 다섯이라 손이 많이 갈 것 같지만 의외로 엄마 아빠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첫째 하준이가 동생들을 나서서 보살피는 덕분이다.


“이제 14개월 된 막내는 하준이가 거의 다 키운다고 봐도 될 정도예요. 집에 돌아오면 두 아이 먹이고 씻기는 일은 첫째가 도맡아 하니까요. 아침에 등교할 때도 첫째가 둘째와 셋째랑 같이 가고, 아빠는 넷째와 막내만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면 되니 훨씬 수월하죠.”


둘째 하윤과 셋째 하루 역시 하준이를 따라 어린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서로서로 돕는 모습을 보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형제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배려심이 깊은 편이에요. 밖에서 주변 어른들을 만나면 의젓하다는 얘기도 자주 듣고요. 무엇보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서 저희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 같아서 든든하고 안심이 돼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곤 한다. 어디서나 밝은 모습의 아이들. 


막내 하솜이가 태어난 뒤에 아이들은 서로를 더욱 알뜰히 챙긴다. 


일곱 명이 모두 모이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이들이 곁에 와준 게 언제나 감사하다는 서지희·최영훈 부부.


물론 가족이 많아서 생기는 불편함도 있다. 서로를 살뜰히 잘 챙기지만 아이들이다 보니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

그리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특별한 외식이나 나들이는 꿈도 못 꾼다. 특히 부부에게 항상 마음에 걸리는 건 아이를 하나하나 세심히 돌봐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섯 아이 모두 부모의 사랑을 한창 독차지할 나이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손이 부족하다 보니 일일이 챙겨주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도 생기고요. 그럴 때 정말 미안하죠.”


그중 첫째 하준이에게 더욱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하다. 자라면서 동생이 넷이나 생긴 하준이는 또래와 달리 유난히 의젓하고 어른스럽다. 엄마 아빠를 도와서 먼저 동생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보면 지희 씨는 고맙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상처입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심리 상담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첫째가 많이 특별하다고 해요. 제가 봐도 남달라요.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인데 동생들 챙기는 것부터 저를 도와주는 것까지 웬만한 어른 못지않거든요. 막내 하솜이를 낳을 때도 바빠서 옆에 있어주지 못한 남편 대신 첫째가 보호자 역할을 해줬어요. 출산 후 몸 추스르는 것부터 산후조리까지 하준이가 나서서 도와줬죠.”


식구가 많다 보니 역할 분담은 자연스러운 일. 막내 하솜이를 제외하고 네 아이 모두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청소나 설거지는 아빠 영훈 씨가, 음식과 빨래는 엄마 지희 씨가 하지만 씻고 옷 입는 건 아이들 혼자서도 거뜬히 해낸다.

가끔 큰애나 둘째가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둘째나 셋째가 설거지를 하는 날도 있다. 아이들이 서로를 곧잘 챙기는 데다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도 종종 받는 덕분에 부부는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거나 고생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는 날이면 사람들의 시선과 애정어린 관심을 한 몸에 받곤 하는데,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손수 나서서 도움을 주신다고.


“한번은 아이스크림을 두 개만 사서 다섯 아이가 나눠 먹은 적이 있는데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아이들 하나하나 다 사주시더라고요.

또 옷을 사러 가면 ‘나라에서도 안 해주는데 자기라도 도와야겠다’며 선뜻 할인해주시는 분도 있고, 식당에 가면 주문한 음식보다 더 푸짐하게 주시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받을 때마다 우리 아이들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답니다.”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친구가 되어줄 다섯 남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남매네에 웃음과 사랑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3

 

다른 싱글맘이나 한부모들이 저를 보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멋진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제가 실패를 반복하며 힘들게 걸어온
그 길을 누군가는 또 걷고 있을 테죠.
저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하고 나하고 윤민채 씨와 아들 성현이
윤민채(25세) 씨는 올해 여섯 살이 된 아들 성현이와 알콩달콩 지내는 싱글맘이다. 성현이가 민채 씨를 찾아왔을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 엄마가 되기엔 다소 이른 나이였음에도 그녀는 엄마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열아홉에 성현이를 가져서 스무 살에 낳았어요.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그 마지막 날 밤에 자취방에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새해 첫날은 모두에게 뜻 깊은 날이잖아요. 제 또래 아이들은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미래를 얘기하고, 대학 생활을 꿈꿀 때였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죠.”


