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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함께 성장한 이야기

On March 29, 2018 0

터키로, 라오스로, 아프리카로! 세 살배기 아들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 곳곳의 변방을 찾아다닌 여행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작가 오소희. 2004년 첫발을 떼었던 엄마와 아들의 여행은 어느덧 14년 차에 접어들었다. 세상의 모든 이동수단은 다 타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기차와 트램에 열광하던 꼬마 중빈은 어른이 되면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어린이 교육정책을 세우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지닌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자랐다. 작은 아이가 속 깊은 소년이 되기까지, 젊은 엄마였던 작가가 아들의 기나긴 사춘기를 거쳐 여유로운 미소를 짓기까지…. 긴 세월 함께한 여행은 이들 모자를 어떻게 성장시켰을까.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안현지 자료사진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북하우스)

 


 ->  들어가는 글 ,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
오소희 작가는 <베스트베이비>와 인연이 있다. 부암동 산자락 작은 아파트에 살던 10여 년 전 인터뷰를 하며 처음 만났고, 이후에는 아이와 함께한 여행기를 펴내며 엄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가였기에 기회가 닿을 때면 지면을 통해 만나왔다.

최근에는 작가의 블로그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은 엄마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담은 책 <엄마 내공>(북하우스)을 펴냈는데, 이 책은 작가 혼자 해법을 제시한 책이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나누며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결과물이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이후 작가는 <엄마 내공>의 ‘육아지’ 버전의 칼럼을 <베스트베이비>에 꾸준히 연재했다. 이 세월 덕분에 드문드문하게나마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작가와 아들 중빈의 현재진행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저는 우리 동네가 제일 좋아요. 산에 제 비밀 기지도 있어요”라고 자랑하며 산등성이를 누비던 어린 중빈은 이제는 엄마 키를 훌쩍 넘은 비율 좋은 고등학생으로 자랐고, 굵은 목소리에 턱 밑이 제법 거뭇거뭇해진 상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간 쌓아온 경험을 자산으로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따뜻한 이웃들을 소집해 여행과 봉사가 결합된 독특한 콘셉트의 ‘발런 트래블링(Volunteering While Traveling)’을 기획하는 소년 활동가로 성장했다.


공부하고 입시 준비만 하기에도 벅찬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매 방학마다 짐을 꾸려 저 멀리 발리의 작은 마을로 봉사 여행을 떠난다니!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곳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껏 이어온 특별한 여정이라 하니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다.

학원을 며칠이라도 빠지면 큰일이 날 듯한 공부 지상주의 한국에서, 그나마 짬이 나면 온라인 게임이나 이성 친구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을 법하건만 열일곱 고등학생과 학부형 엄마를 저 멀리 발리의 작은 마을로 떠나게 만든 원동력은 무얼까.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행복한 여행자 오소희·오중빈 모자를 만나 여전히 ‘진행 중’인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TALK 1  오소희, 오중빈입니다
Q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스테디셀러 작가이자 ‘아이와의 배낭여행’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여행 장르를 만든 개척자로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면?

 엄마 오소희  첫 책은 2007년에 출간한 터키 여행기 <바람이 나를 데려다주겠지>다. ‘세 살 아이와 떠난 대책 없는 1.5인 여행기’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1.5인이라 지칭했던 이유는 아이가 엄마의 절반만 했기 때문.

물론 지금은 엄마 키를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다. 중빈이가 만 세 살이 되던 해, 길고 긴 육아의 터널을 어느 정도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며 짐을 꾸렸다.

터키,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에서의 기록을 담은 여러 권의 여행기와 에세이, 소설, 동화를 펴냈고, 최근에는 강연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


 아들 오중빈  2001년 3월 24일, 대한민국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만 세 살이 되던 해 엄마와 함께 터키, 미얀마, 라오스, 시리아 등지로 여행을 떠났다.

한마디로 나는 엄마가 작가로서 했던 일들의 역사이며, 적어도 그 역사 속의 꽤 비중 있는 인물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비교하면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때의 여행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여행은 보통 사람들이 떠나는 방식과 크게 달랐다. 여행 원칙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되도록 현지인을 많이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저렴한 숙소에 묵었고, 가장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먹었으며,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유명 관광지엔 가지 않고 작은 도시나 마을을 돌아다니는 매력적인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푹푹 찌는 40℃ 더위에 다섯 시간씩 트럭 뒤 칸에 앉아 라오스 북부를 달릴 때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한국의 내 방 반밖에 안 되는 작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서부터 우정이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아들과 친구가 되는 식 말이다. 우리의 여행은 학생이 되고나서도 쭉 이어졌다.

