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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화를 읽다

한 박자만 늦춰볼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곧 시간과의 전쟁이다. 에너지 넘치는 유치원생 아들 둘을 둔 나는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잔소리를 한 소쿠리씩 쏟아낸다.

“유치원 늦겠다, 빨리 일어나라.”, “엄마 오늘 바쁘니까 빨리 밥 먹어라.”, “방이 이게 뭐니, 빨리 장난감 치워라.”, “내일 아침 늦잠 자겠다, 빨리 자라.” ‘빨리 빨리’ 주문은 남편에게도 향한다.

밤늦게 퇴근해 느긋하게 식사와 술을 즐기는 남편이 영 마뜩잖아 기어이 한소리 하고야 만다. “당신이 프랑스 사람이야? 무슨 저녁을 두 시간씩이나 먹어?”

나도 사감 선생처럼 변해가는 내가 싫지만 육아에서 퇴근해야 엄마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악역이다. 잘 먹고 잘 살기, 혹은 느긋한 ‘삼시세끼’의 삶은 반복되는 노동과 밥벌이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때에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지만 정갈하게 차린 밥상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농촌의 자급자족 삶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극장가에서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편의점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현대인들에게 킨포크(Kinfork) 라이프는 영원한 로망이다. ‘킨포크’는 원래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한 음식, 여유롭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그 기폭제가 된 것 중 하나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어로 ‘갈매기’란 뜻을 지닌 카모메는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일식당이다.

이곳의 간판 메뉴는 일본에서 흔하디흔한 주먹밥. 주인 사치에는 이곳이 검색해서 애써 찾아가는 명소가 아닌,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카모메 식당>은 적막하던 사치에의 식당이 여러 사람과 사연이 모이는 곳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나 서울 연남동이었더라도 크게 상관없겠지만, 아무래도 핀란드 하면 떠오르는 여유로움이 있다. 핀란드에는 거리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뿐더러, 그곳 사람들은 에어기타 연주대회나 휴대폰 멀리 던지기 대회 같은 시시콜콜한 것에 재미를 느낀다.

그만큼 느긋하고 여유롭다. 디자인 강국답게 거리는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아름답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은 핀란드의 이런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눈을 감고 세계지도에서 콕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무작정 오게 되었다는 미도리, 20년간 병든 부모를 간호하며 청춘을 소비한 중년 여인 마사코,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핀란드 여자까지, 카모메 식당은 그곳에 들른 사람들을 기꺼이 안아준다. 조심스러운 듯하면서도 예의바르게,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으로.

<카모메 식당>은 별다른 사건 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다. 뜨거운 열정도, 급격한 냉정도 지양한 채 현실의 삶을 담담히 보여준다. 극적인 맛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잠시나마 삶의 속도가 한 박자 느려지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영화 덕분에 한동안 헬싱키에 일본인 관광객이 대거 늘어났을 정도이니 킨포크 라이프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갖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뭘 하겠어요?” 사치에가 미도리에게 묻는다.

잠시 생각하던 미도리가 대답한다. “글쎄, 제일 먼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요.” 맞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우리가 안간힘을 쓰며 일하는 이유도 결국 잘 먹고 잘 사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춘곤증까지 겹쳐 나른해지는 봄날, 잠시나마 영혼이 충만해지는 시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카모메 식당의 단골 메뉴였던 커피와 시나몬롤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신민경 씨는요…
여섯 살, 네 살배기 두 아들을 키우는 만년 초보 엄마이자 생계형 프리랜서 라이터. <스크린>, <무비위크> 등 영화잡지 기자로 일했고 지금도 틈틈이 보고 읽고 쓴다.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한보미 기자
신민경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www.gettyimagesba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