어떠한 경제적 도움도, 육아를 지원해줄 사람도 없었다. 오롯이 혼자였던 민채 씨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거주 문제였다. 출산 후 원룸에서 성현이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일찍이 학교를 그만두고 틈틈이 일해 모아두었던 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민채 씨는 아이가 5개월일 때 미혼모 시설에 들어갔다. 2년 정도 시설에 머물며 열심히 돈을 모아 월세를 얻었고, 다시 직업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건만 경력단절에 아이까지 있는 민채 씨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일을 구할 수가 없으니 생활비는 또다시 바닥을 드러냈다. 그나마 성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는데다 이들 모자의 상황을 아는 친구가 우유며 간식이며 이것저것 보내준 덕분에 비교적 잘 지냈지만, 민채 씨는 3개월 동안 5㎏이 빠질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루는 한부모지원센터에서 케이크를 받아왔는데 집에 먹을 게 그것뿐인 거예요. 배고프다는 성현이에게 줄 게 없어 케이크를 먹였어요. 엄마가 되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죠.

물론 성현이는 ‘우와, 빵이다~’ 하면서 마냥 좋아했지만요.(웃음) 결국 3차 시설인 모자원에 들어가 다시 2년간 열심히 돈을 모았어요. 지금은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해 생활하고 있어요.”


어렵게 거주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성현이는 민채 씨가 퇴근할 때까지 꼼짝없이 어린이집에 맡겨져야 했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어 포기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몸이 하나밖에 없어 속상하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은 했을 거예요. ‘만약 내 몸이 세 개였다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성현이도 돌볼 텐데…’ 하면서요.

대학교도 너무 가고 싶고, 또래 친구들과 모여 공부하고 수다도 떨고,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요. 남들에겐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이 저에겐 너무 간절했어요.

오죽하면 한때 소원이 ‘아무것도 없어도 좋으니 딱 열두 시간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으니까요. 학장 시절엔 공부라면 질색했는데 말이죠.(웃음)”


 

민채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성현이와 가족여행을 떠난다. 


엄마에게는 늘 애교를 풀장착(!)하는 성현이. 


성현이의 두 돌 생일을 기념하며 촬영한 가족사진. 


얼굴부터 서로를 향한 마음까지 똑 닮은 민채 씨와 성현이 모자.


워낙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결혼은 언제 했어?”, “애 아빠는 뭐 해?” 등 호기심 어린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면 “혼자 키워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는 민채 씨. 사회적 편견 탓에 주위 시선을 신경 쓰는 싱글맘이 많지만 민채 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편견 때문에, 혹은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요. 숨기는 순간 ‘숨겨야 할 일’이 되거든요. 저는 재혼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이 너무 창피했어요.

근데 제가 숨기려 할수록 더 기억에 깊이 남고, 부끄러운 일이 되더라고요. 제 아이에게는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당당하게 굴었죠.”


민채 씨는 당연히 성현이에게도 아빠의 부재를 숨기지 않았다. 하루는 네 살이 된 성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족 그림을 그려 와서는 ‘아빠’를 설명하다 아차 싶었는지 ‘이쁜 거’라고 말을 바꾸더란다.

민채 씨는 “성현이는 아빠가 왜 없는지 궁금해?”라는 말에 아이가 그렇다고 답하자 “우리 가족은 엄마랑 성현이 둘이야. 우리는 지금 아빠가 없지만 나중에 더 좋은 아빠를 만날 거야”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성현이는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후로 누구보다 밝게 자라는 중이다.


한눈에도 사랑이 가득 넘쳐흐르는 아이로 보일 만큼 밝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덕인지, 쏟아지는 뽀뽀 세례 덕인지 성현이는 한창 고집을 피울 시기임에도 떼쓰는 법이 없고 말투부터 행동까지 애교가 철철 넘친다.

그런 성현이가 민채 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에너지다. 조금이라도 우울한 모습을 보일라치면 “엄마, 힘내세요. 제가 도와줄게요”라고 의젓하게 말을 건넨다.


“다른 싱글맘이나 한부모들이 저를 보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멋진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제가 실패를 반복하며 힘들게 걸어온 그 길을 누군가는 또 걷고 있을 테죠. 저와 같은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고충을 겪은 그녀가 최근 시작한 일은 싱글맘이 보다 빨리 자리 잡도록 도와주고 힘들 때마다 찾아와 기대는 쉼터가 되어줄 ‘한부모성장연구소’라는 단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제 고작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라며 수줍게 웃는 민채 씨. “엄마, 꼭 멋진 엄마 되세요.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응원하는 성현이가 옆에 있기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며 행복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민채 씨의 두 눈이 어느새 생기로 반짝인다.