방학이면 배낭을 꾸렸는데 친구들이 학원 다니고 공부하느라 바쁠 때에도 아무렇지 않게 여행을 다닐 수 있던 건 부모님이 조금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덕분인 것 같다.

당신들이 학창 시절에 엄청난 경쟁을 직접 경험하였기에 아들인 나를 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자 했다. 덕분에 친구들이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세상이라는 넓은 학교에서 경험을 쌓고 배울 수 있었다.




 # TALK 2  엄마와 아들의 같은 여행, 다른 기억
Q 어린아이랑 여행을 간다고 하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애가 나중에 기억을 할까요?”일 거다. 아이와 함께 여행해서 좋았던 점,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엄마 오소희  아이와 여행하는 동안 ‘엄마 여행자’여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좁은 보폭 덕분에 좀 더 느리게 여행할 수 있었고, 더 깊게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의 눈빛은 더 다정했다.

엄마가 되어 여행을 떠나 보니 가장 먼저 그곳의 아이들이 보였고, 그곳의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빈이 역시 어린아이다 보니 친구를 원했는데, 축구공을 들고 ‘나랑 놀자’ 외치면 얼마든지 또래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대책 없이 1.5인 여행자로 떠돌며 세상에 한 발 다가설 때 세상도 우리에게 다가와 줬다. 잠든 아이를 대신 안아주며 친절을 베풀어줬고, 집으로 초대해 따뜻한 차를 내줬다. 가난한 살림이었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베푼 것보다 언제나 더 많은 선물을 받았다.


중빈이는 세세하게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드문드문 남는 기억은 있지만 자세히 떠올리지는 못한다. 한창 탈것에 꽂힌 꼬마 아들을 위해 얼마나 트램을 찾아 헤맸는지 모르는데 그 기억조차 안 난다고 할 땐 살짝 억울하지만,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는 거다.

그러면서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문화재, 여행지의 수도나 그 나라의 정보를 아는 건 중요치 않다. 여행의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피부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낯설게 여기지 않고 먼저 다가가는 것,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이런 게 바로 여행의 기억과 경험이 만들어낸 거다.


그래도 첫 비행의 추억은 확실히 기억난다는데, 강렬해서 기억나는 게 아니라 실망해서 확실히 기억이 난단다.(웃음) 에피소드의 진위는 다음과 같다.

아들 오중빈 엄청나게 거대한 쇳덩이가 절대 날아오르지 못할 거라 장담했는데 신기하게도 날아올랐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아, 이제는 하늘나라로 입장하는 문이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천사도 있고 신도 있을 거라고 한껏 기대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올라가고, 구름을 통과하고, 그게 다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의 기억에 대해 사실 어린 꼬마애가 기억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꼬마 아이이니 한국의 빌딩과 터키 블루 모스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흔한 접시였는지 오래전 인류가 남긴 의미 있는 접시였는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경험은 남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 터키에 갔을 때는 너무 어렸지만,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과 달리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그곳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따랐던 것 같다.





 # TALK 3  낮은 곳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다
Q 현지인의 삶으로 들어가 ‘사람 여행’을 하는 건 엄마와 아들이 언제나 지켜온 여행 원칙이다. 그들의 삶에 어우러지기 위한 노력과 에피소드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축구공과 바이올린’은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 목록이었다고.

 아들 오중빈  처음에는 그곳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누어줄 학용품과 풍선을 잔뜩 챙겨갔다. 하지만 선물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결국 선물을 손에 넣지 못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아무리 써도 사라지지 않는 오래오래 남는 선물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play’였다. 함께 어울려 노는 것(play), 그리고 음악을 연주(play)하는 게 선물이 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여행에 축구공과 바이올린이 늘 함께하게 됐다. 둘은 정말 최고의 도구다. 특히 축구공은 확실했다! 아이들이 모인 곳으로 공을 ‘뻥’ 차면 그 아이들이 다시 내 쪽으로 공을 패스한다.

그러면 자기소개 같은 거 없이도 우린 이미 축구 경기를 하고 있고 친구가 되어 있다. 여섯 살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은 작은 연주회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악기였다.

게스트하우스의 앞마당에서, 야자수 아래서 어디서든 즉흥 연주회가 열리곤 했다. 주로 낮에 같이 축구를 했던 아이들과 그 애들의 부모님이 멋진 관객이 되어주었다. 음악은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고 언어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엄마와 나의 여행 코스에는 언제나 고아원이나 학교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연주를 하거나 음악을 알려주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식이었다.

