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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진애의 '집에 대한 생각'

“행복해지려면 공간 감수성을 키워라.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집 놀이’를 해라.” 최근 건축가 김진애가 집필한 <집 놀이 그 여자 그 남자의>(반비)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간’과 ‘집’에 대한 오랜 고민과 사색을 담은 이 책은 ‘건축가’ 김진애보다는 ‘생활인’ 김진애가 전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열심히 일하며 달려온 커리어우먼이자 아내, 엄마, 주부라는 생활인으로서의 내공이 담겨 더욱 따뜻하고 쿨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Chapter 1  가족이 행복해지는 키워드 ‘집·놀·이’ 
집 놀이를 하면 부부는 덜 싸우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랄 수 있단다. 집 놀이야 말로 집이 보다 더 ‘집 같아’지는 방법이란다. 가족이 행복해지는 집 놀이에 대한 일문일답.


 Q  최근에 출간한 책 <집 놀이>는 시시콜콜한 인테리어 팁을 제안하거나 주거 트렌드를 반영한 여느 인테리어 실용 서적과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지금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게 하고, 공간 감수성을 일깨운다고 할까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다운 집’, ‘집다운 집’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 어서 나도 우리 집에 뭔가를 실행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담당 편집자가 ‘단언컨대 기존에는 없던 책’이라고 하던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 기존에는 없던 책이라는 건 제가 잘 모르겠고요.(웃음) 아무래도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실용적인 팁을 담은 책이 많이 나왔죠. 그런 책들도 참 유용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뭔가를 가르치려는 듯한 책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각각의 집마다 나름의 상황이란 게 있잖아요. 제각각 여건에 맞춰 고민해보고 자신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독자 입장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에서 무언가 우러나오길 원했죠. 남들은 건축가가 하는 집 얘기이니 쓰기 쉬웠을 거라고 생각하던데 실은 이런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한 5년간 고민했고 원고 쓰고 편집하는 데에만 꼬박 2년이 걸렸으니까요.


 

여자와 남자가 서로 열심히 사랑해야 사회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요. 함께 하면 결국
모든 게 놀이가 되죠. ‘집 놀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 생각해요.



 Q  ‘집 놀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단어가 참 재미나요. 뭐든 놀이가 된다면 그게 곧 행복일 텐데 ‘집 놀이’는 무슨 뜻인가요?

-> 글쎄요, 저는 사람들이 여태까지 그 말을 안 쓴 게 오히려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해 가정을 이룬 ‘그 여자 그 남자는 어떤 집에 살까?’라는 생각이 늘 고민하던 화두였는데, 우연히 ‘집 놀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평소에 생각해 온 집에 대한 철학을 담은 키워드가 바로 집 놀이거든요. 집 놀이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예요.

게다가 24시간, 365일 할 수 있는 놀이죠. 어떻게 하면 더 평등하게, 더 행복하게,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집 같은 집’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게 이 책의 주제예요.


행복이란 건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빈도의 문제거든요. 엄청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보다 얼마나 자주 행복감을 느끼느냐에 따라 우리네 삶의 질이 좌우돼요.


소소한 일상에서 얻는 즐거움, 아옹다옹하는 싸움, 작은 궁리,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가 샘솟는 순간…. 이런 것들이 행복감을 높여주죠.


내 집을 갖게 되면 해야지, 돈 좀 더 벌면 해야지, 집을 더 넓힌 뒤 해야지, 애들 크면 해야지, 시간 여유 생기면 해야지…. 이런 생각은 다 핑계예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요모조모 궁리하고 무엇이든 실행하는 게 ‘집 놀이’지요.



 Q  최근 ‘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정말 커졌어요. 포털사이트에 ‘온라인 집들이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포스팅이 눈에 자주 띄는데, 예쁘게 꾸며놓고 사는 집이 참 많구나 싶어요.

또 어떤 때는 ‘매일매일 이렇게 깔끔하게 유지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요. ‘혹시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
온라인 집들이요? 저도 열심히 봅니다. 보면서 ‘자기 집 오픈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놀라죠. 왜냐하면 저는 정리 안 하고 살거든요.(웃음)


온라인 집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고, 재밌고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타까운 건 하나같이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라는 거예요. 자기만의 개성이나 특성을 추구하기보다 ‘이렇게 꾸미는 걸 좋아하고 멋지게 생각하나 보다’ 싶어요.



 Q  이런 포스팅에 으레 따라붙는 타이틀이 있어요. ‘카페 같은 집’, ‘호텔 같은 집’이라는 거요. ‘편안한 집’이란 점을 강조하려는 표현이겠지만 카페 같은 집, 호텔 같은 집이 정말 좋은 집인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집은 ‘집 같은 집’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집 놀이> 책을 보며 더욱 확신이 들었어요.

