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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한민국 며느리들은 ‘사표’를 냈나?

최근 서점가에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은 신간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시월드에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며 꿈과 인생을 찾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며느리 사표>, 큰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동명의 책 <B급 며느리>, 60만 팔로어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연재를 마친 만화 <며느라기>…. 우리 안의 가부장제를 되돌아보고 비판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며느리들의 반란 아닌 반란을 담아내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화제의 책 3권을 살펴보며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며 열광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  며느라기
며느리를 전면에 내세운 출판물 중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최초의 콘텐츠는 <며느라기>일 것이다.

약 8개월에 걸쳐 SNS(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연재된 <며느라기>는 평범한 여성 민사린이 결혼을 한 후 그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부장제의 폐단을 인식해나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세밀하게 포착해냈다.


남들처럼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했고 드디어 한 가정을 이룬 우리의 주인공 민사린. 결혼을 하면 영원한 ‘내 편’이자 사랑하는 한 남자를 얻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결혼 생활은 자꾸만 예기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에는 결코 자신의 일이라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은 물론 사돈의 팔촌에 이르는 다양한 관계까지 덤으로 얻게 돼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민사린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시댁 어른들께 잘 보이려고 인터넷 레시피를 검색해 생신상을 차려내고, 명절이면 남자 여자가 다른 상에 앉아 밥을 먹는 낯선(?) 경험을 21세기에 마주하게 된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의구심을 갖는다. 굳이 좋은 며느리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스스로 착한 며느리, 예쁨받는 며느리를 자처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가….


타이틀 ‘며느라기’ 안에 힌트가 있다. 며느라기는 며느리가 된 이후 진입하는 일정한 시기를 뜻한다.

우리 생애 주기에 사춘기, 갱년기가 있듯 결혼 후에는 누구나 ‘며느라기(機)’에 들어가게 되고 그때부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댁 식구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고자 노력한다(*사전에 등록된 용어는 아니고 만화 속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정의)는 것.


사이다와 고구마를 반복하며 독자들의 수많은 의견과 댓글이 달렸던 만화 <며느라기>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결혼식 당일로 돌아간 주인공. “며느라기를 받겠습니까?”라는 주례의 질문에 또박또박 “아니요”를 외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  B급 며느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는 동명의 에세이 <B급 며느리>는 만화 <며느라기>보다 한결 ‘쎈’ 이야기다.

선호빈 감독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순도 200% 리얼 다큐멘터리’를 표방했다는 카피에 걸맞게도 현실 속 인물들이 영화 안에 그대로 등장한다.


선호빈의 아내 김진영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할 정도로 똑똑하고 친정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딸이었지만 선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서 ‘B급’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순간에 B급 처지가 되어버린 이유는 고부 갈등을 겪는 와중 누구나 마음속에는 품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 ‘싫어요’를 당당하게 내뱉었기 때문.

아내 김진영은 며느리에 대한 모든 억압과 착취에 맞서겠다고 선전포고를 던진다. 한편 평생 가부장적 질서에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시어머니로서는 관습을 단칼에 거부하는 며느리를 이해할 수 없다.


한 가정의 적나라한 이야기가 영화와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당연히 한 보따리의 사연이 있었다. 고부 갈등을 겪을 때마다 말이 바뀌는 어머니를 참을 수 없었던 김진영은 영상으로 그 증거를 남겨달라고 남편에게 요청한다.

진영의 남편이자 감독인 선호빈은 가족들이 뷰파인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보다 객관적이 될 거란 생각에 평화를 모색하고자 최후 수단으로 카메라를 꺼내든다. 말하자면 일종의 ‘채증’이었던 것이다. 장장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총 297회에 걸쳐 이루어진 촬영.

솔직히 사람들이 재밌어할지, 극장에 올라갈 수 있을지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집에서나 고민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어 본격 제작에 들어간 것.


상영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책 <B급 며느리>에 실린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이제 김진영 씨는 시댁에도 가고 명절도 거부하지 않는다.

모든 갈등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도 아니지만 가족은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금씩 물러나 타협을 하게 되었다.

며느리의 돌직구가 시월드를 깨부수지도 못했고 가부장제를 전복하지도 않았지만 꿈쩍 않던 어른들을 조금씩 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며느리 사표
3권의 책 중 가장 최근에 나온 <며느리 사표>는 가부장제 속에서 23년을 숨 막히게 살아온 50대 주부 영주 씨의 ‘진짜 영주’ 되찾기 프로젝트다. 책 표지에는 ‘며느리 역할을 그만두고 한 인간으로서 살겠습니다’라는 멘트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아를 잃고 숨 막히는 결혼 생활을 해오던 영주 씨. 이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이혼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이혼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놀란 남편은 이혼을 거부하며, 이제는 며느리로만 살지 않을 거고 더 이상 밥상을 차리지 않겠다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장장 2년에 걸쳐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은 짧은 ‘졸혼’ 기간을 거쳐 생에서 가장 평온한 때를 보내며 ‘영주 되찾기 프로젝트’ 미션을 무사히 클리어 중이라는 ‘해피엔딩’을 담은 이야기.




 ->  그리고…
이 책들을 읽다 보면 ‘소리 내어 외치는 며느리’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한 그녀들의 고군분투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갈등을 겪는 순간 문제를 크게 만들기 싫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좋은 게 좋지 않느냐는 이유로 방관자를 자처한다.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인 우리 스스로가 방관자의 길을 택하기도 하고, 고부 갈등을 단순히 며느리와 시월드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내 편 아닌 남편 역시 방관자가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잘못된 것에 침묵하지 않는다. 최근 이렇게 ‘을’의 위치라 여겨지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마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페미니즘의 바람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늘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들의 주인공처럼 며느리 사표를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가족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인 사람도 있고, 가족과 어른들께 정성을 다하는 게 무엇보다 큰 기쁨인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불합리한 관습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든 적이 있다면 그때는 잊지 말자. 내 행동이 결국 변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며느리 사표>의 영주 씨는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했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몰라서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갈등의 터널을 헤쳐나간 후 비로소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영주 씨의 남편은 집안일을 시작했고, 시부모는 제사와 명절 의식을 간소화했으며, 버거웠던 차례상 차리기는 성묘로 대신하게 되었다. 당연히 맏며느리의 의무는 없어졌다. 변화만이 결국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최근 서점가에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은 신간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시월드에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며 꿈과 인생을 찾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며느리 사표>, 큰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동명의 책 <B급 며느리>, 60만 팔로어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연재를 마친 만화 <며느라기>…. 우리 안의 가부장제를 되돌아보고 비판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며느리들의 반란 아닌 반란을 담아내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화제의 책 3권을 살펴보며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며 열광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Credit Info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안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