한번은 안데스의 한 학교에서 루이스라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일주일간 음악 선생님이 된 적이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의 심정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엄마 오소희  중빈이가 어릴 때 ‘얘가 커서도 고아원에 오는 걸 좋아할까?’ 싶어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바랐다. 그리고 지금은 예상대로 되었다.

심지어 ‘막연히’가 아니고 매우 구체적으로. 내가 어미로서 아들에게 주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번듯한 대학도, 번듯한 직장도 아닌 ‘즐겁게, 나누며 사는 삶’이다.





 # TALK 4  우붓, ‘페르마타 하티’의 작은 기적
Q 발리의 작은 마을 우붓의 ‘페르마타 하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연히 발걸음이 닿아 들어가게 된 그곳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이케어 센터(고아원)였다. 그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며 밴드도 만들었고, 나중에는 봉사와 여행을 결합한 ‘발런 트래블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음악은 서로를 잇는 멋진 매개체가 돼주었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함께 연습하고, 공연을 하고…. 나중에는 탤런트 쇼에 출전해 수상도 했다.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이야기여서 ‘페르마타 하티의 작은 기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아들 오중빈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이 흥미로운 여행지였다. 하지만 한 번 갔던 곳을 재방문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 규칙이 깨진 건 2013년 6학년 때였다.

발리를 경유해 인도네시아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발리에 도착한 그날부터 꼬빡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움직일 수도 없었고 숨 쉬기조차 힘든 날도 있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곳곳을 여행하자는 계획은 미뤄졌고, 발리 우붓의 작은 마을을 산책하곤 했다.

그렇게 마을 구석구석을 탐색하다 ‘타만 페르마타 하티’라는 간판이 걸린 곳에 들어갔다. 그곳은 고아원이었는데 우리나라 고아원이랑은 조금 달랐다.

데이케어 센터로 부모가 없거나 한부모 가정의 7~19세 아이들이 모여 방과 후부터 생활하는 시설이었다. 이곳의 원장인 아유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선뜻 안내해줬고, 엄마와 나는 여느 때처럼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며 다 같이 어울렸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곳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음악’이다. 이 나라의 전통음악이 있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음계를 전혀 몰랐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음악을 배웠던 것이다.

그래서 ‘도는 1, 레는 2, 미는 3’ 등으로 음계를 설명해주었는데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은 정말 열심이었다. 반듯한 자세로 앉아 배운 걸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노력하고 노력했다.

아유가 다음에도 음악을 가르쳐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을 정도다. 그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상할 정도로 그곳의 아이들이 잊히지 않았다.


엄마와 자주 ‘페르마타 하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는 다음 여행의 목적지로 자연스럽게 우붓을 떠올렸다. 같은 곳을 다시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 매년 우붓의 페르마타 하티를 방문하고 있다.


두 번째 찾아간 해에는 핸드벨과 리코더를 가져갔는데, 첫 연습을 마친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고아원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배움에 목말랐던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호텔에서 공연을 펼쳐 수익을 냈고 그 돈으로 다시 악기를 사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분야에서도 재능을 나눈다면 더 많이 성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는 한국인도 자주 가는 관광지다. 그래서 발리를 여행하다가 봉사하고 싶은 분이 있을 때 고아원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고 ‘발런 트래블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엄마 오소희  중빈이가 열두 살인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을 만나왔다. 공연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총괄 책임은 중빈이 몫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페르마타 하티의 음악 밴드는 중빈이와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아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동아리처럼 시작된 공연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중빈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이 발리에 있는 동안 혹시 발리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개인이나 가족 중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가 있으면 재능 기부든, 물품 기부든 직첩 참여하도록 자신이 연결에 나서겠다고 한 것이다.

중빈이 블로그(blog.naver.com/heavyocean)에서 그간의 발런 트래블링 기록과 참여한 사람들의 리뷰 등 많은 이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빈, 네 방학 기간이 끝나갈 무렵 넌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어.
한국으로 가는 널 위해 우리는 작은 이별 파티를 준비했지.
오랫동안 준비해온 탤런트 쇼는 네가 떠난 뒤 공연을 하게 됐어.
공연을 본 사람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쳐줬어.

