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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PD의 엄마를 말하다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방법

 


1 구슬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를 지나는데 아이들 눈에 번뜩, 이채가 서렸다. 기어이 아이스크림을 한 컵씩 쟁취한 두 아이는 카시트에 흘리며 묻히며 먹으며 까르르 웃었다.

컵 안에 가득 차 넘실거리는 아이스크림 알갱이에 불안해진 나는 “하율아, 엄마가 한 숟갈만 먹을게?” 물음과 동시에 수저를 빼앗아 한 스푼 푸욱 떠서 삼켰다. 곧이어 하율이의 오열이 시작됐다.

“싫어~ 싫다고! 엄마, 내가 싫다고 했는데 왜 먹어~!”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는지….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한 숟갈은 줄 수 있는 거 아니니? 너 이거 엄마가 사 준 거다?” 나의 긴 변명에 비해 아이의 주장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내 아이스크림인데 내가 허락하기 전에 엄마가 먹었다는 것, 본인 소유물을 부당하게 침탈당했다는 것. 결국 나는 미안하다며 항복을 선언했다. 앞으로 하율이의 음식을 먹고 싶을 땐 반드시 허락을 득한 뒤에 먹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2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지 8개월째. 이제 아이들은 나보다 남편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일곱 살 큰아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머리가 나쁘지? 그렇지? 하하하~ 아빠는 머리가 나빠서 자꾸 깜빡깜빡 까먹는다고~.”

반복되는 놀림에 남편은 정말로 기분이 상해버렸다. 그 순간에 하율이는 ‘어리고 연약한 고작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골탕 먹이기에 충분한 지능을 갖춘 인간이었다. 남편은 웃음기를 거두고 딸아이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율아, 그렇게 말하면 아빠 기분 나빠. 그만해.” 그 뒤로 하율이는 한 번도 “아빠는 머리가 나빠”라고 놀리지 않았다(그러나 아직 분위기를 파악할 만큼 충분히 지능이 발달하지 않은 둘째가 “아빠 머이(머리) 나빠?” 하고 해맑게 웃었다).



3 28개월 둘째는 아직도 엄마 쭈쭈 만지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 유아 성교육 전문 강사를 뵐 일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여쭤봤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엄마니까 만져도 돼.’ 이건 별로 좋지 않은 말이에요. ‘엄마니까 만져도 돼’가 아니라, ‘엄마가 허락했으니까 만져도 돼’가 맞는 거죠.” 이상은 선생님은 스킨십을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엄마가 지금은 좀 피곤해서 뽀뽀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네”라고 담백하게 말하라는 것. 그래야 아이는 ‘거절은 그저 거절일 뿐’임을, ‘나에 대한 거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거다. 더불어 상대의 기분을 존중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4 하루는 둘째에게 정색하고 이야기를 했다. “하린아, 엄마 쭈쭈는 집에서만 만지는 거야. 밖에서는 만지면 안 돼. 엄마 창피하단 말이야. 알겠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후,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또 슬금슬금 손이 들어온다. “하린아, 밖에서는 만지는 거 아니라고 했지~!” 타박하듯 말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대꾸한다.

“엄마, 여기 엘리베이터 ‘안’이잖아~!” 28개월짜리의 이 논리적인 반박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짧은 고민 후에 인심 쓰듯 말했다. “그래,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만지는 거 오케이. 단, 다른 사람 없을 때만이야. 알겠지?”


알아들었을까? 이렇게 하면 내 딸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장수연 PD는요…

장수연 PD는요…

딸 둘의 엄마이자 페미니스트, 취미는 독서, 장래 희망은 작가인 MBC 라디오 PD. 

책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냈으며, 현재 팟캐스트 <쓰리맘쇼>를 진행하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강지수 기자
장수연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