->
집은 집이지 ‘○○ 같은 집’이라는 말, 모욕 아닐까요. 이거는 ‘딱 너희 집이다’ 라는 게 최고의 칭찬이죠. ‘카페 같은 집’이란 표현이야 집 공간 일부를 카페처럼 꾸몄다는 말일 테니 그렇다 쳐요. 하지만 ‘호텔 같은 집’은 가장 나쁜 집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호텔 같은 집이 물론 있긴 하죠. 예를 들면 마스터베드룸이 그래요. 전형적인 호텔 공간을 집 안에 들인 건데 저는 그거 보고 웃습니다. 극대의 판타지를 아파트 안에 넣어놓으려 한 거거든요.

양실 있고, 한실 있고, 욕실 따로 있고, 드레스룸까지…. 집의 40평은 차지할 텐데 전형적인 나쁜 공간, 쓸데없는 공간이죠. 
그런 공간이 있으면 전 애들한테 주라고 해요. 가령 자녀가 둘 이상이고 청소년이라면 굉장히 재미난 공간이 될 테니까요.

독립해서 부모랑 따로 사는 거랑 똑같거든요. 굉장히 재미나게 그곳에서 지낼 거예요. 
물론 호텔 같은 집이 나쁜 집이란 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에요. 집이 호텔 같아서 좋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개인의 취향에 대해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외국 사람들을 보면 호텔만 옮겨 다니며 지내는 사람도 꽤 있고, 아예 레지던스 호텔에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다 각자 삶의 방식인 거죠.



 Q  ‘아주 오래 산 집 같아요’라는 말이 집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 했는데, 오래 살았다는 말에 함축된 의미가 있는 거겠죠?
-> 한마디로 오래 산 것 같은 집은 ‘자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집’을 말해요.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집이죠.

보통 사람들은 새 옷을 쫙 빼입은 모습을 보고 칭찬하지만, 진짜 귀족 신사 숙녀라면 오히려 새 옷처럼 안 느껴지게 입는 게 진정한 멋이란 걸 알아요. 집도 마찬가지예요. 사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고 개성이 느껴지는 공간, 오래 
오래 살아온 것 같은 집이 멋스럽죠.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걸 참 많이 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산 것 같다”고 하면 “뭐야, 우리 집이 낡았다는 소리야?” 하고 오해해요.

오래 살았는데도 삶의 흔적이 안 보인다면 좋은 집이 아닌데 말이죠. “와, 진짜 새집 같아요”라는 말은 ‘너 너만의 품격, 개성이 없구나’라는 소리예요.



 


 Chapter 2  쑥쑥~ 아이가 자라는 집 
<집 놀이 그 여자 그 남자의>의 2장 ‘아이가 쑥쑥 자라는 집’ 부분은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밑줄 그어가며 읽어볼 알토란같은 내용으로 꽉 차 있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실질적인 아이디어까지 제안하기에 순간 ‘이 책이 육아서였던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는 집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들어봤다.



 Q  어린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으레 볼 법한 풍경이 있어요. 놀이매트로 무장한 바닥, 소위 ‘국민 ◦◦’라는 타이틀이 붙은 각종 장난감이며 승용완구, 소형 미끄럼틀과 실내 그네가 꽉 차 있죠. 그래서 흔히들 아기는 ‘인테리어 테러’의 주범이란 말도 하는데 전문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 놀이매트요? 저도 손자 손녀가 석 달 와 있는 동안 깔았습니다. 매트는 기본이죠. 당연히 필요해요. 아이 있는 집에 ‘아이’가 집 공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아이의 길고도 복합적이면서 흥미 만점의 성장 과정이 바로 ‘집’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니까요. 다만 시장이 만든 것들에 놀아나지 말라는 얘기는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언제나 늘 유행이라는 게 있어요.

아파트도 유행이 있고, 한 번 트렌드가 되면 온통 매체에 소개되고, 마케팅에서도 엄청 떠들어대죠. 그런 속에 있다 보면 ‘내가이거 안 해도 되는 건가? 나만 빼고 다들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아이 있는 집도 마찬가지예요. 이거 저거는 꼭 갖춰야 한다고 얘기들 하니 결국 천편일률적이 되는 거예요. 
물론 근본적으로 시장은 꼭 필요하죠.