어떤 사람은 감동적이었다며 울기까지 했단다.
공연 준비를 통해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아이들의 생활은 나날이 바뀌어갔어.
이전에 아이들은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기도 했는데
이제 페르마타 하티의 아이들은 활기가 넘쳐.
음악은 정말 치유 기능이 있는 것 같아.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고아원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된 것도 너무 기뻐.
그 덕분에 음악실도 정비하고, 악기도 새로 장만할 수 있었거든.

무엇보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이 점점 자신감을 갖고 강인해지는 것,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이끌어나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가슴 벅차.

중빈, 네게 정말 고마워.

- 페르마타 하티에서 온 아유의 편지 





 # TALK 5  작가 오소희, 오중빈의 ‘책 이야기’
Q 터키, 라오스, 아프리카, 남미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책마다 담긴 작가의 감정선을 함께 느낀다. 터키 편에서는 일상에서 벗어난 엄마의 설렘, 그리고 육아에 대한 태도를 정립해가는 작가의 모습에 공감하게 된다. 더불어 어린 동반자와의 귀여운 신경전에 중간 중간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라오스 편에선 현지인의 삶 속으로 한 걸음 깊숙이 들어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따스하고 행복했는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덩달아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졌다. 아프리카 편은 ‘세상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인세의 절반을 기부해 아프리카에 도서관을 짓는 ‘하쿠나마타타 프로젝트’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엄마 내공>을 썼고, 젊은 엄마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지금 작업 중인 책도 그 연장선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이 궁금하다.

 엄마 오소희  아프리카에 다녀오면서 ‘아, 이제 무언가를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여기서 끝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때 인생의 방향이 확고히 다져진 것 같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엄마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쓰고 있는 책 역시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엄마들에 관한 한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담고, 엄마들의 행복과 성장에 대한 얘기도 담았다.

그간 여러 자리를 통해 엄마들을 만나며 느낀 건 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 역시 기나긴 과정을 직접 통과하고 나니 알게 된 것들, 그리고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하고 있다.




Q 페르마타 하티에서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이 지난겨울 출간됐는데, 중빈 군의 첫 책은 열 살 되던 해 엄마와 함께한 90일간의 남미 여행을 기록한 그림일기를 엮은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책 말미에 ‘나도 세상을 보고 기억으로 가져가지만, 나도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라오스의 꼬마들에게 풍선을 나누어 주고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던 아이가 어느덧 어엿한 청소년이 되어 블로그에 자신의 아이디어에 동참해줄 이를 찾았다. 어쩌면 우붓에서의 발런 트래블링은 이전의 여행과 경험에서 진작에 씨앗을 내린 거란 생각이 든다.

 아들 오중빈  남미 여행을 하느라 여름방학 숙제를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따로 숙제를 내주셨는데 여행을 가면서 일기를 쓰라는 거였다.

여행에서 돌아와 교실 학급문고에 꽂아두었는데 친구들이 보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출판사에서도 내용이 좋다며 엄마 책과 같이 출간하자고 해서 나온 책이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봉사’라 하면 대단한 것처럼 본다. 그렇지 않다. 서로 친구가 되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이번에 펴낸 책의 인세는 전부 기부하기로 하였다. 그곳 내 친구들의 영어 수업료가 될 것이고, 대학 등록금이 될 것이다.

그들은 성장할 것이고, 그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함께 성장한다. 우리가 우붓으로 떠나는 이유는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가장 넓고, 가장 큰 장소는 아마도 ‘가능성’이라는 영역일 것이다.
세상엔 극도로 사소한 행동이 가져오는 무한히 다양한 결과물들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페르마타 하티’라는 표지판을 그냥 지나쳤다면 지금 내가 아는 아이들 중 아무도 못 만났을지 모른다.
이후 우리는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지점까지 함께 올라왔다.

-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중에서

 

 

터키로, 라오스로, 아프리카로! 세 살배기 아들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 곳곳의 변방을 찾아다닌 여행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작가 오소희. 2004년 첫발을 떼었던 엄마와 아들의 여행은 어느덧 14년 차에 접어들었다. 세상의 모든 이동수단은 다 타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기차와 트램에 열광하던 꼬마 중빈은 어른이 되면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어린이 교육정책을 세우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지닌 열일곱 고등학생으로 자랐다. 작은 아이가 속 깊은 소년이 되기까지, 젊은 엄마였던 작가가 아들의 기나긴 사춘기를 거쳐 여유로운 미소를 짓기까지…. 긴 세월 함께한 여행은 이들 모자를 어떻게 성장시켰을까. 기획 박시전 기자 사진 안현지 자료사진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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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북하우스)

2018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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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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