 

 

훗날 다문화가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다문화가정에도 큰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다방면에서 숨겨진 재능을 펼칠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랑스러운 블라시안 가족 김효진·다니엘 부부
귀염둥이 딸 하리(14개월)를 키우는 김효진 씨와 다니엘 씨 부부. 나이지리아에서 온 다니엘 씨는 복싱 선수의 꿈을 키우며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서 컨테이너 수출업을 하는 삼촌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됐다.

“저희가 만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3년 전에 친구랑 아프리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외국인은 대부분 먼저 인사도 건네고 말도 거는 편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웃으며 헤어졌죠.

그런데 다음에 또 우연히 만나게 된 거예요. 그때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친구처럼 자주 만나 점심도 먹고 영화도 보고 지인들까지 함께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연인이 되었죠.

그렇게 1년 정도 만나다 하리를 임신하게 되었고 결혼으로 이어졌어요. 재밌는 건 저희가 처음 만난 날과 하리가 태어난 날이 같은 날짜라는 거예요.(웃음)”


효진 씨는 직장을 다니다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다.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하리와 보내고 있기에 육아는 거의 효진 씨의 몫. 물론 남편은 퇴근 후 피곤해도 꼭 하리랑 놀아주려고 한다. 주방놀이를 하거나 말을 태워주거나 아프리카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춤도 춘다.

워낙 장난기가 많은 터라 장난을 치다가 아이를 울려서 효진 씨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이란다. 가끔 효진 씨가 스트레스를 풀 겸 남편과 하리만 남겨놓고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둘이서 밥도 잘 챙겨 먹고 노는 모습을 보면 남편이 무척 대견(!)스럽다고.


“육아 방식은 아프리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부모는 아이를 키울 때 늘 조심스러워하며 유리 다루듯 품에 끼고 키우는데 남편은 좀 다르더라고요. 아이를 아무런 이유 없이 시시때때로 안아주지 않아요.

습관적으로 아이를 안아주거나 떼쓸 때 자꾸 받아주면 밖에서 엄마를 힘들게 한다면서요. 저는 하리가 아직 어리니까 떼를 써도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는데 남편은 아무리 아기라도 안 되는 건 ‘안 돼!’라고 단호하게 가르치며 훈육하는 편이에요.”


 

하리가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틈 날 때마다 여행을 다닌다. 


명절에 한복을 입고 방문한 친척집에서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하리.


잊지 못할 하리가 태어난 감동의 순간! 


하리를 잘 돌봐주는 남편이 있어 든든하다는 효진 씨.


요즘엔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TV에도 국제 커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기에 아프리카인을 낯설게 생각하지 않는다. 효진 씨 역시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딱히 인종차별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 적이 많았다고 말한다. 하리가 태어난 뒤로는 유모차를 끌고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으며 관심을 보일때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에 대한 선입견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이지리아도 빈부 격차가 심해서 그렇지 부유한 사람들은 호화스러운 집에 살아요. 하지만 TV에서 빈곤한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소개하거나 후원 방송을 하다 보니 선입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빈곤층, 중산층, 상위층이 다 있는데 왜 백인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흑인은 가난하다는 인식을 갖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아프리카라는 나라 자체가 환경이나 개발 면에서 열악한 건 사실이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잖아요. 그 사람의 나라가 가난하다고 깔보고 무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효진 씨는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싫었단다. 대부분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면 가난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TV에서 비춰지는 다문화가정은 가난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은 ‘어렵게 산다’는 편견을 갖는 듯하다고. 오히려 다문화가정, 혼혈로 불리는 것보다 흑인과 아시안이 만나 결혼한 가정을 뜻하는 ‘블라시안’이라고 불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모델 활동을 많이 해요. 개성 있고 끼가 넘치는 아이들은 일찍부터 SNS 스타가 되기도 하고요. 물론 다문화 아이들이 잡지 화보나 방송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뿌듯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아이들이 나아갈 길은 다양한데 말이죠.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하리가 스포츠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훗날 다문화가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다문화가정에도 큰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하리의 미래는 하리가 정하는 것이지만요. 앞으로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다방면에서 숨겨진 재능을 펼칠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람에 따라 ‘가족’의 의미는 다를 테지만 누구에게나 이 단어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좋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저마다의 이야기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네 가족을 만나봤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강지수·김도담 기자, 전미희(프리랜서)
사진
이성우, 안현지

2018년 5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심효진·강지수·김도담 기자, 전미희(프리랜서)
사진
이성우, 안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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