다만 시장에 휘둘리진 마세요. 휘둘리지 않고 자기 식대로 잘만 이용하면 정말 좋거든요. 특히 요즘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좋은 제품이 정말 많아요. 그걸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하게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고 이용하느냐는 각자의 몫이죠.



 Q  아이를 위한 집의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는데, 온 집 안 곳곳이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집은 잘못된 집이라고요. 그리고 집을 놀이터 삼아 아이가 저지른 ‘온갖 말썽’이 집에 생생한 이야기를 불어 넣는다고요.

->
아이들의 유전자 속에는 놀이에 대한 잠재력이 어마어마해요. 그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죠. 그런 환경이 아이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고 창의력을 키워주거든요. 만약 아이가 집에서 말썽을 전혀 안 피운다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봐요.

책장에 꽂힌 온갖 책을 죄다 꺼내놓고, 선반에 올려둔 것을 쓰러트리고, 서랍을 다 헤집으며 사고치는 게 당연하니까요. 안 그러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죠.


장난감이 꼭 있어야만 노는 아이도 문제가 있어요. 장난감이 없더라도 잘 놀 줄 알아야 해요. 책 한 권을 다 찢어도 좋아요. 두루마리 화장지는 또 얼마나 신나는 놀잇감인데요. 손수건 하나만 있어도 신나게 놀 수 있고요. 그렇게 놀면서 아이의 머릿속에 응용력이 생겨요.

그러니까 아이가 집을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로 여기게 해줘야 해요. 
구조가 좀 복잡하거나 어질러진 집은 아이들한테 특히 매력적이에요. 그 안에서 약간의 무질서함이 느껴지거든요.

아이들 입장에선 자기가 뭔가 해볼 틈이 보이는 거죠. 그 순간 숨바꼭질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요. 만약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확 트이고 깨끗하기만 한 집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진 않을 거예요.


아이들이 어질러진 집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해요. 이것저것 어질러진 공간은 일단 건드릴 게 많거든요.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더럽힌다고 야단맞지 않을 거라는 걸 아이도 본능적으로 알아요.

애들이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어지르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예요. 부모의 쓸데없는 청소 강박과 결벽, 공부 집착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는데 참 안타까워요.


그렇다고 ‘조금 복잡한 집’이 요즘 많이들 선호하는 미니멀 라이프랑 반대 개념은 아니에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해요.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데 가면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미니멀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경험 있을 거예요.



 Q  하지만 대부분 부모는 복잡한 집, 난장판인 집을 참기 어려워해요. 굳이 본인이 청소 체질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집이 복잡하면 자기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
세상이 여자를 길들이는 가장 고약한 방법이 청소 중독증에 걸리게 만드는 거예요. 저는 깔끔 떠는 성격은 아닌데 제 어머니가 전형적인 ‘깔끔과’였어요.


저요? 어릴 때부터 반항했죠. ‘깔끔 떠는 거로 나를 길들이려 하지 마라. 내 공간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엄마가 내 방에 안 들어오면 상관없지 않으냐. 단,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은 엄마를 따르겠다. 딱 그 정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다.’ 선언했어요.

저는 청소 잘 안 해요. 정리는 시스템에 맞춰 잘하는 편이지만요. 집이란 게 어차피 외부 사람한테 공개하기 위한 장소는 아니잖아요. 손님 초대하고 집들이 할 때 잠깐씩 치우면 되죠. 저는 청소 자주 하지 말란 말을 30년째 하고 산답니다.(웃음)

청소를 자주 하면 청소 효과가 없어지거든요. 어질러졌을 때 한 번씩 치워줘야 청소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여자들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청소하고 반짝거리게 닦느라 거기에 힘 빼는 거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소위 말하는 청소과는 아니에요. 사람은 정리과(청소과), 요리과가 있다는 게 제 생각인데 청소과는 치우고 정리하는 데 능한 사람, 요리과는 막 흐트러트리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에요.

근데 흐트러지는 게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 키우는 일정 기간만큼은 ‘요리과’인 게 바람직하죠. 
그래서 아이들한테 제일 좋은 건 마구 쏟아버리고 다시 담을 수 있는 박스예요.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른들이나 청소에 신경 쓰고 치우지 애들은 더러운 거 하나도 신경 안 써요. 그런 걸 어른 관점에서 기준을 세워놓고 자꾸 씻기고 치우는 거 아이들한테도 좋지 않죠.



 Q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우리 집 그려보기’를 제안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자녀들이 어릴 적에 집 안을 샅샅이 파악하게 하려고‘집 그리기’를 숙제로 내주셨다고요.

아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교육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공간에 대해 잘 아는 게 왜 중요한가요? ‘아이가 공간이나 집 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부모는 아마 드물 듯해요.


->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공간감각이라는 게 살면서 정말 큰 도움이 되니까요. 앞서 숨바꼭질 이야기를 했죠? 삶 자체가 숨바꼭질의 연속이에요. 숨고, 뭔가 찾아내야 하고, 긴장하고, 도망가야 하고. 평생 그 반복이에요.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스스로 해결하며 삶의 비결을 터득하고 적응해나가야 하죠. 이때 공간감각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데 이 감각을 가장 많이 키울 수 있는 곳이 어딜까요? 바로 집이에요. 우리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요.

그 안에서 공간에 대한 역학을 배우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돼요. 
보통 ‘교육’ 하면 문자, 그러니까 글 쓰고 숫자 쓰는 거, 딱 여기 정도까지 생각해요. 조금 더 나아가면 음악, 그림이고요. 여기서 그림은 입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는 3차원 세상이에요.

음악은 좀 더 입체적이죠. 이런 게 다 공간감각에 해당돼요. 공간이란 건 3차원이고 공간에 대한 감각이 익숙해지면 사고를 입체적으로 하게 되죠. 입체적이란 건 이쪽에서도 바라보고, 저쪽에서도 바라보는 거잖아요.

여러 각도에서 보는 연습을 통해 입체적인 사고력이 생기게 마련인데 공간감각은 집에서부터 기를 수 있어요. 
리즈닝(reasoning), 그러니까 합리적인 사고가 자연스레 따라와요. 예를 들어 아이에게 자기 방을 그려보라고 해보세요.

아이가 평소에 속으로 ‘우리 집에서 내 방이 제일 작은 것 같아’라고 생각해왔을 수 있겠죠. 근데 실제로 그림을 그려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해요.

내 방이 제일 작은 것 같긴 했는데 직접 그려보니 진짜 작은 거죠. 그렇게 실제로 확인하면 내 방이 제일 작다는 것에 합리적인 근거를 갖게 돼요.



 Q  가족에게, 아이에게 좋은 집을 정의한다면?
->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행복한 집’이 단연 최고의 집이죠. 사람들은 제가 결혼도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했어도 이혼했을 거라고 해요.

당연히 애는 절대 없을 거라고 하고요. 그런 제가 결혼해서 애 낳아 키우며 잘사는 거 보며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답니다.(웃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제 부모님이 서로를 참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한번은 언니 친구들이 말하길 우리 엄마 아빠를 보면 두 분 사이에 신뢰와 사랑의 눈길이 오간다는 거예요. 중고등학교 때 그 얘기를 듣고선 사랑까진 모르겠고 두 분이 서로를 참 많이 믿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뭐 생각해보니 사랑하니까 애도 그렇게 많이 낳았겠지만요).

부모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져요. 한때 제가 우리 아이들이 짝을 안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적이 있어요. 제가 1남 6녀 복닥거리는 틈바구니에서 자라서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일찌감치 생각했어요.

그 부작용으로 제 자식들을 지나치게 독립적으로 키웠어요. 초등 4학년 때부터 자기가 밥을 해서 먹었으니까요. 그렇게 독립적으로 자란 터라 혹시나 짝에 대한 동경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런데 어릴 때 부터 진작에 제 짝을 잘 찾았더라고요.


부모가 자신들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면 정작 아이들은 외로움을 약간 느껴요. ‘이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구나’ 하면서 짝을 빨리 찾는 것 같아요. 자기 나름의 생활공간과 세계를 만들고 싶어지니까요.

이제 와 돌이켜보니 독립적으로 키우는 게 굉장히 괜찮은 방법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부부가 서로를 남녀로서 존중하고, 위해주고, 어떨 땐 의견이 달라 싸우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잘 놀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이들한테 제일 좋고 또 가장 중요해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는데도 정작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우리나라 여자 남자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여자 남자가 열렬히 사랑을 안 하니 아이들도 짝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거 아닐까요?


하루하루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쳐야 해요. 그리고 그 시작은 특별한 여행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매일 집에서 보내는 일상의 삶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제 철학입니다.


 

“행복해지려면 공간 감수성을 키워라.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집 놀이’를 해라.” 최근 건축가 김진애가 집필한 <집 놀이 그 여자 그 남자의>(반비)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간’과 ‘집’에 대한 오랜 고민과 사색을 담은 이 책은 ‘건축가’ 김진애보다는 ‘생활인’ 김진애가 전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열심히 일하며 달려온 커리어우먼이자 아내, 엄마, 주부라는 생활인으로서의 내공이 담겨 더욱 따뜻하고 쿨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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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전 기자
사진
이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